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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한의 현장에서] 예견된 반쪽짜리 유엔군사령부 조사

A가 갑자기 B를 발로 4번 찼다. 놀란 B는 A를 주먹으로 15번 치며 반격했고, 다시 발로 15번 걷어찼다. 경찰이 출동했고, A는 경찰을 외면한 채 귀가해 버렸다. B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후 경찰은 A와 B가 ‘쌍방폭행’에 개입됐으며 양쪽 모두 잘못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B는 왜 A를 조사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경찰은 A가 조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A가 조사를 받지 않아 A의 행위가 의도적인지 우발적인지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일어났다면 누구나 황당해 할 사건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북한군은 지난 3일 오전 7시41분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에서 한국군 GP를 향해 14.5㎜ 구경 고사총 4발을 발사했다. 우리 군 GP에서는 8시13분 5.56㎜ 구경 경기관총 K-3 15발로 응사했다. 다시 현장에서 북한군의 14.5㎜ 구경 고사총 탄두가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은 사단장이 8시18분 고사총 상응 무기인 12.7㎜ K-6 중기관총 15발을 추가로 쏘게 한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는 사건 다음날인 4일 사건 조사를 위해 우리 군 GP에 다국적 인원으로 구성된 특별조사팀을 파견했다. 또한 유엔사 군사정전위 소속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스웨덴·스위스 장교가 참고인 자격으로 현장 조사에 참여했다.

유엔사는 지난 26일 “남북한 양측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판단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비무장지대에 향해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명시한 군사정전협정 1조 6항에 근거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조사에 한국군은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나 북한군은 아예 응하지 않은 사실이 문제가 됐다. 이와 관련해 유엔사는 “북한군 측에 총격사건과 관련한 정보제공을 요청했고, 북한군은 이를 수신했으나,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유엔사는 북한군의 최초 총격과 관련, “총격 4발이 고의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입장도 밝혔다. 북한군이 조사에 불응해 북한군 측 조사에 있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한국 국방부는 “유엔사의 이번 조사 결과가 북한군의 총격에 대한 실제적 조사 없이 발표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북한군 도발로 시작된 이번 사건의 진상조사를 통해 유엔사의 한계만 드러낸 꼴이다.

유엔사의 반쪽짜리 역할은 예견됐던 터다. 미국 등 21개국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유엔사는 중립기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인 로버트 에이브럼스 미 육군대장이 사령관을 겸하는 사실상의 미군 주도 조직이다.

정전협정 당시 남북이 각각 둘씩 선임해 구성한 중립국감독위의 북측 위원인 폴란드와 체코군 장교는 90년대 초반 철수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다. 지금은 남측이 선임한 스위스와 스웨덴군 장교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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