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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과’ 논란 속 새해 1월의 독립운동가에 이승만 전 대통령
보훈부 “독립 위해 실력양성·외교독립 매진”
4·19혁명 심판받아 하야한 ‘독재자’ 비판도
역사적 공과 논란 속 이승만 전 대통령이 새해 첫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29일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실력양성운동과 외교독립운동에 매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가보훈부 제공]

[헤럴드경제=신대원 기자] 역사적 공과 논란 속 이승만 전 대통령이 새해 첫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국가보훈부는 29일 “한국의 독립을 위해 실력양성운동과 외교독립운동에 매진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열강들의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교육자이자 정치가, 언론인, 외교관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1875년 황해도 평산 출생으로 배재학당에 입학해 자유와 평등 등 근대적 정치사상을 배웠고 졸업식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제로 영어연설을 하기도 했다.

1899년 고종폐위 음모사건으로 한성감옥에 투옥됐다가 특별사면 후 미국을 방문해 헤이 국무장관으로부터 독립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한국 독립보전에 관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1913년 하와이 한인기숙학교 교장을 맡고 한글 월간지 태평양 잡지를 발간하는 등 한민족의 독립역량을 기르기 위한 실력양성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 이후에는 대한국민의회 국무경, 대한민국임시정부·고려임시정부·신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한성정부 집정관 총재 등 국내외 임시정부에서 지도자급 인사로 추대되거나 선출됐다.

또 1919년 상해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한성정부 등을 통합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에 선출됐으며, 구미위원부를 통한 외교독립운동을 중심으로 미 정부와 여론을 상대로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하고 일제 침략 규탄 활동을 펼쳤다.

1932년 임시정부로부터 국제연맹에서 한국독립을 탄원할 특명전권대사에 임명된 후, 제네바에서 국제연맹 회원국 대표들과 일본의 만주침략을 규탄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

이 전 대통령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하와이에서 워싱턴으로 이주했다.

일본을 제압하지 않으면 미일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를 저술했는데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942년 한인자유대회를 개최하고 한미협회를 설립했으며, 1945년 국제연합 창립총회 한국대표단 단장에 임명되는 등 1945년 8월 광복까지 임시정부 지원과 재미한인 외교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배재학당 재학 시절부터 광복까지 약 50년간 민족의 독립역량을 축적하는 실력양성운동과 국제사회 지원을 통해 독립을 이룬다는 외교활동에 매진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49년 대한민국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임시정부 대통령 시절 직무유기와 공금유용 혐의 등으로 탄핵당하고, 3·15 부정선거와 사사오입 개헌 등으로 촉발된 4‧19혁명으로 결국 하야와 망명의 길을 걷게 된 오점도 남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꾀하다 3·15 부정선거를 감행하고 국민의 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다 결국 4·19혁명으로 심판받아 하야한 독재자라며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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