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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파트너와 음악이 있으면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댄스스포츠 장혜정
“내 장애가 중증이지만 신체적으로 힘들다고 미리 포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도전을 하는 것.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어.”

제3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댄스스포츠 3관왕을 차지한 울산광역시 장혜정(39 울주군청) ‘선수’는 댄스스포츠를 통해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이 사뭇 다부지다. 대중에게 생소한 장애인 댄스스포츠는 휠체어를 탄 선수와 비장애인 파트너가 함께 호흡하며 우아함과 절제미를 연출한다. 여러 댄스스포츠 관련 경연이 전파를 타고 있지만 장애인 댄스스포츠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독자들은 아쉽지만 사진을 통해서라도 장애인 댄스스포츠를 이해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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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댄스스포츠 3관왕을 차지한 장혜정(좌)이 이재우(우)와 함께 환하게 웃으며 경기를 펼치고 있다. [사진=대한장애인체육회]


화려한 댄스스포츠가 제법 잘 어울리는 장혜정은 척수손상 1급 장애인이다. 3살 때 겨울 큰 눈이 내려 땅이 꽁꽁 얼어붙은 차가운 어느 날, 엄마의 외출준비를 보며 장혜정은 따라가려했다. 하지만 데리고 갈 수 없던 엄마는 장혜정을 두고 가자,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울며 기다렸다. 2시간 이상이 흘렀을까? 돌아온 엄마는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 장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기다린거야? 혜정아 일어나라. 일어나 봐.” 그리고 이내 엄마는 충격에 휩싸였다. 장혜정은 온 몸이 마비가 되어 일어나지 못했다. 깜짝 놀란 엄마는 병원을 갔으나, 운명의 장난처럼 대구 시내에 있는 모든 신경외과에 의사가 없었다. 마침 의사들이 신경외과 학회에 참가한 까닭에 장혜정을 치료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후 미세한 칼로 자른 것처럼 신경이 끊어지며 장혜정은 하반신경마비라는 장애를 평생 안고 살게 됐다. 배꼽 아래로는 전혀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장애를 이겨낸 출산

장혜정은 척수손상 장애인으로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하였다. 2005년 소중한 첫 딸을 낳았고 2008년 사랑스런 아들을 낳았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10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는 것은 건강, 신체적인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10달 동안 배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무사히 낳기까지 장혜정은 많이 힘들었지만 잘 견뎌냈다.

허리가 휘어지고, 앞으로 숙일 수 없으며, 뱃속 아이에게 위험할 수 있기에 아기집을 위로 밀어 올리고 아랫배를 눌러 대소변 처리를 하고... 위험천만했던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어린 생명을 감각이 없는 배에서 자라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어었던가!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여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은 소망과 한 인격체로서 권리를 갖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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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가운데) 선수와 두 아이. 오른쪽이 딸 수민, 왼쪽이 아들 승민(좌).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생활을 하던 장혜정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1년부터 바쁜 사회인으로서 역할을 해 나갔다. 그리고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대구지부 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상담팀장으로 장애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라면 그 삶은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벅찰 것이다. 2011년 장혜정 씨는 힘든 일상에서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댄스스포츠를 알게 됐다. 퇴근 후 저녁 7시부터 밤늦게까지 춤을 익혀나갔다. “그때는 엄청 내 삶이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것을 잊기 위해 죽기 살기로 춤을 췄던 것 같아요. 참 신기하게도 춤을 출 때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어요.” 운동은 장혜정에게 삶의 활력을 선물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운동은 화려한 화장과 옷을 좋아하던 장혜정에게는 망설임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대학생 때 ‘외국계 회사에 취직해 파티문화를 즐기면 어떨까’ 하는 희망하기도 했다. 이러니 댄스스포츠는 장혜정 씨에게 모든 것을 충족해주는, 딱 맞는 운동이었다.

댄스스포츠를 처음 접했을 때, 배꼽 아래는 감각이 없는 장혜정에게 균형을 잡고 춤을 춰야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하지만 첫 대회때부터 상위권에 들게 되었고, 이후 상비군에서 훈련, 2년반 만에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2013년 5월에는 처음으로 국제대회(독일)에 출전하기도 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 나간다는 설렘에 매일밤 12시까지 연습했고, 심지어 머리가 깨어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원래 댄스스포츠는 장애등급에 따라 클래스1과 클래스2로 나뉜다. 한국은 선수가 부족해 장애유형의 구분이 없이 경기가 진행된다. 국제대회 등급심사에서 장혜정은 클래스1으로 분류를 받고, 은메달을 따 역대 우리나라 최고의 성적을 냈다. 장혜정은 “중중장애를 극복하며 참아왔던 서러움과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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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제3회 코리아 서울시티컵 장애인댄스스포츠 챔피온십 때 장혜정 선수(오른쪽)까 응원을 온 후배 김영웅(왼쪽), 어머니 김금란 씨와 포즈를 취했다.


장혜정은 일과 댄스스포츠 선수의 삶을 바쁘게 살던 어느날 울주군청 댄스스포츠 감독으로부터 실업팀 입단을 권유 받았다. 고민 끝에 13년 동안 해온 상담을 그만두고 선수생활을 매진하기 위해 ‘선수의 길’을 택했다. 훈련은 주 5회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울산 동천체육관의 장애인 댄스스포츠 실내연습장에서 실시된다. 라틴 1팀(2명), 모던 1팀(2명)에 감독까지 총 5명이 연습에 매진한다.

장혜정의 6년 파트너인 이재우는 올 12월까지만 실업팀 소속으로 함께 운동을 한다. 국방의 의무를 위해 아쉽지만 헤어져야 한다. 이재우가 고1 때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함께 울고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내가 파트너 때문에 힘들었던 것보다, 파트너가 나(장혜정)로 인해 힘든 것이 더 많았을 거예요. 휠체어에 부딪히고, 항상 리더를 해야하고, 휠체어의 무게 때문에 어깨 인대나 무릎에 부상을 달고 살았어요. 그럼에도 힘든 내색없이 최대한 나를 배려해준 것이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게 춤을 즐기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파트너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던 장혜정은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리나라 휠체어 댄스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애국가를 울리는 놀라운 성적(금메달)을 달성했다.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가족들은 모두 장혜정을 응원한다. 시부모님은 며느리의 선수생활을 자랑스러워 하며 노상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가장 고마운 존재인 친정어머니는 장혜정을 그림자처럼 붙어다닌다. 당연히 좋은 성적과 손주들의 성장에 가장 행복해하기도 한다.

또 장혜정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남편은 아내의 댄스스포츠를 적극 지원한다. “다음 생에는 남편과 서로 역할이 바꿔 태어났음 좋겠어요. 당신이 나의 장애를 감싸고 함께 나누듯 내가 당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편에 대한 사랑은 절절하다.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은 엄마가 국가대표 댄스스포츠 선수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진짜 대단해”라고 늘 자랑한다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즐겁게 살아요. 모두 건강하고 웃음 가득하게 말이죠.” 역시 장애인 스포츠는 기승전‘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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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C 러시아세계대회(2015년) 클래스1 결승전 경기를 준비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장혜정 씨.


“앞으로 중중장애인으로 행복한 춤을 추며 보는 이들에게도 행복함을 전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상담했던 경력을 살려 장애인 스포츠인들을 위해 스포츠상담사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장혜정 씨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댄스스포츠를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장애인스포츠에서 비인기종목인 댄스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저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알려지기를 바랍니다”라며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댄스스포츠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세계 1위에 올랐으니 그 밑바탕이 된 상상 이상의 어려움과 도전 정신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실업팀에서 댄스스포츠만 훈련하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직업을 가지며 살아가는 장혜정을 응원한다. 새로운 파트너와 호흡을 잘 맞추며 향후 국가대표로서 댄스스포츠의 위상을 한층 높이기를 바란다. [헤럴드스포츠=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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