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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니맨 시즌2, 정면돌파] ⑤ 내가 ‘당당한 저니맨’이 될 수 있었던 계기
‘책장을 넘기는 힘’을 갖춘 스토리북

내가 쓴 글을 인쇄해 주변사람들에게 보여줬다. 반응은 “네가 책을 만든다고?”라고 되묻던 이전과 180도 달랐다. “너는 타고난 이야기꾼 같다”, “내 마음속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책이다” 는 등 호평일색이었다. 그 중엔 이 분야의 전문가인 <2009 외인구단>의 시나리오 작가님도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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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에 빽빽이 들어찬 저니맨 스토리.



“책장을 넘기는 힘이 있다.” 가장 기분 좋게 와 닿았던 평가였다.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만드는 스토리 북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내 자신을 타인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최익성 스스로가 담담하게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는 것 같은 인상도 주고 싶었다(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 책에 내 사진도 넣지 않았다).

서서히 마무리 되어가는 원고를 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단기간에 내 스스로 책을 완성했다는 뿌듯함이 다가왔다. 그러나 뿌듯함보다는 우연치 않게 걷기 시작한 ‘저니맨 인생’에 대한 정체성 혼란이 더 컸다. 주변 사람들은 고집 세고, 타협을 못하는 나를 보며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된다”라고들 했다. 난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맞다고 생각하면 절대 바꾸지 않았고 내 판단에 대한 후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쓰며 처음으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내 인생을 돌아봤다. 종종 ‘내가 잘못 살았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저니맨 인생을 당당하게 해준 한 남자

2010년 겨울. 바깥에서 마지막 퇴고를 마치고 돌아와 TV를 켰다. 원래 TV를 잘 안 보지만 그날은 나도 모르게 TV를 켰다. 여기저기 채널을 옮겨 다니다가 한 남자를 보고 손을 멈췄다. 뭐하는 사람인지는 전혀 몰랐다. 하지만 서울 시내가 훤히 보이는 사무실에서 지내는 모습을 보며 대단한 사람인 것만 어렴풋이 짐작했다.

처음 보는 그 남자는 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주변상황과 타협하지 말라고 했다. 남의 말을 너무 듣지 마라고 했다. 과감히 도전하고, 모험하라고. 낙오자는 도전에서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 것에도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욱신거리고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해졌다. 내가 그 동안 타박 받아오던 것들을 모두 옳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마치 나만을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일 만한 사람에게만 고개를 숙였다. 남의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옳지 않은 말들을 걸러냈을 뿐이었다. 상식에 어긋나고 정직하지 않은 일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선수협에 가입하기 위해 구단이 제시한 ‘야구 포기 각서’에 지장을 찍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항상 지적을 받았던 타격폼을 고수한 것도 마찬가지. 나를 본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내 폼을 바꾸려고 했다. 아무 근거 없는 조언에 내 선수인생을 걸 수 없었다. 코치들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내 타격 폼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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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우연히 만난 박용만 회장은 내 인생에 확신을 심어줬다. 출처=SBS TV화면 캡처


내 고민을 속 시원히 풀어준 남자는 두산 박용만 회장이었다. 그는 <신년특집 SBS 스페셜 '출세만세4부-리더에게 길을 묻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리더의 덕목을 말했던 것이었다. 방송이 끝난 뒤 나 혼자 박수를 쳤다. 박용만 회장 덕분에 내 정체성을 찾았기 때문이다. 난 리더에 어울리는, 아니 리더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못됐던 게 아니라 ‘내 위치’가 잘못된 것이었다.

난 어디론가 뻗어나가는 리더의 기질을 갖고 있었지만 항상 갇혀 있었다. 삼성 시절엔 신인급이라 리더가 되기 힘들었고, 저니맨 인생을 시작한 이후엔 리더가 되기보다는 팀 적응에 초점을 맞췄어야 했다. 리더가 아닌 사람이 새로운 도전을 하리란 힘들었다. 국내 야구선수 최초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하고, 선수협 창설에도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당시 주변 반응은 대개 비판적이었다. 만약 내가 리더라는 위치에 있었더라면 내 도전들은 무모한 아집이 아닌 용감한 고집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38살 최익성은, 아니 새로 태어난 최익성은 2년 만에 ‘리더’라는 나의 정체성을 찾았다. 완성된 원고를 보며 들었던 정체성 혼란도 완전히 사라졌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고, 2010년 3월 2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2009년 9월 길바닥에서 한 ‘6개월 만에 책 만들기’라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책 제목은 당당한 나의 인생. 「저니맨 Journey man」이었다. [정리=차원석 기자 @Notime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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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나의 인생. 「저니맨 Journey man」


* 최익성

이름보다 ‘저니맨’이란 호칭으로 더 유명한 남자. 힘들고 외로웠던 저니맨 인생을 거름삼아 두 번째 인생을 ‘정면돌파’ 중이다. 현재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 대표를 지내며 후진양성에 힘 쏟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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