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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스포츠 선수로 산다는 것
올해 국내 프로 스포츠계는 각종 추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프로농구에서는 한 유명 감독이 승부조작 의혹을 받았으며, 적지 않은 선수들은 불법도박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다. 최고 인기 종목인 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다. 명문 구단의 선수들이 해외원정도박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는 소식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으며, 한 선수는 상식 이하의 SNS 글로 구설수에 올랐다.

프로 스포츠가 가장 발전한 미국의 경우, 우리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추문의 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 중 최고 인기 종목인 미식축구(NFL)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마약복용, 총기소지, 성폭행, 폭력, 음주운전 등의 범죄가 매년 발생한다. 올해도 ‘슈퍼볼’이 끝난 이후 8월까지 23명의 선수들이 각종 범죄로 경찰에 체포됐다. 미프로농구(NBA)와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역시 선수들의 범죄 행각이 끊이질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같은 추문을 대하는 양국 국민들의 태도가 아주 다르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의를 일으킨 당사자들을 제명하는 등 강력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룬다. 미국의 경우, 그들은 스포츠선수의 범죄 유무 자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즉, 선수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그들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가 팬들에게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범죄를 저지른 선수들이 미국에서는 경기에 버젓이 나오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왜 이리 차이가 날까? 두 가지 관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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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를 폭행해 구설에 올랐고, 이후 솜방망이 징계로 여론의 화살을 맞은 미국프로풋볼(NFL)의 스타플레이어 레이 라이스(Ray Rice).


첫째, 스포츠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스포츠를 하나의 ‘오락(pass time)’으로 간주한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자신이 즐거우면 그만이다. ‘오락’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NFL은 오래 전부터 ‘범죄소굴’이라는 오명을 입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장에는 매년 구름관중이 몰려들고 TV광고 단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스포츠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연결시킨다. 스포츠 경기로 인한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슬퍼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팀이 이기면 한 없이 기쁘고 즐겁지만, 반대로 지면 그렇게 슬퍼하고 노여워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팀이 이기면 하루 종일 일이 신나지만, 지면 일하기가 싫어진다. 일부 청소년은 스타 스포츠 선수를 롤모델로 삼기도 한다.

둘째, 스포츠 선수를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 또한 다르다. 미국인들은 스포츠 선수를 일반인과 같이 취급한다. 때문에 스포츠 선수에게 일반인들보다 더 높은 도덕적 책임을 기대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스포츠 선수는 그저 운동을 잘 해서 돈 많이 받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스포츠 선수에게 더 높은 도덕적 책임을 강요한다. 그들을 ‘공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는 해외에서 숙소를 이탈해 술 한 잔을 들이켜서도 안 된다. 당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하며, 음주운전 역시 하지 말아야 한다. ‘도덕군자’가 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만약 이를 어겼다가는 일반인에 비해 몇 배 이상의 가혹한 ‘마녀사냥’을 당한다.

결국, 도덕적 책임의 잣대는 스포츠 그 자체와 스포츠 선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느 쪽 시각이 더 타당하냐는 것이다.

필자는 스포츠는 이미 우리 국민들의 삶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미국인들의 시각처럼, 스포츠 경기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여느 TV드라마나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들이 스포츠를 삶의 일부로 여기에 된 배경을 안다면, 스포츠가 단순히 ‘오락’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의 스포츠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정치적, 사회적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구’ 역할을 해왔다.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 지를 수 없었던 시대에 일반 국민들은 스포츠를 통해 마음껏 소리칠 수 있었다. 그러한 ‘분출’이 스포츠 특유의 ‘재미’와 어우러져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스포츠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이상, 스포츠 선수를 ‘사실상’의 ‘공인’으로 취급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단순히 그들이 TV에 자주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이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공인’으로 보는 이유 역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른바 ‘공인’으로 불리는 인사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미 도를 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들에게 실망한 국민들은 다른 곳에서 ‘위안’을 찾다가 마침내 공정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있는 스포츠를 만나게 된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그런 집단에 속한 스포츠 선수들에게 지도자급 도덕성을 기대했고, 급기야 그것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스포츠 선수는 원하든 원치 않든 국민들의 삶과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과 ‘공인’이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의식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선수로 살아가겠다면 말이다. Sean1961@naver.com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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