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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 최고의 축구 영화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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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한 영화 <골>의 포스터.

대단한, 하지만 아쉬운 영화

<골(Goal)>은 비단 축구팬뿐만 아니라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영화입니다. 사실 해외의 축구 영화들이 국내에 개봉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2006년 독일 월드컵의 붐을 타고 상영되었고, 큰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흔히 잘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가리킬 때 ‘웰 메이드(well made)’라는 표현을 쓰곤 하죠. 이 영화가 그렇습니다. 미국에 불법 체류하던 가난한 멕시코 소년이 스카우트를 따라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는 과정을 감각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 작품입니다. 원래 이 영화는 3부작 시리즈를 예상하고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1부에서는 소년이 프로에 데뷔하는 과정을, 2부에서는 최고의 선수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월드컵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는 장면을 담으려고 했다죠.

그러나 이러한 원대한 계획은 용두사미처럼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초라해져 갔습니다. 주인공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는 장면을 비교적 잘 담은 2편과 달리, 3편에 가서는 앞선 두 편과 비교할 수 없는 졸작이 탄생한 것이지요. 월드컵을 무대로 한 건 맞는데 1,2편의 주인공은 비중 없는 단역으로 전락했고, 2006 월드컵의 하이라이트 편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도, 감동도 없는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잘 나가던 영화가 왜 이렇게 실망스럽게 끝나버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렇다고 해도 1편의 감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주인공이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담은 2편도 나쁘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1편으로만 끝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곤 합니다. 그만큼 단 한 편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골>의 1편만을 다뤄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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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골>의 한 장면.

희미한 꿈을 잡기 위해 인생을 건 소년의 이야기
이야기는 어느 멕시코 가정이 미국 국경을 몰래 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축구공을 가슴에 품은 소년 산티아고 뮤네즈(이하 뮤네즈)는 얼떨결에 아버지 손에 이끌리어 철조망을 넘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엿한 청년이 된 뮤네즈. 하지만 미국에 불법 체류하는 그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합니다. 부유한 집의 청소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뮤네즈에겐 휴일에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게 유일한 낙이지요.

그의 뛰어난 실력을 본 영국인 글렌 포이는 뮤네즈에게 프로선수가 되어 볼 것을 권유합니다. 사실 글렌 포이는 과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톱스타였지요. 하지만 뮤네즈의 아버지는 프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은 허튼 꿈일 뿐이라며 차근차근 청소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아야 한다고 뮤네즈를 막아섭니다.

선택의 기로에 선 뮤네즈. 결국 아버지 몰래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탑니다. 축구의 도시 뉴캐슬은 뮤네즈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만 이내 힘든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후보 선수도 아닌 연습생으로 축구를 하던 뮤네즈.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도 천식이나 동료 선수와의 불화 등이 그의 발목을 잡습니다. 뮤네즈는 과연 뉴캐슬의 주전 선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뉴캐슬은 과연 리그 4위 이내에 들어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따낼 수 있을까요?

클럽 축구의 모든 면을 망라한 걸작
앞서 이 영화가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클럽축구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선 축구 영화니까 경기 장면을 빼 놓을 수 없겠죠. 영화 속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 TV중계로 보던 화면이 아니라, 관객이 한 사람의 선수가 된 것 같은 시점에서 흙이 튀고 거친 몸싸움이 펼쳐지는 축구 경기의 진면목을 박진감 넘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벤치와 라커룸에서 선수들 간의 갈등과 신경전, 감독과의 팽팽한 긴장감 등도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유망주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클럽 축구선수로 탈바꿈하는지에 대한 과정도 생생합니다.

아무리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이야기가 감동적이지 않으면 좋은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겠죠. 이 영화는 자신의 재능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으로 대서양을 건너온 한 축구선수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팀원들 간의 갈등을 딛고 감독의 눈에 들어 주전 선수로 선발되기까지의 피 말리는 심리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축구팬으로서 인상적인 것은 영화 속 뉴캐슬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클럽축구의 문화입니다. 잔뜩 긴장한 채 잉글랜드의 공항에 도착한 뮤네즈를 향해 “우리 팀을 구해 달라”고 말하는 입국 심사원, 병원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 뮤네즈에게 사인을 해 달라는 환자들,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하는 뮤네즈와 침을 튀기며 축구 이야기를 하는 백발의 노인들까지.

뉴캐슬의 사람들인 조르디들은 마치 태어날 때부터 축구팬의 숙명을 타고난 것처럼 꼬마에서 노인까지 흑백의 유니폼을 입고 뉴캐슬 축구에 열광합니다. 아직 국내 리그의 지역 연고가 걸음마 단계인 우리 실정에서 보면, 대를 이은 뉴캐슬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참 부러울 따름이지요.

이처럼 영화 <골>은 한 선수의 성공기를 다루면서도 잉글랜드 축구의 다양한 면을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수작입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3편에 다다르면서 정체성을 잃고 졸작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참 아쉽기만 할 따름이네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리스트로,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이 글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으로 축구팬들로부터 스포츠의 새로운 면을 일깨우는 수작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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