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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인- 골프 역사가 조상우 교수(2) “한국식 클라렛 저그는 주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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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우 교수의 서재는 한국과 세계 골프의 앤티크 박물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조상우 호서대학교 골프학과 교수는 골프학계에서는 이미 역사 연구자로 이름 높다. 단순 연구자 정도가 아니다. 그의 아산캠퍼스 연구실은 옛날 클럽들과 함께 그가 수집한 일본 옛 골프 문서가 가득하다. 일본어를 잘 모르면서 일본의 옛 자료를 살펴 일제 시대 한국 골프에 대해 연구하는 정성이 놀랍다. 하지만 이는 그 만큼 한국 골프 역사에 대해서는 골프산업 종사자들의 관심이 없거나 배려가 적었다는 방증일 수 있겠다.

1920년 조선총독부가 문화정치를 표방하고부터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이 터지는 1942년까지의 일본측 자료는 당시 한반도의 골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된다. “일본의 자료를 찾을 수밖에 없는 건 그곳의 각종 기록이 상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이죠. 32년에 일본철도청에서 발간한 골프 편람을 보면 식민지였던 한반도와 만주의 골프장이 나옵니다. 홀 레이아웃과 그린피까지 선명하게 나와 있죠. 그리고 조선 반도의 연덕춘이 실력이 뛰어나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캐디 출신의 연덕춘은 한국에서 뛰어난 골프 실력을 보이면서 인정받아 35년 2월 일본에서 최초의 프로자격증을 얻고, 드디어 41년 일본오픈선수권에서 4라운드합계 290타로 우승했으나 당시 이름은 연덕춘이 아니라 도쿠하루 노부하라라는 창씨개명을 한 일본 이름이었다.

조 교수가 수집한 자료에는 72년에 없어진 군자리 코스의 서울컨트리의 옛 명칭인 경성컨트리클럽의 1939년 회원 명단도 있다. 일본인 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제법 있는데 거기에는 오늘날 이름 있는 재벌 그룹의 설립자도 몇 명 보였다. 골프라는 스포츠는 당시 한반도의 최상류층들이 즐기는 일종의 사교 레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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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안양컨트리클럽의 스코어 카드.


1941년2월26일 매일신보에 따르면 조선총독부가 위치하던 경복궁의 후원에 관헌들이 연습하던 3000평 규모의 골프연습장도 있었으나 태평양전쟁이 임박해지면서 전쟁 물자 공급 비축을 위해 골프장을 폐쇄하고 농산물 심었다는 내용의 기사도 나온다.

또한 ‘뻬삐골프’라는 단어가 종종 나온다. 이는 그린만 조성해 놓은 미니(베이비) 골프코스를 말하는 거였다. 당시 신문에는 사진과 함께 양장이나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이 클럽을 들고 퍼팅을 하는 사진들이 흥미롭다.

한국 여성 골프는 그렇다면 뻬삐 골프 시절부터 기원을 올려잡아야 할까? 한국의 여자 골프는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고, 일본과 미국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각 투어에서 200승에 가깝게 성적을 올리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골프 박물관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 골프 역사를 재미있게 접근할 만한 소장품이 그의 집 서재에만 진열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하다.

“옛 자료들을 모으고 수집하다보니까 옛 골프 용품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그렇게 한두 점 모으기 시작한 골프 앤티크가 그의 집 서재방 한 칸을 다 차지할 정도다. 100년도 넘은 히코리 샤프트의 골프 클럽과 니블릭 등의 초기 골프클럽에 1950년대 유럽에서 쓰던 스몰볼도 있다. 하지만 그중에 한국 골프와 관련된 것이 그의 컬렉션의 특징이다. “1939년과 40년 경성골프클럽 스코어카드와 회원증 원본이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군자리 서울골프클럽의 원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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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서울CC 이사장배 챔피언전 우승 기념 은제 주전자를 들어보이는 조상우 교수.


최근에 수집한 제품은 1955년7월27일 날짜가 새겨진 ‘축 우승’이라는 은 90돈짜리 주전자였다. 골동품이 종종 나오는 국내 경매사이트에서 나온 뒤로 몇 번 유찰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37만원에 나왔으나 그는 거의 두 배를 주고서야 샀다. “날짜를 조사하니 한국아마선수권은 아니고, 서울 능동 군자리의 서울컨트리클럽(파72 6750야드)에서 클럽챔피언전이 열린 3일 뒤였습니다. 제일제당이 새겨져 있고요.”

그해 제 2회 이사장배 클럽챔피언전에서 우승한 이는 대한골프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허정구 삼양통상 설립자였다. 우승한 뒤에 제작된 은제 주전자여서 아마도 우승 기념 사은품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자가 와인을 따르는 클라렛 저그이듯, 주전자에서 청주를 따르지 않았을까?

1954년에 군자리에 복원된 서울CC는 첫해 한국아마추어참피온대회를 개최하고 2회부터 대통령배 대회로 75년까지 매년 개최한다. 이 대회는 오늘날 허정구배한국아마추어선수권으로 열리고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아마추어 골프의 제전으로 여겨진다. 물론 우승자는 주전자가 아닌 트로피를 수여받는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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