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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굿바이 KOO”, ’헌신의 아이콘’ 아쉬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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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구자철. [사진=대한축구협회]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준호 기자] 구자철(30 아우크스부르크)이 지난 11년간 달아온 태극마크를 스스로 뗐다.

’59년 만의 우승’을 목표로 도전한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8강에서 대한민국이 카타르에 0-1로 패한 25일 밤(한국 시각). 허무한 패배만큼이나 먹먹한 소식이 하나 더 들려왔다. 지난 11년간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한 미드필더 구자철의 대표팀 은퇴 소식이었다. 아시안컵 8강 탈락보다 더 아쉽다는 팬들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구자철은 2008년 19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허정무 전 감독의 눈에 들어 2010 남아공 월드컵까지 출전하는 듯했으나, 최종 23인 명단을 눈앞에 두고 탈락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구자철은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반등에 성공했고, 이후 2011 카타르 아시안컵과 2012 런던 올림픽 등에 출전하며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특히 2011 카타르 아시안컵은 구자철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제대로 알린 대회였다. 당시 대표팀을 이끌던 조광래 전 감독은 다재다능한 구자철을 ‘제로톱’으로 기용했고, 구자철은 이 대회에서 5골을 터트리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비록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구자철의 이름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구자철은 주장 완장을 달고 출전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의 사상 첫 동메달 획득을 이끌며 한국 축구의 ‘뉴 캡틴’으로 떠올랐다. 올림픽 전 경기에 선발 출전한 구자철은 ‘한일전’이기도 했던 동메달 결정전에서 승리를 확정 짓는 추가골을 터트리며 영웅이 됐다.

2012 런던 올림픽 멤버가 주축이 돼 나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구자철은 주장 완장을 찼다. 비록 팀의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구자철은 조별리그 3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1골(알제리 전)을 기록했다.

구자철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 주장 완장을 ‘친구’ 기성용에게 넘겼다. 이때부터 구자철을 향한 여론도 조금씩 바뀌었다. 젊었을 적 그라운드를 뒤덮은 존재감은 사라지고, 잔부상만 늘었다는 비판이 그를 감쌌다.

하지만 지금의 파울루 벤투 감독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대표팀 감독들은 구자철을 신뢰했고, 구자철 역시 팬들의 비판을 이겨내며 꾸준히 헌신했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야 하는 체력적 부담을 ‘사명감’ 하나로 극복했다.

실제로 구자철의 대선배인 유상철 전 전남드래곤즈 감독은 구자철에 대해 “태극마크의 소중함과 가치를 아는 선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유 전 감독은 “구자철은 태극마크를 대하는 태도가 특히나 남다른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잘 아는 것 같았다”라고 이야기했다.

구자철은 아시안컵 카타르 전 이후 “언제부턴가 대표팀에 들어오는 일에 압박감과 부담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걸 즐기지 못했다. (내가) 대표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며 대표팀 은퇴를 결정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스스로 고생했다고 해주고 싶고, 앞으로 대표팀은 떠나지만 한국 축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구자철이 대표팀을 떠나간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30일, 기성용 역시 대표팀 은퇴 결정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결국, 한국 축구는 지난 10년 동안 대표팀을 지탱해 온 두 축을 닷새 만에 떠나보내게 됐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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