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가 27일 끝난 스윙잉 스커츠 LPGA 클래식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LPGA투어 사상 최고 기록인 아니카 소렌스탐의 29라운드 연속 언더파 행진과 타이를 이룬 후 3라운드 연속 오버파로 무너졌던 리디아 고로선 18번째 생일을 맞아 값진 선물을 받았다.

리디아 고는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공동 51위에 그친 후 2주간 휴식을 취했다. 쉼없이 달려온 리디아 고는 훈련 대신 재충전을 택했다. NBA 경기도 현장에서 봤고 게리 플레이어도 만났다.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것은 현자(賢者)와의 만남이었다.

리디아 고가 게리 플레이어를 찾아간 건 스윙코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의 권유 때문이었다. 레드베터는 어린 제자가 무리한 경기 출전으로 연소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동안 박세리와 미셸 위 등 많은 한국(계)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레드베터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때론 맹목적인 근면성이 해가 된다는 것을 경험치로 터득했다. 레드베터는 60년간 승부의 세계에서 산 플레이어에게 리디아 고를 만나줄 것을 부탁했고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다.

1935년생으로 올 해 80세인 플레이어는 아놀드 파머, 잭 니클러스와 함께 60,70년대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했던 전설적인 골퍼다. 메이저 통산 9승을 거두며 벤 호건과 샘 스니드에 이어 골프 역사상 세 번째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는 5대양 6대주를 넘나들며 통산 165승을 거뒀다. 플레이어는 선수생활을 하며 무려 2,500만 km를 여행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km 정도이니 그는 지구를 625바퀴나 돈 셈이다.

리디아 고는 할아버지 뻘인 플레이어를 만나 함께 라운드하며 다양한 삶의 경험과 지혜를 얻었다. 어린 나이에 냉철한 승부의 세계에서 정상을 지켜야 하는 리디아 고에게 플레이어는 맞춤형 멘토였다. 플레이어는 손녀 뻘인 리디아 고에게 골프와 삶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플레이어는 6명의 자녀에 21명의 손주를 뒀다. 어린 나이에 놀라운 경기력을 가진 리디아 고는 사랑스런 손녀 딸과 같았다.

그래서일까. 리디아 고는 휴식 후 반등했다. 상승 일로의 골프 인생에서 처음 추락을 맛본 리디아 고는 이번 주 스윙잉 스커츠 클래식에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하며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이번 스윙잉 스커츠 클래식은 출전선수의 면면이 메이저 급이었다. 세계랭킹 25걸 중 24명이 출전했다. 코스 세팅도 좁은 페어웨이에 딱딱한 그린 등 메이저급 세팅에 가까웠다. 그래서 더 리디아 고의 승리는 값져 보인다.

시선을 우리 선수들에게 돌려 보자. 김효주는 JTBC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뒤 제주도에서 열린 후원사 대회인 롯데마트 여자오픈에 출전했다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기권했다. 이후 우승 경쟁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인지도 삼천리 투게더 오픈에서 우승한 뒤 넥센 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 기권했다. 전인지는 미국에서 4경기를 뛴 뒤 국내로 돌아와 7주 연속 경기에 출전하다 탈이 났다. 두 선수 모두 '코리안 런(Korean Run)'을 이끌 좋은 선수들인데 경험 부족으로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안타깝다.

때론 쉬는 게 정답일 수 있다. 나가면 우승할 것 같아도 마음뿐이다. 무리한 경기 출전은 선수의 경쟁력을 갉아 먹는다. 체력이 떨어지면 스윙도 흔들리고, 무리한 스윙은 부상을 부를 수 있다. 정상급 선수들의 경우 남녀를 불문하고 일년에 25~26개 대회 출전이 적당하다. 이를 넘길 경우 이듬 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다른 운동과 달리 선수생명이 긴 골프는 일정 관리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올 해 들어 대회수가 30개에 육박하는 KLPGA투어의 경우, 리디아 고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프 시즌에 체력훈련을 많이 했다고 해도 전 대회 출전은 무리다. 자신에게 잘 맞는 코스 위주로 경기 일정을 짜고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시즌 종료 때까지 경쟁력있는 경기를 하려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는 필수적이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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