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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좋아하는 전국 대학생들, 한 번 다 모아 볼 겁니다”
축구로 하나 된 서울권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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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저녁, 환한 불빛아래 축구하는 아마추어 대학생들.



쌀쌀한 날씨에 모두가 움츠려든 늦가을 저녁. 정적이 내려앉은 대학 도서관과는 대조적으로, 환한 불빛 아래 축구하는 대학생들의 고함소리가 푸른 잔디를 가득 메웠다. 마지막 조별예선이 지난 11일 늦은 오후 국민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국민대학교 ‘FOCUS’, 서경대학교 ‘스나이퍼’, 그리고 중앙대학교 ‘청우회’간의 3파전. 강동강북 2조에 편성된 이들 3개 팀은 하루 만에 예선을 다 치렀다. 그리고 이날 본선으로 올라가는 한 팀이 결정됐다.

‘독수리 오형제’의 배경음악에나 나올법한 SUFA CUP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생소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대회는 전문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도 아니고, 대한축구협회가 주관하는 대회는 더더욱 아니다. 얼마 전까지 제대로 된 스폰서 하나 없던 아마추어 축구대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들은 흔한 아마추어 축구대회와 다르다. 이 대회가 특별한 이유는, 서울권 대학 축구동아리들을 하나로 묶은 ‘연맹’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권대학 축구동아리 연맹(Seoul-area University Football Association), 약자로 ‘SUFA'라 불리는 이 연맹은 ‘축구를 통한 친목도모 및 화합’이라는 목적아래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다. 이들은 현재 서울권 24개 대학 36개 축구동아리들을 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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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FA 로고




답답하면 우리가 만듭니다


대학에서의 스포츠 활동은 중·고등학교 시절의 학교체육과 성인시기의 생활체육을 이어주기 때문에 체육활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현재 이들에 대한 지원은 너무 미약하다.

대학생의 스포츠 활동은 학교 운동부(전문 선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동아리 형식의 활동으로 전개된다. 스포츠동아리 활동은 학생자치활동으로 여겨진다. 중·고교에서는 교육부 정책의 일환으로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이 활성화 되고 있고, 지역사회에서도 성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동호인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중간 위치의 대학생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인 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그나마 최근 각 대학의 '총장배 축구대회'나 '의장 배 대회'가 간간히 눈에 띤다. 하지만 이 대회들은 참가자를 교내로 한정짓거나, 대회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 등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답답해하던 대학생들이 스스로 연맹을 만들었다. 2014년 최호식 초대회장(서울과학기술대)의 주도로 발족된 SUFA는 올해 이한빛 2대 회장(한국체육대)이 바통을 이어받아 벌써 4회째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한빛 회장은 SUFA를 “대학이 상대적으로 많이 몰려있는 서울권에서 흩어져 있는 축구동아리들을 한 데 모아보려고 시작한 연맹”이자 “4회 대회를 치르는 동안 어느새 축구동아리들의 화합의 장(場)이 되고 있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사실 과거에도 대학생의 주도로 축구 동아리들을 한 데 묶는 대학 축구동아리 연맹이 있었다. ‘한국대학생클럽축구연맹’이다. 이 연맹에는 전국 대학교 축구동아리 46개 팀이 소속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개최한 전국대학생클럽축구 선수권대회(32팀 참가)는 2010년을 끝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아마추어 축구의 저변 확대, 건전한 대학 스포츠문화 정착 등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발족했으나 결국 후원 및 홍보 등 여러 문제로 대회를 장기간 유지하지 못했다.

오랜 공백기 끝에 새롭게 출범한 SUFA는 곧바로 후원사를 유치했다.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대회이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은 가장 큰 문제로 여겨졌다. 연맹은 최근 스포츠 용품업체 뉴발란스와 후원계약을 맺었다. 덕분에 3회 대회인 ‘2015 New Balance Football SUFA CUP’ 결승전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대학생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일종목 대회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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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3회 대회 ‘2015 New Balance Football SUFA CUP’의 결승전. [사진=SUFA]



뉴발란스 측은 이 외에도 참가 대학 모두에게 축구 스타킹, 학교와 팀 이름이 새겨진 축구조끼를 제공했고, 결승전 전문 심판 지원, 트로피, 각종 물품비 등 약 1,000만 원 규모의 물품을 후원했다. 연맹에서는 가장 취약했던 제정적인 부분을 해결했고, 뉴발란스는 축구 산업에 뛰어든 초기에 확실한 젊은 소비층을 확보한 셈이니, 서로 ‘윈윈’이다.

이밖에도 SUFA는 서울권 24개 대학과 MOU를 체결했다. 협약을 맺은 팀들은 ‘중앙동아리’, 혹은 ‘체육학과 동아리’라는 연맹의 자체적인 인준과정을 거쳐야 한다. 때문에 각 팀들은 소속 대학의 대표성을 띤다. 이 점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서경대학교 ‘스나이퍼’의 회장 조영재 씨는 “학교대항 대회를 나가면서 점점 하나의 팀이 되어 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운영진은 이에 자부심을 느낀다. 팀원들에게도 학교를 대표하는 팀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했다.

스펙, 보상… “그런 거 없어요. 그냥 축구가 좋아서 하는 거죠”

이 모든 것은 대학생들이 직접 일궈냈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운영진은 대회 운영부터 경기 수칙, 경기 진행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때문에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홍우택 부회장(고려대)은 “모든 게 처음 하는 일들 투성이다. 그러다보니 경기장 섭외나 회장단 연락 등을 위해 스마트폰 메신저를 1분마다 쳐다봐야 할 정도로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맨땅에 헤딩한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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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축구를 좋아해 모인 SUFA 운영진 12명. [사진=SUFA]



홍보팀 역시 후원업체를 찾기 위해 일일이 발로 뛰고 있다. 식사를 거르는 일도 부지기수다. 얻는 건 뭘까. 이한빛 회장은 “운영진 모두가 자기 시간 쪼개서 열심히 하지만 금전적인 보상은 물론 스펙 한 줄에도 쓸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활동 후 자체 수료증 외엔 줄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미안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운영진은 고맙게도 그들 안에서 동기부여를 찾고 있었다. 홍보팀 유희경씨(서울여대)는 “힘든 것 보단 항상 재밌다. (운영진)모두가 축구를 좋아해 모였다. 우리의 동기부여는 ‘축구’다”라며 미소 지었다.

2년째로 접어든 연맹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 연맹은 경기운영팀, 홍보마케팅팀,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스팀으로 세분화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특히 홍보마케팅팀은 믹스트 존(Mixed Zone)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경기 후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소셜 미디어에 게재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 중이고, 또 계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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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이 만든 믹스트 존(Mixed Zone). 조명, 카메라, 배경, 그리고 리포터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연맹은 운영이나 대회진행의 부족한 부분들을 소속 동아리 회장들에게 피드백 받으며 개선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대화와 교류가 많아졌다. 연맹은 대회가 아니더라도 학교 간 친선경기를 자주 주최한다. 축구라는 소재로 하나의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한 운영진은 “축구가 좋아 모인 만큼 경기 중에 팀 간 마찰이 있어도 경기 후엔 모두 웃으며 푼다”고 전했다. 이들은 서로 부족한 것을 이해하며 발전해가고 있다.

축구 좋아하는 전국 대학생들을 모으고 싶다

이번 제4회 SUFA CUP에는 총 24개 팀이 참가해 3팀 씩 8개 조를 이뤄 서울권역별 조별예선을 치렀다. 이날 모든 예선경기가 끝나, 서경대학교 등 각 조 1위 팀들이 8강으로 진출했다. 8강 진출 팀들은 12일부터 또 다시 방과 후 저녁, 환한 불빛 아래 그라운드를 밟게 된다.

기업, 총장 등의 후원이나 대한축구협회, 국민생활체육회 등 스포츠 단체의 지원 없이 스스로 연맹을 조직하고 대회를 진행하는 대학생들. 이들은 대체 무엇을 향해 '빽 없이' 달리고 있을까.

연맹의 최종 목표는 또 다른 축구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한빛 회장은 “대학교 축구동아리들이 SUFA CUP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SUFA가 하나의 축구 문화가 되는 것이 꿈이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전국 단위 연맹 창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이미 2년 안에 경기·이천연맹 창단의 밑그림을 그려 놨다. 수도권 연맹이 창단 되면 차근차근 전국 축구동아리 연맹을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엔 수원·천안권 대학들과 협력해 ‘왕중왕전’도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연맹은 각 학교 총학생회 혹은 동아리와 연계해 교내대회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회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되지 않기 위해 청춘들은 오늘도 스마트폰을 다잡아 경기장을 섭외하고, 후원사를 구하고, 회의를 위해 모인다. 추운 날씨에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은 대학생들을 보면서 홍우택 부회장이 기자에게 건넨 말이 있다.

“우리에겐 대회 우승이나 트로피가 중요하지 않다. 서울에 살고, 축구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연맹을 통해 한 곳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상상해보라, 축구를 좋아하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한 곳에 모인다는 것을. 정말 꿈 같은 이야기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jirrard92]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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