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청 소속 복서로 활동할 때의 이시영 '선수'.
이시영은 2014년 10월 어깨부상으로 전국체전에 출전하지 못 하면서 은퇴설에 휘말린 바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3월 24일 복싱 국가대표 2차선발전(여자 51kg급)에 출전, 링에 복귀했죠(2014년 종별선수권 우승자인 장유정에게 1-2 판정패). 2016년 리우 올림픽출전이 최종 목표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저의 지인인 임채동 관장(47)으로부터 “이시영이 복싱선수로 은퇴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복싱계에서 우직한 성품으로 유명하고, 이시영이 ‘영원한 스승’으로 삼고 있는 임 관장이기에 말에 무게가 실립니다. 어쨌든 인기 여배우로 복싱붐을 일으킬 정도로 큰 화제를 낳았던 복싱선수 이시영의 은퇴논란에 이제 종지부가 찍어진 듯합니다.
여기서 잠깐 이시영의 ‘짧은’, 그리고 드라마 같은 복싱인생을 정리해보죠. 잘 알려진 것처럼 배우 이시영은 2010년 여자복싱선수를 소재로 한 단막극에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면서 복싱과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정작 드라마는 무산됐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 이시영은 복싱훈련을 계속했고, 2011년 제47회 서울 신인 아마추어 복싱전(여자 48kg급, 이하 동급)에서 우승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어 2012년 제33회 회장배 전국 아마추어복싱대회와 제42회 서울시장배 아마추어복싱대회에서 거푸 우승하며 요행이 아닌 실력임을 입증했습니다. 2013년 1월 이시영은 인천시청에 입단해 ‘실업팀 선수’가 됐습니다(2015년 1월 계약 종료). 그리고 국내 최고의 종합대회인 2013년 전국체전에서 메달에 도전했지만 8강에서 패했습니다.
이시영의 복싱과 관련해서 저는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먼저 멋진 스승 임채동입니다. 이시영은 처음 홍수환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으로부터 복싱을 배웠지만 진짜 스승은 2013년 인천시청으로 옮기면 사제의 인연을 맺은 임채동 관장입니다. 홍 회장은 자신이 이시영과 관련이 있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자신의 품을 떠나자 공개적으로 편파판정 운운하며 생채기를 냈습니다. 판정이 공정하지 못했더라도, 또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해도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시영(오른쪽)과 임채동 관장. 이시영은 2015년 1월 인천시청과의 계약 끝난 후 임채동복싱클럽 소속으로 뛰었다.
임채동 관장은 1997년 인천 계산공고 복싱팀을 맡아 19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한 복싱지도자입니다. 성실함과 우직함은 물론이고 성적도 화려합니다. 98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 김지산(당시 계산공고 1학년)을 비롯해, 송화평, 전찬영, 구세종, 정재민, 전원보, 한철민, 홍인기 등 좋은 선수들을 쉬지 않고 배출했습니다. 14년 연속 전국체전 메달을 배출했고, 올해 15년째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시영이 임 관장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 다시 나오기 힘든 ‘연예인의 복서변신 성공신화’입니다. 아실 이시영에 앞서 남자쪽에서는 배우들의 복서 도전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탤런트 최재성 씨가 1990년 88체육관을 찾아 김철호 관장에게 자문을 받으며 복싱을 연마했습니다. 언론에도 몇 차례 소개된 바 있죠. SBS 창사기념 드라마 <은하수를 아시나요>에서는 권투선수로 분한 최재성이 KO승을 거두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가 KO패를 당하는 상대선수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최재성은 선수 수준의 실력뿐 아니라 복싱지식이 상당해 TV해설을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재성 이후에는 무술감독이자 배우인 정두홍 씨가 프로복서로 변신한 적이 있습니다.
1990년 당시 88체육관의 트레이너였던 필자와 배우 최재성 씨(오른쪽).
어쨌든 복싱인의 한 사람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시영 선수, 지난 5년 간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적으로 고생이 심했을 텐데 그대로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복싱에 관심을 갖게 됐으니 정말 고맙습니다.”
“임 관장,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당신은 정말 좋은 복싱지도자네. 선배로서 자랑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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