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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의 50가지 비밀]나무로 된 최초의 골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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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골프 세트.


역사상 최초의 골프 클럽을 찾아서
골동품은 골프에도 있다. 골프 역사가 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오면서 가치 있는 물품이 없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손때 묻은 골프채 한 자루에도 역사적 가치는 담겨 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때 묻은 수백 년 전의 골프채는 어땠을까? 공은 얼마나 날아갔을까?

스코틀랜드의 항구에 버려지다시피 한 오래된 선박이 한 척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선원이 선실 내부 청소를 하다가 다량의 골프채를 발견했다. 꽤나 값져 보이는 나무로 된 장식대에 8자루의 골프채가 가지런히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겉으로 보아도 수백 년은 족히 된 골프채 세트였다. 가운데부터 양쪽으로 각각 3자루씩 우드를 중심으로 양쪽 끝에는 아이언이 각각 한 자루씩 장식되어 있었다. 그 밑에는 1741년에 발간된 누렇게 바랜 신문도 가지런히 함께 있었다.

우드 6자루도 아무렇게나 장식된 것이 아니라 1번 드라이버, 2번 브랫시(Brassie), 3번 스푼(Spoon)등 종류 별로 구성돼 있었다. 두꺼운 물푸레나무(Ash tree)로 만들어진 두껍고 투박한 재질이었다. 손잡이의 표면은 거친 울 재질로 감싼 그립이었고, 헤드의 길이는 초창기 골프채의 길쭉한 롱 노우즈 그대로 45인치였다. 헤드에는 만든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으며, 헤드 앞쪽의 가장자리에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동물 뼈가 삽입되어 있었다.
양쪽에 한 자루씩 있었던 아이언은 마치 도끼날처럼 만들어졌다. 아이언 클럽 한 자루의 무게는 무겁고 단단했으며 매끄럽기 보다는 투박한 느낌이었지만, 보존 상태가 좋았다. 이 골프 세트는 나중에 스코틀랜드 ‘로얄 트룬(Royal Troon)’으로 옮겨져 영구 보관되고 있다.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나무 골프채를 우리는 통상 롱 노우즈(Long Nose)라 부른다. 헤드가 길쭉하게 뻗은 모양이 마치 서양 사람들의 긴 코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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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헤드 모양의 18세기 클럽들.


최초의 골프채 세트가 만들어지다
인류 최초의 골프채 세트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문헌 자료가 있다. 스코틀랜드 왕실 기록이 있다. 지금부터 정확히 513년 전인 1502년, 당시 영국왕 제임스 4세는 골프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아직 선대왕들이 내린 골프 금지령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르게 숨어서 즐겨야 했다. 당시 왕실 문서에는 ‘제임스 4세 국왕께서 퍼스(Perth) 지역에서 전쟁용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골프 클럽 세트를 주문하면서 14실링을 지불했다’고 적혀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 뒤인 1603년 다시 ‘골프 세트’라는 말이 기록에서 나타난다. 이번에는 클럽 세트를 만드는 장인의 이름까지도 기록돼 있다. 스코틀랜드와 통일된 영국의 첫번째 왕인 제임스 6세는 골프의 보급에 힘썼다. 그는 나무에 관한한 전문가인 활 만드는 제조공이었던 윌리엄 메인(William Mayne)이라는 장인을 고용해 골프채를 만들게 했다. 수백 년 전에는 골프채를 만드는 장인이 없었기 때문에 활을 만드는 제조공이 이를 대신했다. 그들은 나무의 재질에 따라 활이 휘는 강도를 맞출 줄 아는 장인이었으므로 샤프트의 강도에도 그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었다. 당시에는 지정된 장인만이 클럽을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샤프트의 원료는 물뿌레나무(Ash), 녹심목(Green Heart), 적나왕(Purple Heart), 개암나무(Hawel), 레몬우드(Lemon wood)등 주로 부러지지 않는 단단한 나무였다. 샤프트와 헤드는 각각 만들었고 전 과정은 당연히 수제 작업이었다. 샤프트는 곧게 다듬었고 헤드는 틀에 맞추어 칼로 깎아내면서 모양을 만들었다. 샤프트와 헤드의 접착되는 면은 10cm 정도 비스듬히 깎아 요철로 만든 뒤, 두 부분을 서로 밀착시켜 동물 뼈로 만든 강력 접착제로 고정시켰다. 일단 헤드와 샤프트가 서로 접촉된 다음에는 이 부분에 왁스를 칠한 검은 노끈을 감아 동여매서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립은 제일 윗부분부터 동물의 가죽을 자그마한 못으로 고정한 뒤 아래쪽으로 돌려가며 감았다. 마무리는 역시 왁스칠 한 검은 노끈으로 고정시키면 한 자루의 골프채가 완성됐다.

장인들이 자신들이 만든 클럽의 헤드 윗부분에 이름을 새겨 자신 있게 내놓았다는 게 특이하다. 자신의 명예를 걸고 만들었다는 자부심이었을 게다. 그렇게 만든 골프채는 버거울 정도로 무거웠다. 덕분에 수백 년 전의 골프 스윙은 채의 무게에 준하는 동작, 즉 ‘업 스윙’보다는 골프채를 어깨에 메는 듯한 ‘플랫 스윙’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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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관된 롱노우즈와 페더리볼.


첫 번째 클럽 브랜드 ‘앤드루 딕슨’
17세기에 만들어져 현존하는 골프채는 얼마 없기 때문에 장인의 이름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지만, 지난 2007년 현존하는 롱 노우즈 퍼터가 최고가에 팔리면서 헤드 위에 새겨진 앤드루 딕슨이라는 장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상 최고 골프채의 제작자인 앤드루 딕슨은 1682년 최초의 인터내셔널 매치가 스코틀랜드에서 열릴 당시 4명의 선수 중 하나였던 귀족 제임스 스튜어트의 캐디였다. 후에 에딘버러 인근의 리스(Leith)골프장에서 골프채를 제작하는 장인이 되었고, 1690년에 심혈을 기울여 이 골프채를 만들었다. 그리고 샤프트 윗부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골프채에 새겨진 장인의 이름은 이렇게 연대를 찾아내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리스라는 골프장은 에딘버러 인근에 존재했던 5홀 골프장으로 왕족과 귀족들이 주로 애용했던 골프장이지만,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지역 개발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골프장이다.

오래된 골동품 골프채들은 장인의 손에서 수공업으로 만들어지면서 장인의 이름과 예술혼이 함께 깃들어져 있다. 골프채의 제작 연도와 장인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장인들의 골프채 만들기 경쟁은 계속 이어져 갔다. 이들 중 자신이 만든 채를 들고 대회에 나와 우승을 한 업자들도 있었으며, 그 골퍼는 돈방석에 앉기도 했다.

19세기는 골프 역사의 1차 르네상스라 부른다. 알렌 로버트슨, 올드 톰 모리스, 윌리 파크 등 당대 최고의 클럽 제조업자이자 골프 선수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1860년의 영국 오픈이 창설된 것도 부흥기를 말해준다. 훗날 등장할 영국의 ‘위대한 3인방(The Great Triumvirate)’도 중흥기의 산물이다. 1887년 골프가 미국으로 상륙하기 전까지 한 세기 동안 영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클럽들이 다양하게 창조됐고, 그 명품들이 지금까지 박물관이나 수집가들에 의해 보관되어 전해진다.

그렇다면 나무채는 얼마나 멀리 공을 날려 보냈을까. 골퍼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200야드 이상도 날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더리 깃털 공과 나무채로 200야드 이상이면 21세기 아마추어 골프들과 겨루어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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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커스를 입고 히커리 골프 챔피언십에 출전한 현대의 미국 골퍼들.


오늘날의 히코리 챔피언십
현재도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등지에는 ‘히코리 클럽 동우회’가 결성되어 있다. 이들은 예전 선조들이 입던 둥근 모자와 무릎까지 오는 7부 바지인 니커스(Nickers)라 불리는 의상을 입고, 골프채도 히코리 클럽만 써서 대회를 연다. 다만 공 만큼은 예전의 비싼 가죽 페더리 볼이 손상된다는 이유로 최근의 볼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대회를 히코리 챔피언십이라 하며 골프장 길이는 5800~6000야드 정도이며 대체로 여성용 티박스를 사용한다. 히코리 대회 참석자들은 그 옛날의 나무 클럽으로도 200야드를 충분히 날린다. 히코리 대회의 우승자들은 싱글 핸디캡의 점수를 거뜬히 내면서 우승을 한다.

나무채를 만드는 방식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은 채, 17~19세기까지 3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속돼 왔다. 애석하기는 하지만 그 이전의 채들은 이미 썩어 없어져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300년 전의 골프채가 선박에서 발견된 8자루를 비롯해 수집가들의 손에 몇 점이라도 남아있으니 다행이다. [글=이인세(골프앤티크 전문가, 남양주 골프박물관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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