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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조정이냐 종료냐…한미 워킹그룹, 양날의 검 [한반도 갬빗]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외교부가 한미 워킹그룹의 사실상 종료 방침을 발표할 때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종료’(termination)이 아닌 ‘재조정’(readjustment)라고 했다. 한미 워킹그룹 폐지라는 표현을 쓰던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국장급 정책대화’를 대안으로 제시하더니 “워킹그룹이 사라졌다고 이것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폐지는 하는데 중단하진 않는다. 문장 자체가 모순이다. 한미 워킹그룹이 역기능을 보이게 된 궁극적인 원인을 해소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외적인 모양새만 신경쓰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한미워킹그룹을 주도한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이도훈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연합]

한미 워킹그룹은 비핵화, 남북협력, 대북제재 현안 등을 수시로 조율할 목적으로 2018년 출범한 실무협의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설과정에서 전기공급 등이 제재위반 사안으로 지적되면서 한미간 의견충돌이 빚어지자 협의체 구성이 타진됐다. 협의체에는 외교부와 국무부뿐만 아니라 재무부, 상무부, 통일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의 실무진이 투입돼 조율을 했다. 대북제재 문제를 미국의 여러 관련 부처와 개별적으로 논의할 필요없이 한 협의체에서 원스톱으로 다루니 제재면제 논의가 효율적이었다.

그런데 왜 문제가 된걸까. 워킹그룹은 ‘틀’에 불과하다. 껍데기가 바뀐다고 관련부처들의 업무성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요, 미국의 논리가 뒤바뀌는 것도 아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와 국무부, 통일부, 재무부 등의 실무진이 한자리에 모여 정례적으로 회의를 하면 결국 그게 한미 워킹그룹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새 협의체가 “외교라인을 중심으로 관계부처나 관계기관도 참석할 수 있다”고 동문서답했다.

한미 워킹그룹이 설치된 뒤 이전까지 심심찮게 불거지곤 했던 한미 간 불협화음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한미 간 남북 군사분야 이행합의서 체결, 남북의 북측 구간 철도공동조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 등을 둘러싸고 심상찮은 수준의 이견이 수면 위로 노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워킹그룹이 남북협력사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오명을 쓰게 된 계기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적용하는 기준을 포함해 법률적용 메커니즘을 미국이 깐깐하게 적용하면서부터다. 한미 워킹그룹 협의과정에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았던 미국의 깐깐한 행정절차를 확인하게 됐다. 이후 워킹그룹은 미국의 간섭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전락했다.

그러나 지난 2019년 ‘타미플루 대북반입 불발 사태’를 생각해보자. 유엔군사령부는 2019년 북한에 기관차, 타미플루 등을 보내려는 정부에 시일이 촉박하다거나 대북제재 품목(트럭)이 포함했다는 이유로 불허를 했다.

유엔사가 제동을 건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사전신고 미비와 타미플루를 운반하는 트럭에 대한 대북제재 위반 소지다. 타미플루 반입만 이뤄지면 되는데 트럭이 제재위반이 될 수 있어서 안된다고 하니 대북지원단체 입장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후 한미 워킹그룹이 화상회의를 열어 “타미플루 지원에 한미간 이견이 없다”고 해 통일부가 타미플루 반입날짜를 북측과 협의에 나섰다.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한국의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미국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위 예시에서 ‘한미워킹그룹’의 존재를 지워보자. 한미워킹그룹이 없었으면 타미플루 반입이 그대로 이뤄졌을까? 아니다. 여전히 유엔사는 제동을 걸었을 것이다. 당시 타미플루 반입제동 논란에 유엔사는 “2019년 유엔사는 비무장지대 내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작업 및 타미플루 대북수송과 관련한 두 건의 출입신청을 24시간도 채 안 돼서 신속하게 승인했다”고 항변했다. 불허 또한 서류작업이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여부를 막론하고 반입을 저지한 주체는 ‘유엔사’지, 한미워킹그룹이 아니라는 점은 불변한다. 유엔사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으로, 주한미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북한의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과 핵실험에 역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 결의를 주도했다. 그리고 이미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유엔 70년 역사상 비군사적 조치로는 가장 강력한 제재결의로 평가되는 2270호가 모든 화물검색을 의무화하고 육해공의 모든 운송수단 차단을 통한 제재를 명시하고 있었다. 유엔 결의 2270호 초기엔 북한의 핵심교역국인 중국과 러시아조차 화물과 상관없이 북한 선박들의 입항을 거부했다.

타미플루 반입 논란 당시 정부는 2009년 이후 10년 만에 북한에 타미플루를 전달하려고 했다. 2009년에만 해도 정부는 타미플루 40만 명분과 다른 독감 치료제 리엔자 10만 명분을 경의선 육로를 통해 북측에 제공했다. 하지만 10년 사이 대북제재는 인도적 지원까지 저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깐깐해졌다. 인도적 지원은 제재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해석주체에 따라 운송수단을 두고 제재 적용 논란이 일었다.

북핵문제를 담당하는 미국의 성 김 대북특별대표가 21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국의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나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어떤 대북지원사업을 하든 유엔사와 협력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왜 자주성을 발휘 못하냐는 한탄이 쏟아져도 어쩔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남북협력사업을 진행하는 게 우리의 ‘국익’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 유엔 안보리 제재를 준수하는 선에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결국 미국과의 외교를 통해 남북사업의 독자성을 인정받아서 되는 것이지, 한미 워킹그룹을 폐지해서 되지 않는다. 물론 자주국가에서 인도적 사업조차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서럽긴 하다.

그래도, 생각해보자. 이제 재무부가 제동을 걸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협의해야 할까. 한국의 대북사업을 힘겹게 하는 주체는 미 국무부보다는 재무부다. 한국 시중은행들은 유엔 대북제재에 앞서 미국 재무부의 독자제재가 무서워 2018년 우후죽순 내놓았던 통일 관련 금융상품들을 부랴부랴 정리했다. 한반도 평화 입구를 붕괴시킨 BDA 사태의 책임도 재무부에 있었다.

한미 워킹그룹을 종료하면 남북협력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기진 않는다. 유엔사의 제지없이 물품을 자유롭게 반출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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