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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상영이 21살에 금메달을 딴 이유 - ‘실력보단 정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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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올림픽 펜싱 무대를 재패한 박상영. 피스트 위의 검객은 온 데 간 데 없고 환한 이를 드러내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물한 살 청년이 기자 앞에 앉아 있었다. [사진=한국체대 학보사 고정호 기자]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지원익 기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해보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명장면 중 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이다. 이 말의 주인공은 대회 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최근 예능, 라디오에 출연한 것도 모자라 방송대상 시상자까지 나섰다. 곧 CF 계약을 맺는다는 후문이 있기도. 인터넷에 ‘할 수 있다’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미지는 확실히 형성된 셈이다. CF관계자들에게 이렇게 좋은 모델이 또 있을까.

한국 남자 펜싱대표팀의 ‘막내’ 박상영(21 한체대)은 리우올림픽 에페 개인전 결승서 세계랭킹 3위의 ’베테랑’ 임레 게자(41 헝가리)에 2라운드까지 9-13으로 뒤지고 있었다. 2라운드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주어진 1분간 그는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다’는 자기최면을 걸었다. 그리고 마지막 3라운드에서 4점 차를 극복하고 역전승을 거뒀다. 국민들을 감동시킨 이 독백의 주인공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을 그의 모교 한국체육대학교에서 만났다. 살이 빠져 사진이 잘 안 나올 것 같다며 후드자켓을 위에 껴입은 그는 영락없는 스물한 살 청년이었다.

-요즘 바쁘다. 올림픽이 3주나 지났는데 어떻게 지냈나.
“(부상당했던)무릎이 좋지 않아 계속 치료를 받았다. 방송이나 라디오 출연 외의 시간엔 휴식을 취했다. 정신은 없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박상영은 2015년 3월 26일에 왼쪽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대에 올랐다. 오랜 재활 끝에 다시 운동을 시작했지만 올림픽이 끝난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 비올 때마다 무릎이 쑤신다고.

-정신없이 스케줄 소화하느라 부모님은 자주 못 뵙나?
“어머님은 항상 내 옆을 지켜주셔서 자주 뵙는다. 위에 형이 한 명 있는데 형과 아버지는 (경상남도 진주)집에서 한두 번 본 게 전부다. 지금은 학교기숙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을 자주 볼 수 없다.”

-전 국민이 ‘할 수 있다’로 박상영을 기억한다. 인기를 실감하는가?
“너무 과분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인요청도 들어오고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분들도 계신다. 너무 감사드린다. 아, 한 번은 화장실에서 한 아저씨가 날 보고 ‘할 수 있다’를 크게 외쳐주셨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인기가 계속되지 않을 것을 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아마 며칠 뒤면 슬리퍼를 신고 아무렇지 않게 밖에 돌아다니는 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직후 지나가는 같은 학교 학생들은 박상영에게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잊지 못할 날, 8월 10일로 돌아가 보자. 파이널피스트에 처음 올랐을 때 기분이 어땠나.
“자신 있었다. 두 번 만나 모두 이겼던 상대(임레 게자)였기 때문이었다. 금메달 딸 수 있겠다는 욕심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기 때문에 내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 상대도 노련한 베테랑이어서 전략을 바꿔버리더라.”

-어떻게 바꿨나?
“원래 그 선수는 공격적인 선수인데 수비적으로 전략을 바꿨다. 당황했다. 9-13으로 2세트가 끝난 후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선수의 성향도 생각해봤다. 워낙 성격이 급한 선수라 동시타격으로 게임을 끝낼 것 같았다. 실제로도 계속 (공격이)들어왔다. 결과적으로 이겨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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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올림픽 직후 '할 수 있다'가 전국을 강타했다. 박상영은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에 9-13으로 뒤지고 있을 때 '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통해서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사진=SBS 방송캡쳐]



-부상부위엔 통증이 없었나?
“무릎은 괜찮았는데 4강 끝나고 결승에 오르기 전 오른쪽 허벅지에 쥐(근육경련)가 났다. 너무 무리해서 그런 것 같다. 몸도 제대로 못 풀고 결승에 나갔는데 신기하게 괜찮아졌다. 그래서 별 탈 없이 결승전을 치를 수 있었다.”

-마지막 득점에 성공한 후 어떤 기분이 들었나?
“올림픽 금메달을 실감하지 못했다. (펜싱을)잘하는 선수에게 역전승을 거둔 것이 마냥 좋았다. 그뿐이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다. 난 이 축제를 즐겼다”고 했다.
“올림픽처럼 큰 무대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막내들의 특권이다. 메달에 의미를 두면 더 힘들 것 같아서 그저 즐겼다. 즐겼는데 결과까지 따라왔다. 기쁘다.”

박상영은 어린 나이지만 이미 세계대회 경험이 많은 선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이후 대학 입학 전이던 2014년 1월 세계그랑프리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데뷔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기염을 토한 것. 이후 2년 간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대회를 경험했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계대회와 또 다르다고 했다. 사람들의 관심도가 더 커지기 때문. 그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국내 및 세계대회보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결승 직후 믹스트존에서 뱉은 말대로 그는 철저하게 올림픽을 즐겼고 사람들의 관심을 누렸다.

-시상식에 오를 때의 기분은 어땠나? 실감이 났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믹스트존에서의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시상식에 갔다. 그곳에서 시상식 준비를 한다고 부르더라. 뭐 할 수도 없이 시상식에 갔다. 시상식을 마치고, 포토타임을 갖고, 인터뷰하고 바로 도핑검사를 하고. 정말 눈 깜작할 새에 일어난 일이라 실감이 날 겨를이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웃음) 숙소에서 휴대폰을 켰다. 문자메시지와 카카오톡 때문에 진동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의 축하가 얼떨떨했다. 숙소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실감이 조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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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효하는 막내' 박상영이 남자 펜싱 에페 16강서 엔리코 가로조(이탈리아)에 승리한 후 환호하고 있다. 박상영은 결승에서 헝가리의 임레 게자에 15-14로 역전승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뉴시스 AP]


-진주제일중학교 1학년 때 펜싱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언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고 스스로 생각하나?
“중학교 3학년 때다. 당시 전국대회에서 입상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 같다.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쳐 2014년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했다.”

박상영은 코치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잘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어린 소년은 펜싱을 하면서 처음으로 ‘칭찬’이라는 것을 받아봤다. 이후 펜싱에 빠져버렸다. 처음 2년간은 성적이 좋지 못했다. 대회에도 6번 출전했지만 메달이 없었다. 그래서 연습에 몰두했다. 새벽 6시에 운동장에 나가 줄넘기와 기술연습을 했다. 학교 훈련이 마치고도 밤늦게까지 강변을 달리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결과 중학교 3학년 때 금메달 8개를 목에 걸었다. 소년체전 최우수선수상도 받았다. 2년 뒤 세계청소년선수권에선 단체전 3위를 기록했다. 특히 3,4위전 득점 45점 중 35점을 박상영이 따냈다. 그는 이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별히 한체대에 입학하게 된 배경이 있나?
“한체대 펜싱부는 전국 최강이다. 무엇보다 내가 잘 따르는 3살 위의 선배가 한국체대에 재학 중이다. 배현석 형이라고.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배현석 선수가 롤모델 인가?
“그렇다. (현석이)형과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붙어있었다. 내가 즐겨 쓰는 기술 중에 플래시라는 기술이 있다. 들어봤는가?”
*박상영의 롤모델인 배현석은 1992년생으로 경남체고, 한국체대를 거쳐 현재 광주 서구청에 소속돼 있다.

-민첩하게 날아 상대방의 몸을 찌르는 기술 아닌가?
“맞다. 내 주특기기도 하지만 사실 (현석이)형의 주특기기도 하다. 펜싱은 지역마다 주특기 기술이 다른데, 우리 지역(진주)의 주특기 기술은 전통적으로 플래시였다. 때문에 우리 둘이 모두 영향을 받았다. 그 중에서 형은 플래시를 가장 잘 구사하는 선수 중 하나다. 형을 따라하면 나도 전국 최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멋있었다. 나도 현석이 형처럼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실제로 박상영은 지난 리우올림픽 남자 에페 준결승 벤저민 스테펜(스위스)과의 경기서 플래시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바 있다.

-전국최강을 꿈꾸던 소년이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 엄청난 발전이다. 비결이 뭔가?
“비결은 따로 없다. (웃음) 글쎄, 심리 때문인 것 같다. 잘하는 선수는 많다. 전국대회나 세계대회가면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 1등을 자주 하진 못한다. 큰 무대에서 기가 눌리지 않으려면 심리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사실 부상 후 재활기간에, 그리고 재활 후에도 극도로 불안했다. 세계랭킹은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동료 선수들의 무시도 받아봤다. 너무 힘든 시기였다. 심리 상담도 많이 받았다. 당시 한국체대 펜싱부 김영수 교수님이 장덕선 교수님(스포츠심리학)을 연결시켜주셨다. 그분을 통해 심리 상담을 알아봤다. 부상을 당한 후 이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느껴진다. 무척 긍정적이다. 심리상담도 상담이지만 어린나이에 이토록 멘탈이 강한 이유는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 것 같은데. 부모님의 영향인가?
“그렇다. 늘 어머니가 곁에서 지켜주시며 힘을 주셨다. 내 투정도 다 받아주셨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펜싱을 시작한 이후 6년간 거의 매일 훈련일지를 작성해왔다. 훈련내용과 앞으로의 계획을 먼저 쓰고 맨 마지막엔 항상 긍정적인 독백으로 마무리했다. 평소 자서전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이런 내용들을 쓸 수 있었는데, 이 책들은 모두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정신적 버팀목이시다.”

박상영의 훈련일지엔 ‘개구리도 도약하려면 다리를 구부려야 한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시기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와 같은 명언들이 적혀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날 일지엔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다. ‘오늘 이렇게 사정없이 진 게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간절한 바람으로 기도하자.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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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은 완벽을 만든다' 박상영은 펜싱을 시작했을 때 부터 훈련일지를 써 왔다. 훈련일지엔 1)훈련내용, 2)앞으로의 계획, 3)긍정적인 자기암시 순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박상영]



-한국 펜싱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그려본 적이 있나?
“막내라 감히 뭐라고 말하진 못하겠다. (웃음) 런던대회를 통해 유명해진 한국의 발펜싱을 외국선수들이 많이들 모방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그들의 손펜싱을 모방하려 할 것이다. 앞으로도 한국은 발펜싱을 기본으로 하되 유럽 선수들의 손펜싱까지 첨가해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21살.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선수로서의 계획을 알려 달라.
“첫 올림픽무대에 오른 나이는 21살밖에 안됐다. 큰 무대임에도 내가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어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아직 난 어리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전 국민께 정말 과분한 관심을 받았다. 가문의 영광이고 잊지 못할 추억이다. 하지만 과거의 수상은 과거 노력의 산물이다. 이젠 다시 출발선에 섰다. 다음 올림픽은 더 힘들어지면 힘들어지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안다. 수성이 더 어려운 법이니까. 이제 예전보다 더 강도를 높일 것이다. 더 단단해질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할 박상영을 기대해 달라.”

-준비 된 멘트인가? 잘 들었다. 이제 개학이다. 수강신청은 했나?
“물론 했다. 사실 친구가 해줬다. 그때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유도 수업이 가장 기대된다. 얼른 유도복을 빌려야겠다. (웃음)”

박상영은 결승전 당시의 심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말로 할 수 있다고 생각 하지 않았다. 간절히 이기고 싶어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는 이어 “많은 분들이 인생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다는 말로 열심히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쌓이면 기적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고 했다. 큰 무대에서 금메달을 목을 걸은 어린 선수가 이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다.

당나라 태종은 나라를 새로 세우는 ‘창업(創業)’도 어렵지만, 그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새로 세운 국가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수성(守成)’이라 했다. 올림픽 무대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저력을 유지하는 것,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서 이 어린 선수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는 빠른 발, 민첩한 플래시 기술, 그리고 무엇보다 쉽게 깨지지 않는 강한 멘탈을 갖고 있다. 박상영의 앞날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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