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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메이카전 3-0 승리', 슈틸리케 감독의 부임 후 1년
벌써 1년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은 세계 변방인 한국 대표 팀을 4강으로 올려놨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에서 국민적 영웅이 됐다. 그리고 히딩크는 얼마 전 2015 시각장애인경기대회에 홍보대사로 추대됐다. 그는 월드컵이 끝나고 한국을 떠나며 한 약속(“개최 도시 10곳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풋살장 드림필드를 짓겠다”)을 지키기 위해 시각장애인 축구장인 ‘드림필드’를 13곳이나 짓는 등 아직까지도 한국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13년이 지났다. 현재 한국 축구 대표 팀의 새로운 키(舵)를 잡고 있는 사람은 파란 눈의 외국인이다. 독일 출신의 울리 슈틸리케. 핌 베어벡 이후 7년 만에 부활하는 외국인 감독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했다. 그는 취임 기자회견 당시 변화와 실리를 신조로 한국축구의 개혁을 약속했다. 그리고 벌써 1년이 지났다. 슈틸리케 호(號)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평가전 상대 자메이카를 3-0으로 꺾으며 1주년 축포를 쏘아 올렸다. 이날 경기가 열린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는 대한축구협회 주관으로 슈틸리케 감독 1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됐다.

"축구에 정답은 없다. 어떤 날은 패스축구를 할 수도, 어떤 날은 롱 볼을 펼치는 축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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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2014년 9월 8일 부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실패한 전임 감독들처럼 ‘스페인식 축구’나 '만화 축구'따위의 거창하고 그럴듯한 다짐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오직 '이기는 축구'를 목표로 하겠다고 했다. 그는 “티키타카(스페인식 패스축구)나 고공 축구 등 한 가지 스타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에 맞게 이기는 축구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내 조국인)독일 축구가 정답은 아니다. 한국 실정에 맞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9월 부임 후 다음 달 10일 파라과이를 상대로 감독 첫 경기를 치렀다. (이날 2-0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이후 줄곧 다양한 전술과 조합을 구상했다. 총 21차례의 A매치 동안 15승 3무 3패를 기록했다. 승률은 71%에 달하고 이 기간 한국축구는 36득점 8실점을 기록했다.

“열심히 뛰면서 좋은 성과를 보인 선수에겐 합당한 보상이 필요하다.”
지난 6월,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의 주장 염기훈은 개인 기록 측면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득점과 도움 부문에서 정상에 오르고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UAE와의 친선경기와 미얀마와의 월드컵 2차 예선을 앞두고 염기훈을 발탁했다. 1년 5개월 만의 부름이었다.

염기훈은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보여준 뼈아픈 실수 탓에 팬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다. 이후 그는 팬들의 편견을 실력과 결과로 바꿨고 결국 대표 팀에 승선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당시 “공격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을 계속 해왔는데 리그 공격 포인트 부문에서 1위를 하고 있는 선수를 선발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소집의 근거를 역설했다. 그는 염기훈뿐 아니라 강수일(제주), 최보경(전북), 정우영(빗셀고베), 이주영(전북), 임채민(성남),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와 같은 선수들도 리그에서의 활약을 근거로 대표 팀에 차출했다.

그는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뿐만 아니라 챌린지(2부), U리그(대학리그) 등의 경기장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바로 그 당연한 일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전임 감독들 때문에 대표 팀의 기강과 시스템은 무너졌고 그는 부임 이후 1년간 줄곧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그 결과 2부 리그의 이정협(상주)과 젊은 이재성(전북), 권창훈(수원) 등이 ‘깜짝’ 발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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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틸리케 황태자' 이정협이 지난 1월 26일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서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준결승전 이라크와의 경기서 골을 넣고 환호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영원한 추방은 없다는 것을 소신 있게 밀어붙였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져 있다는 점을 각인시켰다.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한 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한국축구계에 던졌다.

“1주년 경기는 무실점으로 승리하겠다.”
슈틸리케 감독은 '1주년 경기'인 자메이카전에서 언제나처럼 4-2-3-1 포메이션을 가동했다. 황의조(성남)가 원톱으로 공격 선봉에 섰다. 2선에는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과 기성용(스완지시티), 이재성(전북)이 위치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지동원이 오랜만에 측면 공격수의 임무를 맡았고, 기성용은 수비형에서 공격형으로 전면 배치됐다. '더블 볼란치(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정우영(빗셀고베)과 한국영(카타르SC)이 짝을 이뤘다. 포백에는 김진수(호펜하임)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기희(전북) 김창수(가시와)가 포진했고, FA컵으로 빠진 김승규(울산)대신 정성룡(수원)이 골문을 지켰다.

한국 수비진은 경기 초반 자메이카의 빠른 발에 고전했다. 10분도 되지 않아 2번의 슈팅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날 자메이카 수비는 측면 크로스에 약한 모습을 보였다. 슈틸리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전반 20분에 잡은 기회는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작은 오른쪽 측면 수비 김창수의 오버래핑이다. 그는 자메이카의 3선까지 깊게 침투했다. 이후 페널티 박스 바깥으로 내려온 황의조에게 패스했다. 황의조는 곧바로 왼쪽 측면의 이재성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이재성은 페널티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공은 지동원의 머리에 맞고 뒤쪽의 기성용에게 흘렀다. 기성용은 왼발 슛을 시도했다. 슛은 아쉽게 수비벽에 막혔다.

이후 한국은 측면을 주로 공략했다. 측면 공격수 지동원과 이재성이 안쪽으로 파고드는 사이 측면 수비수 김창수와 김진수는 깊숙이 오버래핑했다. 김창수의 정확한 크로스와 김진수의 날카로운 슈팅이 상대 수비진을 괴롭혔다. 전반 20분까지 좋았던 자메이카의 수비조직력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메이카는 지난 6월 코파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 각각 1실점 만을 기록한 바 있다)

한국은 쉴 새 없이 측면을 두드렸다. 그리고 기어코 또 다른 공중 볼 찬스에서 득점을 올렸다. 코너킥 상황에서 지동원이 헤딩 골을 기록한 것. 이날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는 지동원에게 7개월 만에 기회를 줬다. 선수는 감독의 믿음에 화답했다.

지동원은 측면 공격으로 먼저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는 경기 내내 측면에서 안쪽으로 침투했다. 전반 32분 40M 가량 드리블 후 수비 한 명을 제치고 슛. 골키퍼 맞고 튀어나온 공을 황의조가 헤딩으로 연결했지만 빗맞았다. 그는 계속 슈팅을 시도한 끝에 전반 35분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 선취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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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자메이카의 친선경기에서 전반 지동원이 골키퍼를 피해 헤딩골을 넣고 있다.



지동원은 후반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후반 10분 페널티 킥을 얻어냈다. 김진수가 왼쪽 측면에서 앞쪽의 지동원에게 스루패스를 찔러줬다. 지동원은 공을 잡고 터치를 하자마자 뒤따라오던 수비에 걸려 넘어졌다. 주심이 페널티 스폿을 가리키며 휘슬을 불었다. 기성용이 침착하게 골을 넣었다. ‘만점 활약’을 펼친 지동원은 후반 32분 권창훈과 교체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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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자메이카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기성용이 패널티킥을 성공 시키고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슈틸리케가 부여한 기회를 받은 또 한 명의 공격수가 있다. 현재 대표 팀은 포워드 자리를 두고 ‘황태자’ 이정협을 비롯해 지동원, 김신욱(울산), 석현준(비토리아 FC), 이용재(V바렌 나가사키)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이날 선발로 출전한 황의조는 뒤늦게 슈틸리케 호에 승선했다. 소속 팀 성남에서의 활약 때문에 대표 팀에 부름을 받은 것이다.

황의조는 전반 38분 골대를 맞추는 등 전반에만 3개의 슈팅을 기록했다. 그는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공격수로 유명하다. 그는 후반에도 활발하게 1, 2선을 누볐다. 그리고 19분 침착하게 수비를 제친 후 왼발 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팀의 세 번째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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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자메이카의 친선경기에서 후반 황의조가 팀의 세 번째 득점을 성공시키고 있다.



이후 한국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세 골 차 리드를 지켰다. 3-0 승. 부임 1주년이 된 슈틸리케 감독은 이날 경기 전 “2015년 성적이 13승3무1패고 그중 14번이 무실점 경기였다”며 “선수들에게 이런 좋은 방향을 유지하며 올해 남은 경기에서도 모두 이기자고 당부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을 지켰다.

"나에 대한 평가는 팬들 몫"
히딩크가 단기간에 열매를 맺는 데 주력했다면, 슈틸리케는 장시간 한국축구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근본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거침없는 언행과 쇼맨십을 보여준 히딩크와 달리,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문화와 정서를 존중하고 되도록 언행을 삼가고 있다. 두 사람의 과제와 성향은 다르지만 한국 축구에 필요한 시대적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같다.

'월드컵'을 치른 히딩크 감독과 아시아권 국가들과 주로 겨룬 슈틸리케 감독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직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저울질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이 끝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히딩크 이후 국내외 감독을 통틀어 슈틸리케 감독만큼 국민적 호응을 얻고 있는 지도자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지난 10일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중동 원정 2연전을 승리로 마무리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귀국 후 대표 팀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표팀에 100점 만점을 주고 싶다. 선수들은 모두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무엇보다 좋은 K리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유럽파, 국내파 할 것 없이 대표팀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여러분들이 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헤럴드스포츠=지원익 기자@jirrard92]

13일 A매치 경기결과
한국 3-0 자메이카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발자취
총 전적 : 22전 16승 3무 3패
1) 14-10-10 한국 2-0 파라과이 (친선경기)
2) 14-10-14 한국 1-3 코스타리카 (친선경기)
3) 14-11-14 요르단 0-1 한국 (친선경기)
4) 14-11-18 이란 1-0 한국 (친선경기)
5) 15-01-04 사우디아라비아 0-2 한국 (친선경기)
6) 15-01-10 한국 1-0 오만 (아시안컵)
7) 15-01-13 쿠웨이트 0-1 한국 (아시안컵)
8) 15-01-17 호주 0-1 한국 (아시안컵)
9) 15-01-22 한국 2(e)-0 우즈베키스탄 (아시안컵)
10) 15-01-26 한국 2-0 이라크 (아시안컵)
11)15-01-31 한국 1-2(e) 호주 (아시안컵)
12) 15-03-27 한국 1-1 우즈베키스탄 (친선경기)
13) 15-03-31 한국 1-0 뉴질랜드 (친선경기)
14) 15-06-11 한국 3-0 아랍에미리트 (친선경기)
15) 15-06-16 미얀마 0-2 한국 (월드컵예선)
16) 15-08-02 중국 0-2 한국 (동아시안컵)
17) 15-08-05 일본 1-1 한국 (동아시안컵)
18) 15-08-09 한국 0-0 북한 (동아시안컵)
19) 15-09-03 한국 8-0 라오스 (월드컵예선)
20) 15-09-08 레바논 0-3 한국 (월드컵예선)
21) 15-10-08 쿠웨이트 0-1 한국 (월드컵예선)
22) 15-10-13 한국 3-0 자메이카 (친선경기)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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