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화영이 만난 골프人](1)한국 골프기자 1호 최영정
이미지중앙

48년간 골프를 취재하고 있는 국내 골프기자 1호 최영정 옹.


한국의 여자 골프는 미국과 일본 투어에서 매년 10승 이상씩 거둘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의 골프장은 전 세계에서 10위권에 들 정도로 많고, 내장객은 한 해 3,000만 명을 넘어섰다. 해외 한국인과 교포사회에서 골프는 교민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매개체다. 한국인에게는 타고난 골프 DNA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인생을 골프에 바친 한국의 장인들을 찾아가는 시리즈를 마련해 격주로 진행한다. 한국인의 골프에 대한 열망과 소망, 절망을 찾아보려 한다. 첫 번째는 67년부터 골프 취재를 시작해 근현대 한국 골프사를 지켜본 최영정 옹이다. 그는 대한민국 골프 기자 1호이자 최장 현역 골프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이미지중앙

서계동의 집필실과 옆의 65년전 포스터.


48년째 골프 칼럼니스트 최영정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사무실은 15년이 가까워오지만 변함이 없다. 4층 철문에는 ‘최영정 골프칼럼 집필실’이란 문패가 붙어 있고, 그 옆으로는 65년 전에 만들어진 일본 교라쿠엔 경기장에서 가라테 고수 오야마(최영의)가 황소와 대결한다는 포스터가 걸려 있다. 만화 주인공이던 최배달 최영의 선생이 그의 친형이다.

꼿꼿한 자세에 형형한 눈빛으로 악수를 청해 오는 자세가 6년 전에 찾았을 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안대로 한쪽 눈을 가린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여전히 건강하신 모습 뵈니 좋습니다. 그런데 눈은 어쩌시다가…” 안부 인사를 나누고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는데 의외의 답으로 돌아왔다.

“한양CC 60년사 책을 썼는데 초봄부터 여름까지 형광등 돋보기 켜고 내 키 만한 자료들을 살피고 조사하느라 보냈더니 양쪽 눈 시력이 안 맞아졌어.” 하더니 금세 안대를 다른 쪽으로 돌려 써 보인다. “두 눈 다 뜨고 있으면 남 기자가 2겹으로 겹쳐 보여.”

일단은 건강을 확인한 것 같아 다행이었고, 다음으로는 한 쪽씩 번갈아 안대를 사용하는 기발함과 경쾌함이 반가웠고, 마지막으로는 아직까지도 책을 쓰느라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찾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64년 개장한 한양CC의 50년사를 10년 전에 썼는데 최근 9홀 퍼블릭 한양파인을 개장하느라 60년사를 추가로 써야했다고 설명했다. 500페이지 가량 되는 분량을 썼다고 했다. 컴퓨터를 안 하는 그가 원고지에 글을 써 보내면 기획사에서 타이핑 해 책으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러면서 혀를 찬다. “일본이나 외국에 비해 한국 골프계가 책을 내는 데 인색하다. 일본의 명문코스는 일 년에 네 번 정도 낸다. 우리는 읽는 사람이 없는 것인지.”

이미지중앙

서재에 선 최영정 옹. 그 뒤로 액자 속에서 최배달 선생이 정권 찌르기 자세를 하고 있다.


논객이 본 프레지던츠컵
1931년 10월생이라 올해 84세인 최영정 옹은 올해 책 한 권을 추가했고,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 현역이다. 골프의 현안에 관심을 가지며, 또 자신만의 주장과 논리를 항상 가다듬는다. 뛰어난 칼잡이는 평시에도 칼을 가는 일에 정성을 다하듯, 그는 골프 기자로서의 문제 의식을 마치 일상처럼 가지고 있다.

인터뷰를 하러 간 날은 마침 프레지던츠컵이 끝난 다음 월요일이었다. 테이블에는 프레지던츠컵과 배상문의 얼굴이 크게 나온, 서로 다른 영자 신문 2부가 있었다. 프레지던츠컵이 화제로 오르자마자 마치 차례를 준비해온 논객처럼 일사천리로 말을 시작했다. 친형인 최배달 선생처럼 사안에 대해 거침없는 정권 찌르기로 나온다. 목소리도 우렁차다.

“한국에서는 다들 잘했다고 칭찬 일색이데. 하지만 이 대회를 외국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 나도 배상문이 좋기는 하지만, 하마터면 병역 기피자가 영웅이 될 뻔하지 않았나? 매스컴은 국가를 대상으로 한 행정 소송에 부드럽던데, 언론이 너무 비판성이 약한 건 아닌가? 미국은 골프장 클럽하우스마다 성조기를 게양하는데 우리는 그런 골프장이 왜 없나? 그런 것에 대해 기자들은 왜 비판하지 않나? 그리고 프레지던츠컵이란 대회도, 미국을 한 나라를 상대로 다른 나라 전부가 겨루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넌센스고, 쇼 아닌가? 미국과 유럽이 하는 라이더컵은 감정과 감정의 격돌이라 할 수 있어. 역사가 오래고 원래는 미국과 영국의 대결이었으니까. 또 지금은 달러와 유로화의 대결 구도니까 나름대로 논리가 선다. 싸워서 적을 물리쳐야 하거든. 그런데 미국 하나에 맞서서 남아프리카, 인도, 한국, 호주 등이 합친 것인데, 누구를 위해 이겨야 하느냐. 무엇을 위해 이겨야 하나?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사고의 틀은 국가 단위인데 그게 없으니 인터내셔널팀은 약하고 매번 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죽비(竹扉)가 졸음에 겨운 아둔한 구도자를 깨우치려는 듯 쉼 없는 질문들로 내려치는 속에 노장의 예리함과 논객의 명쾌함이 번득이다. 마땅히 반박할 근거가 없어지고 그의 논박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다가 ‘나는 왜 그 생각은 못했을까?’하는 감탄에 이른다.

이미지중앙

(왼쪽부터)잭 니클라우스의 골프 마이웨이 재개정판, 최 옹의 번역서 초판, 니클라우스의 당시 원본.


최경주와 니클라우스와의 만남

답변이 군색해진 기자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화제를 다른 데로 돌린다. 한 때 2,000여 권이나 되어 집필실을 채우던 미국, 일본에서 나온 골프 전문 책들이 이젠 상당수 줄어들어 있었다. 그중에 최 옹이 쓴 책이 한 공간을 차지한다. 모두 22권이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이 74년에 나온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의 세계>라는 책이다. 잭 니클라우스가 쓴 <골프 마이웨이>를 해적 번역한 책이었다.

골프 레슨서이면서 이론 서적이다. 익산에서 고등학교 영어 교사를 3년간 하다가 기자 생활을 했으니 그의 골프 지식의 원천은 미국, 일본 서적이었다. 당시에 골프 교습서라는 것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는 책을 구해다 읽고서 번역한 레슨 서적을 펴냈다. 하지만 그것도 희귀했기 때문에 아주 잘 팔렸단다.

“그걸로 레슨도 하고 연습장 프로들도 꽤 많이 팔아줬고, 그래서 돈 좀 벌었지.” 그 책은 초창기 국내 골프계의 베스트 셀러였다. 79년에 표지 장정을 달리한 개정판이 나오고, 81년에 재개정판이 나왔을 정도다. 그 책을 열심히 읽고 골프선수가 된 소년이 바로 완도의 최경주였다.

최경주가 2007년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하고 대회 주최자인 잭 니클라우스 앞에서 “제가 당신의 책을 읽으면서 골프를 시작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그 교습서가 바로 최 옹이 번역해 쓴 책이었다. 제대로 된 교습가를 찾을 리 만무했던 섬소년 최경주에게 그 책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최경주는 나중에 커서 결혼할 무렵에 최 옹을 찾아와 주례를 부탁했을 정도다.

“나 역시 잭 니클라우스에게 빚이 있지. 저작권을 주지도 않고 그 책을 베꼈으니까. 나중에 니클라우스가 한국에 온 적이 있어서 내가 찾아갔었어. 그래서 책을 보여주면서 ‘내가 당신 책을 베껴서 썼다’고 고백했는데 니클라우스가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데.”

이미지중앙

서가 한 공간에 그가 저술한 22권의 책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다.


골프 반평생에 22권 저술
최 옹이 쓴 22권의 책들을 보면 테마도 참으로 다양하다. <코스에 자취를 남긴 사람들>은 한국 골프사의 최고 개괄서라 할 만하다. <두뇌 골프>는 일본서적을 번역한 것이며, 스윙 레슨 서적도 있다.

“어떤 책이 가장 애착이 가십니까?” 물어도 웃으며 답이 없다. 우문(愚問)이다. 당연히 잘 팔린 책이자 많이 읽힌 책인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고, 공들여 낳은 자식 중에 미운 놈이 누가 있으랴.

질문의 방향을 달리했다. “<유익한 골프용어 정답> 같은 책은 어떻게 쓰게 되신 겁니까?”

“내가 그래도 외국 서적을 읽고 골프 용어를 국내에 전달한 사람 아니요. 그러니 정확한 표현이나 올바른 뜻을 알리자는 것이지. 그 단어들 속에 숨겨진 재미난 의미도 많고.” 맨 마지막에 나온 책은 <韓流 골프, Why so, Why not>이다. 다양한 테마, 다양한 소재에 오랜 동안의 기자 생활과 칼럼니스트로 살아왔는데 책을 만드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번에도 역시 우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가장 아쉬운, 고치고 싶은 책은 뭡니까?”
“<핀 향한 一片丹心이여>가 좀 어떻소. 600개 골프 시조를 담았는데 제목이 좀 이상하지 않어?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비유한 것이지. 그러면 ‘일편단심이야’라고 해야 하는데 그 뉘앙스를 못 살리고 ‘일편단심이여’하니 뭔가 맥 빠진 것 갖지 않소? 그게 좀 아쉽지.”

6년 전에 그의 집필실을 찾았을 때는 골프책이 2,000여 권이었다. 한창 때는 일본에 출장간 사람 편으로 책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골프 60년사>라는 책은 70년대 당시 돈으로 4만 5,000엔이었으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70만 원은 족히 된다고 했다.

최 옹은 “4~5시간 집필실에서 보내는데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 보면 의미가 새로워진다”고 했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또 써낸 것이다. 지나온 48년 자체가 골프 현대사이기도 했다. 그런데 3면의 벽을 가득 채우던 책은 절반 이상 줄어있었다. “올해 말이면 여기 집필실도 정리할까 고민중”이라고 했다. 그럼 이 책들은? 괜히 쓸쓸해졌다. <2편으로 계속>

*계속해서 67년 골프기자를 시작해 겪은 에피소드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김형욱 정보부장을 피해 숨어다닌 얘기, 친형인 가라테 고수 최배달 최영의 선생에 대한 기억 등이 이어집니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