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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엘리트주의’를 넘어서야 사람이 됩니다”
지난 15일 새누리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나성린 의원이 “아프리카 국가도 아니고 창피해서 함께 앉아 있기 힘들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의원이 피감 수장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인격살인적으로 공격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 의원은 “무슨 아프리카 같은 운영이 있었느냐”고 항의하자 결국 나 의원이 마지못해 사과하는 일이 발생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촌극’이라고 표현했다. 우발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이것이 결코 그리 간단한 해프닝이 아니라는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촌극’으로 보여도, 그 배경에는 이들 의원의 뇌리에 ‘엘리트주의’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는 정치 후진국이라는 ‘편견’과 함께,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멸시해도 좋다는 사고방식 말이다(경제력과 교육수준을 놓고 비교해볼 때 한국의 정치수준과 아프리카 국가의 그것은 ‘도진개진’이라는 게 필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정치인들에게서만 ‘엘리트주의’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요즘 인구에 회자하는 일부 대기업 임원들의 ‘갑질’ 역시 ‘엘리트주의’의 부산물이다. ‘학벌주의’는 또 어떤가. 명문대 출신은 우대하고 ‘지방대’ 출신은 멸시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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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재단 이사장 등 현역 은퇴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양준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스포츠계도 예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심할 수도 있다. 실질적으로 ‘1등’만 우대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야구 양준혁 씨의 ‘엘리트주의’는 섬뜩하기조차 하다. 얼마 전 그는 김응용 전 감독에 대한 한 칼럼니스트의 비판 글에 발끈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글로 야구 본 사람들이 뭘 안다고 함부로 나불대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야구에 야자도 모르고 타석에서 안타도 한 번 못 때려본 사람들이 감히 누구한테 함부로 논하는지 내 눈이 의심스럽네요. 야구를 우습게 아시는 분 절대 야구 판에 얼씬 마시길 바랍니다.”

글은 그 사람의 생각을 대변한다. 양준혁 씨의 글을 분석해보면 그가 얼마나 ‘엘리트주의’에 함몰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뭘 안다고 함부로 나불대는지…”, “야구에 야자도 모르고…”, “타석에서 안타도 한 번 못 때려본 사람들이”, “감히 누구한테 함부로”…. 쉽게 말해서, 야구 안 해본 사람들은 야구에 대해 ‘무식’하니 입 다물고 있으라는 뜻이다.

양준혁 씨가 ‘엘리트주의’라는 우물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은 프로야구 18일 삼성-두산 전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야구 해설위원이기도 한 그는 한 선수가 기술적으로 안타를 기록하자 “저렇게 안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3할타자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 속에는 자신을 추켜세우는 ‘엘리트주의’가 숨어 있다. 프로 통산 3할1푼6리를 기록한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현재 세계여자 골프 1위인 박인비 역시 ‘엘리트주의’의 희생양이라 할 수 있다. 올 브리티시오픈을 앞두고 박인비는 올림픽 관련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Park says "if you are in the world's top 50, you should be able to play in the Olympics" … Speaking Wednesday at the British Open, Park says it is "disappointing" that all the best players won't be at the Olympics(출처: AP통신).

박인비가 2016 리우 올림픽 골프선수 출전규정을 비판한 내용이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6 리우 올림픽 골프의 출전규정에 따르면, 국가별로 2명씩 출전 선수를 제한했다. 그러나 상위랭커를 배려해 15위 이내 선수는 국가당 4명까지 출전토록 허용했다. 박인비는 이런 규정대로라면, 현재 세계랭킹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많은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래서 상위 50위 내 선수는 모두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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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역시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박인비의 그런 발언의 배경에도 ‘엘리트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실력이 모자라는 선수는 참가하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다. “최고의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라는 말 속에서 그의 뿌리깊은 ‘엘리트주의’가 읽혀진다. ‘고수’가 ‘하수’와 함께 골프를 치려니 창피한 모양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지 못해 실망스러운가? 그렇다면, 최고는 아니지만 올림픽 참가를 열망하고 있는 하위 랭킹 선수들은 박인비의 ‘엘리트주의적’ 발언에 ‘절망’한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적도기니 수영 선수 에릭 무삼바니는 ‘개헤엄’으로 자유형 100m를 간신히 완영했다. 그리고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고수’와 ‘하수’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 쓸데 없는 ‘특권의식’에서 나오는 ‘엘리트주의’가 없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올림픽이다.

박인비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을 몰랐겠는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탁구의 경우 중국 선수들만의 잔치가 된다는 것인데, 이런 ‘비합리성’을 그가 모르고 그렇게 말했겠는가. 엘리트코스만 밟아 ‘1등’만 해온 그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트주의’가 스며들어 그것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 한 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나도 초선의원 시절 모든 사람을 우습게 보는 자만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엘리트주의’를 넘어서야 사람이 됩니다.” Sean1961@naver.com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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