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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골프장의 발견] ‘비밀의 정원’ 웰링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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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 그리핀 9번 홀 티잉 구역.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남화영 기자] ‘웰링턴(Wellington)’하면 뉴질랜드의 수도가 우선 떠오릅니다. 그뿐 아니라 미국, 남아공, 잉글랜드, 캐나다에도 같은 이름의 지명이 꽤나 검색됩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워털루 전투에서 궤멸시켰던 영국의 유명한 장군 이름에서 유래된 웰링턴은 대영제국 전성기에 전 세계 각지에 도시명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웰링턴은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프라이빗 골프장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골프장은 스스로의 이름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웰링턴의 어원을 ‘신의 축복이 있는 신성한 장소’라고 합니다. 쌍두독수리 문장(紋章)을 클럽하우스 2층에 큼지막하게 로고로 세웠고, 청보라색으로 클럽과 직원의 유니폼 색상을 통일했습니다. 골프장은 ‘쌍두독수리가 현세와 정신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상징이며 물질과 영혼의 화합을 의미한다’고 풀이합니다.

오랜 코스가 아니지만 많은 골퍼들에게 많이 알려진 코스도 아니지요. 2013년 10월에 피닉스-그리핀 코스를 개장했고, 2015년 9월에 와이번 코스를 추가 개장하면서 27홀 코스로 최종 완성되었습니다. 여기서 코스 이름들 역시 설명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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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하우스 아래단에 새겨진 웰링턴 컨트리클럽의 쌍두독수리 문장.


웰링턴과 3개 코스명의 유래
3개의 코스 이름은 유럽의 신화 속 동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리핀(Griffin)은 파36, 3668야드로는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상상의 동물, 와이번(Wyvern)은 파36, 3702야드로 가장 긴 전장을 가졌는데 불을 내뿜는 수호자 공룡, 피닉스(Phoenix)는 파36, 3565야드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희망을 주는 영원불멸의 불새라고 합니다. 그들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이 골프장은 유럽 귀족 스타일을 지향하는 코스인 듯합니다.

이 골프장이 최근 월간지 <골프다이제스트>한국판의 ‘한국 베스트 코스’ 1위에 올랐다고 발표되었습니다. 2년 전에 이 잡지 평가에서 3위로 깜짝 선정되고 올해 1위로 올라선 것은 놀랍습니다. 반면, 이 코스는 경쟁 월간지인 서울경제<골프매거진>에서 선정하는 ‘한국 10대 코스’에는 든 적이 없습니다.

세계 골퍼들이 가장 많이 검색하는 골프 사이트인 톱100골프코스(top100golfcourses.com)에서의 한국 순위를 보면 웰링턴은 2016년에 19위, 2017년 17위에 이어 지난해는 10위로 뛰어오른 바 있습니다. 이를 통해 짐작컨대 최근에 조성된 코스지만, 일반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좋은 코스입니다.

지정학적으로 웰링턴을 보면 이천의 수많은 골프장들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 위치합니다.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 사우스스프링스, 왼쪽으로는 뉴스프링빌, 오른쪽으로는 비에이비스타를 이웃하고 있습니다. 산세를 타고 코스가 앉혀졌지만 높지 않은 산이어서 골프장이 들어서기 좋은 지형입니다. 게다가 바로 앞에 고속도로가 있으니 근접성도 뛰어납니다. 근접성 뛰어나고 주변에 골프장도 많지만 ‘이국적(exotic)’이라면 요령부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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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 두미리의 웰링턴은 중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사우스스프링스와 마주한 곳에 위치한다. 옆으로 뉴스프링빌과 비에이비스타 골프장이 있다.


비밀의 정원같은 골프장
저는 ‘비밀의 정원’을 골프장을 함축하는 이미지로 잡고 싶습니다. 일단 이 골프장은 국내 골프장 중에 유일하게 홈페이지가 없습니다. 골프장 측은 만들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어찌보면 홈페이지가 앞으로도 계속 없을 수 있습니다. 굳이 찾자면 웰링턴CC 페이스북이 이 골프장 애호가인 듯한 이에게서 만들어져 운영되다가 최근에 사이트 흔적만 남고 사라진 듯합니다.

‘부킹’이나 ‘홍보’를 위한 홈페이지가 없다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영국의 스윈리포레스트는 홈페이지는 물론 2000년대까지 스코어카드나 골프장 입구의 안내 표지판조차 없는 세계 100대 코스였습니다. 미국의 명문 코스 중에도 아직 홈페이지가 없거나 최소한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회원 이용에 문제없으면 그만이지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골프장을 알릴 필요가 있느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 코스가 한국을 넘어 해외에도 좋은 코스로 알려지려면 세계 어디서든 골프장을 찾고 검색할 기본 정보 사이트는 필요한 듯 보입니다. 기왕이면 영문 사이트도 함께 갖추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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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의 전략성이 잘 드러나는 그리핀 6번 홀.


효성이 오랜 시간 공들인 곳
웰링턴은 효성 그룹 계열사인 두미종합개발이 조성했습니다. 골프 애호가인 조석래 효성그룹 선임 회장이 골프장 조성 과정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자택에 골프연습장을 만들었을 정도로 골프 애호가였던 그는 골프장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물론 현재 이 골프장을 운영하는 이는 그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입니다.

이 골프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기간 설계도를 검토하고 공사 기간도 가장 오래 걸린 골프장에 속합니다. 코스 설계가는 데이비드 헌, 송호, 노준택으로 이어집니다. 휘닉스-그리핀의 뼈대를 잡은 루트 플랜(route plan)은 국내 대표 설계가인 송호 씨가 잡았고, 나중에 코스의 세부 리노베이션과 와이번 9홀 코스를 전체 디자인한 사람은 노준택 씨입니다.

골프장에 공을 들인 흔적은 공사 기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골프장 승인은 2007년 8월에 났고 이듬해 12월에 착공에 들어가 3년 뒤에 완공됐습니다. 하지만 개장은 2년 뒤로 미뤄졌습니다. 송호 씨의 안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2011년 완공이 끝나갈 무렵 코스를 돌아본 조 회장이 코스 일부 개조를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송호 씨가 그걸 거부하면서 결국 신진 설계가인 노준택 가 부분 개조를 넘겨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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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는 휘닉스, 그리핀 9번 홀은 노준택의 공간 조형 스타일이 잘 드러난다.


송호와 노준택 스타일의 혼재
그래서인지 어느 홀에서는 전략성을 강조하는 송호 스타일이 보이고, 어느 홀에서는 편안하고 아기자기한 공간 활용이 돋보이는 노준택 스타일이 느껴집니다. 예컨대 피닉스 5번 홀은 ‘티 샷은 호쾌하게, 어프로치는 정교하게’라는 송호의 특징이 잘 나타납니다. 페어웨이가 넓어서 쉬운 티 샷을 칠 수 있지만 그린 앞 뒤로 벙커가 있어 정교한 세컨드 샷을 요구합니다.

휘닉스 9번 홀은 노준택식 공간 조형이 두드러집니다. 호수와 더불어 계류 활용을 잘하는 그의 장점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페어웨이가 평평하고 그린 주변 공간이 넓어지면서 잘못한 샷도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졌습니다.

그리핀 파3 5번 홀은 자연림 속에 그린만 오롯하게 놓여있는 홀입니다. 애초 설계로는 벙커가 넓게 자리잡고 있었으나 개조 과정에서 페어웨이 대부분을 자연으로 돌려놓고 그린과 그 에이프런 공간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홀 난이도는 껑충 올라갔으나 그로인해 심미성이란 소득은 얻었다고 보여집니다.

스카이72 하늘코스를 디자인한 노준택 씨가 처음부터 도맡은 와이번 코스를 보면 계곡과 지천을 가로로 종횡하면서 홀이 진행됩니다. 1번 홀부터 암반을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를 지나도록 해서 모험의 세계로 떠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초보자가 공략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을 느낄만큼 챌린징한 홀들이 연속됩니다.

파3 3번 홀은 미국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3번 홀처럼 계곡을 건너쳐야 합니다. 파3 7번 홀은 더플레이어스가 열리는 TPC쏘그래스 17번 홀이 연상되는 그린을 가졌습니다. 8번 홀은 미국 애리조나의 섀도우크리크 18번 홀을 연상시키듯 페어웨이 왼쪽의 계류가 그린까지 이어집니다. 홀마다의 독립성은 뛰어납니다. 중간에 다른 홀과 페어웨이를 접하는 곳은 한두 군데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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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번 7번 홀은 TPC쏘그래스 17번을 닮은 아일랜드 그린 홀이다.


주말 27홀 최대 78팀
골프장의 운영은 극소수 회원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운영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여주의 트리티니 클럽, 춘천의 휘슬링락 정도가 이 분류에 해당됩니다. 대체로 비슷한 시기에 개장했으며, 신세계, 태광, 효성 등 대기업의 오너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만든 최고급 프라이빗 골프장이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또한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대외적인 골프장 홍보보다는 극소수 회원의 배타적 기호에 부응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들입니다.

KLPGA 프로출신의 이주은 총괄매니저의 회원권에 대한 설명은 이러합니다. “분양은 현재 210구좌 완료되었고, 올해 5년 만기 반환시점이라 반환 들어오면 18억원에 재분양 계획입니다. 지금은 소멸성 연회비 회원 5천만원(1인 정회원) 동반자 주중 주말 50% 그린피 동반 할인만 분양 중입니다. 27홀에 210구좌로 완료한 것은 10분 티오프에 받는 팀수가 27홀 최대 78팀이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주말 예약에 지장 없도록 분양 구좌수를 210선으로 했습니다. 또한 저희는 화요일이 휴장인데 다구좌 회원들이 많기 때문에 월요일에 휴장하는 골프장이 다수여서 월요일에도 운동하시도록 휴장일을 변경하였습니다. 회원제 골프장 특성상, 주중 2인, 5인 플레이 가능합니다.”

웰링턴은 6개(블랙, 블루, 퍼플, 화이트, 핑크, 레드)의 티잉 그라운드를 모두 열어둡니다. 블랙티에서의 코스 레이팅이 75.8이고, 레드티에서는 70.1입니다. 보기플레이어의 난이도 측정 기준인 슬로프 레이팅은 122에서 142 사이입니다. 실력대에 따른 티잉그라운드 선택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젊은 보통 골퍼라면 여기서는 화이트보다는 퍼플 티가 챌린징하며, 젊은 여성에게는 핑크 티가 더 재미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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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지와 라이그라스의 혼파
이 골프장은 잔디 관리에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습니다. 조석래 회장은 “사시사철 푸르면서 공이 떠 있도록”하는 까다로운 주문을 했다 합니다. 국내 잔디 관리의 최고 전문가인 잔디과학 김경현 대표가 잔디 식재를 도맡았지요. 그는 제주도 클럽나인브릿지에서 벤트그라스 페어웨이를 성공시킨 주인공이죠. 김 대표가 내놓은 답은 서양잔디 라이그라스에 국산 중지의 혼파(混播)였습니다. 여름이면 더위에 강한 국산 중지가 푸름을 유지하고, 늦가을에는 라이그라스가 푸름을 유지해서 항상 촘촘하고 조밀한 코스 상태를 유지하도록 했죠.

김 대표는 “중지는 늦가을부터 색깔이 바래기 때문에, 10월에 서늘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라이그라스를 오버시딩(혼파)하면 12월까지도 초록의 페어웨이 라운드가 가능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밖에 러프는 중지이고, 좀더 벗어난 해비 러프 구역은 페스큐를 식재해 계절마다 바뀌는 색의 조화도 노렸습니다. 세 개의 코스마다 30여개 벙커가 있는데 그린 주변에서 업다운이 커서 위협적이며, 모래는 강릉 규사를 깔아 잔디와 대비되는 색 대조도 뚜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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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이국적인 스타트하우스.


비밀의 정원 이후의 미래상
코스 외에 웰링턴에서의 비밀스러운 경험을 더 꼽으라면 호화로운 스타트하우스입니다. 푹 잠길 듯한 넓고 편안한 소파와 쌍두독수리가 벽면에 새겨진 이 공간 역시 이국적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귀족의 어느 프라이빗 서재나 바(Bar)에 있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그 안에서 맛본 화덕에서 직접 구워낸다는 마르게리따 피자는 ‘몰래’ 자랑할 만한 시크릿 푸드입니다.

비밀의 정원과 같은 은밀함과 소수들에게만 허용된 골프는 세월이 지나면서 서서히 ‘비밀’이라는 형용사를 지우게 되겠죠. 그때쯤이면 이 골프장이 추구하고자 하는 골프 문화의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희망사항을 덧붙이자면, 골프 라운드를 돕기 위한 드라이빙 레인지가 필요해보입니다. 골프는 골프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골프의 세계로 빠져드는데 그 중간의 접점이 바로 드라이빙 레인지이기 때문이지요. 골프옷으로 갈아입고 1번 홀에 들어가기 전에 골퍼로서의 몸을 갖추고 워밍업하며 마음을 추스릴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비밀의 정원(庭園)을 ‘골프라는 스포츠의 전당’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정원(靜院)을 갖추는 것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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