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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과 유엔가입 30주년

지난주 서울 도심의 한 호텔에서 진행된 회의장 연단에 노신사 한 분이 올라섰다. 구순을 바라보는 연로한 몸을 이끌고 천천히 계단을 오른 그는 마스크와 아크릴 장벽을 두고 사이사이에 띄엄띄엄 앉아 있는 청중과 대형 스크린에 투영된 전 세계 각지의 온라인 참가자 앞에 섰다. 노신사가 참석한 회의는 우리나라의 유엔 공식 가입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회의였고, 그는 우리나라 대유엔 외교의 대부(代父)라 할 수 있는 박수길 전 유엔대사였다.

3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파란만장한 역정을 견뎌낸 이 베테랑 외교관에게도 코로나 시대의 회의는 다소 생경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방역지침에 따른 제한 속에서도 ‘유엔 가입 30주년 기념행사’라는 취지에 걸맞게 많은 전·현직 유엔 관료와 역대 유엔대사가 이날 회의에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다양한 글로벌 현안에 관한 유엔 내 한국의 리더십을 평가한다는 축사를 보냈다. 터키 출신으로 부친이 한국전 참전용사라고 소개한 볼칸 보즈키르 유엔 총회의장은 이제 한국은 유엔이 지향하는 평화·개발·인권 전 분야를 주도하는 역동적인 민주국가로 성장했다면서 우리나라의 기여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유엔 가입 30년 역사의 의의는 단순히 우리가 냉전의 국제질서 속에서 분단국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민족적 자긍심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유엔이 존재하는 현대 국제질서에서는 불과 한 세대 남짓한 기간에 한 국가가 체제의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전 세계에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날 회의에서 역대 유엔대사들이 참여한 대담에서는 치열했던 외교 현장 이면의 생생한 비사는 물론 유엔 가입 후에도 상당 기간 북핵 문제라는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북한이라는 단일 의제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외교정책 환경과 이제는 서서히 인권·개발·기후변화·보건 등 국제사회 공동의 현안 해결에 기여를 확대해가고 있는 최근의 추세 등 광범위한 주제가 논의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G7 정상회의 참석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덕담을 넘어서 한국이 방역과 백신 허브국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보여줬다고도 한다.

필자 역시 지난 수십년간 학문으로서 유엔 체제를 연구하며 유엔 내 다양한 분야에서 확인돼온 우리나라의 역할과 기여에 큰 자부심을 가져온 터라, 지난주 참석한 국제회의와 언론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을 반갑게 듣고 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러한 성공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30년 후 과연 우리가 희망하는 국제사회 속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힘겹게 연단에 올라선 노신사는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준비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얇고 다소 떨렸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저는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박흥순 유엔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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