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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가 죽은 셜록 홈즈를 살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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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의 저자 아서 코난 도일 경.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정인 셜록 홈즈는 8년간 아예 사라진 존재였다. 그를 부활시킨 건 골프였을까?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우리는 체크무늬 사냥 모자를 쓴 작가 도일의 행적을 찾아야 한다.

홈즈의 죽음
흰 수염에 지치고 우울한 초상화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아서 이그나티우스 코난 도일(1859~1930)은 젊은 시절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권투와 축구와 럭비를 했고 크리켓도 수준급이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스키를 했었고, 특히 골프를 즐겼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골프코스를 찾았는데 이집트의 한 호텔에선 이런 말도 남겼다. “여기서 슬라이스가 나면 람세스의 무덤에 들어갈지도 몰라.”

소설 속 홈즈가 살던 런던의 베이커가(街)가 실제로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 안과 전문의였던 코난 도일이 1891년에 그곳에 병원도 개업했다. 하지만 도일은 실제로 의료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고, 히트작인 <보헤미아 스캔들>을 내면서 그해가 가기 전에 병원을 폐업하고 전업작가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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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우보로 비콘 골프장에 새겨진 코난 도일을 기리는 명판.


도일이 골프를 배운 건 아마 태어나고 성장하며 대학까지 다닌 에딘버러로 짐작된다. 도일은 실제 첫 작품이자 역시 히트작인 <주홍색 연구>(1887년)에서부터 홈즈가 등장하는 추리소설 저작(장편 4, 단편 56편) 중에 단 두 편에서 골프를 얼핏 지나가는 흥미 정도로만 간단히 언급했다.

도일은 아내 루이자가 결핵에 걸려 1893년부터 요양원 생활을 시작해 무려 13년간을 장기 체류하는 기간에 집중적으로 골프를 즐겼다. 그중 한 곳인 스위스에서는 요양원 인근에 골프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도일의 전기 작가인 헤스키스 피어슨은 “가끔 도일이 라운드를 마치자마자 미친 듯이 글을 쓰곤 했다”고 전한다.

홈즈가 인기를 끌면서 저자인 도일은 자신의 삶이 피폐해지고 소재도 고갈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결국 1894년에 도일은 홈즈를 죽이기로 결심했고 <마지막 문제>라는 작품에서 스위스의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결말지었다.

당시 홈즈는 국민적인 인기가 있던 소설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오늘날 아이돌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어떤 이는 홈즈가 죽었다고 공공장소에서 검은색 완장을 차고 다니기도 하고 왕실에서도 충격을 받았다는 발표를 할 정도의 신드롬을 만들었다. 당시 그의 소설을 연재하던 잡지사 <스트랜드매거진>에는 항의 서신이 쇄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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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 가의 개 초판본.


8년 뒤의 부활
셜록 홈즈는 소설에서 죽은 지 8년 뒤에 부활했다. 도일이 영국 서부 노포크 해안의 로열 크로머 골프클럽에서 플레처 로빈슨이란 친구를 만나고 사귀게 된 것이 발단이다.

그와 친하게 지내면서 데븐의 유명한 유령 개에 대한 전설을 듣고는 홈즈가 등장한 소설 <바스커빌가의 개(1902)>를 쓰게 된다.

당시 출판사가 도일에게 ‘홈즈를 등장시킨다면 기존 원고료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한 제안도 홈즈의 부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 재미난 얘깃거리에다 두둑한 보상까지 있는데 부활하지 않을 이유가 뭔가. 막장 드라마라도 재미만 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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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이 골프를 즐기던 로열크로머. 여기서 바스커빌 가의 개의 전설이 쓰여졌다.


‘바스커빌 홀’이란 큰 저택은 ‘크로머 홀’로도 불린다. 도일은 로빈슨과 의기투합하고 로열 크로머 골프장을 찾아 며칠간 머물렀다. 1888년에 톰 모리스가 설계한 크로머 골프장은 영국 서해안의 멋진 풍경과 우울한 안개의 조합이 훌륭하다. 특히 13번 홀부터는 잔잔하던 코스가 표변하면서 북해의 안개와 바람이 스산하게 골퍼를 몰아친다. 마치 바스커빌가의 악마 개가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마저 감돈다.

홈즈가 부활하는 데 소재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로빈슨은 1907년에 장티푸스로 돌연사한다. 전염병으로 알려진 장티푸스를, 주변 사람은 멀쩡한데 혼자 걸렸고, 죽은 뒤에서야 장티푸스라는 사인 판정을 받는 것을 두고 독살설이라는 음모론이 2000년대 초반에 돌기도 했다. 의사 출신의 독극물 지식이 많았던 코난 도일이 그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왕실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은 도일이 로빈슨의 소재를 표절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로빈슨을 서서히 독극물에 전염시켰다는 것이 음모론자들의 설명이다. 바스커빌이란 이름 역시 로빈슨의 마부였던 헨리 바스커빌에서 따온 것이었다. 로빈슨은 이미 <다트무어의 모험>이란 소설에서 악마 개 이야기를 소재로 쓴 바 있다. 홈즈가 있다면 조사 의뢰라도 시키련만 도일이 죽었으니 로빈슨의 죽음은 음모론으로만 그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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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 도일이 말년을 보낸 크로우보로비콘 골프장. 여기서 도일은 클럽 캡틴까지 역임했다.


작가의 재충전

어쨌거나 1907년에 도일은 아내 루이자가 사망한 이듬해 10여년 간을 사귀던 정부(情婦) 혹은 애인 진 레키와 두 번째 결혼을 한다. 그리고 서섹스의 크로우보로비콘 골프장 근처로 이사해 새 살림을 꾸렸다.

도일은 그 골프장에서는 3년 뒤인 1910년에 캡틴, 즉 회원 대표까지 역임한다. 도일의 서재에서는 항상 이 골프장이 보였다. 해발 800m 고지에 위치한 이 골프장은 멀리 대서양까지 조망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도일은 다양한 작품과 흔적을 남겼지만, 80년대에 도둑이 들어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이라곤 그가 예전에 이곳 캡틴이었다는 나무 명판 하나 뿐이다. 역시 홈즈가 있다면 그 도둑을 잡았을 테지만 만시지탄이다.

골프를 광적으로 즐겼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던 도일은 1924년 <스트랜드매거진>에 미국 여행기를 쓰면서 ‘버몬트주 브래틀보로 근처에 살던 키플링(소설 <정글북>을 쓴 미국의 대 문호) 부부에게 골프를 가르쳐주었다’라고 적었다. 1894년 도일이 미국을 여행하고 영국으로 돌아간 뒤 키플링은 열혈골퍼가 되었고, 심지어 겨울이면 스노우 골프를 창안해 즐기기까지 했다. 1895년에 미국골프협회(USGA)가 창설되고 US오픈이 열리게 되었으니 미국 골프의 선구자는 도일에게 배운 키플링이었다.

영국과 미국의 대 문호가 골프를 통해 삶의 안식과 작품을 위한 재충전의 활력을 얻었다. 셜록 홈즈라는 명탐정을 창조해낸 코난 도일은 깊은 소파에 몸을 푹 집어넣고 담배를 피면서 캐릭터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필드를 누비면서 샷을 날리면서 아이디어를 얻곤 했다. 셜록 홈즈의 부활도 크로머 골프장에서 결정된 것이다.

*이 글은 왁골프(www.waacgolf.com)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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