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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문서 공개]”소탐대실 하지 마라” 美 압박에 ‘국내 시장 지키기’ 나선 정부
‘슈퍼 301조’ 둘러싼 한미 외교전 막전막후
美 강한 압박에 농산물ᆞ투자 분야 개방해
정부 “美 요구 대부분 수용…대처 노력은 평가”
[연합]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미국의 무제한 무역 보복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이른바 ‘슈퍼 301조’를 둘러싸고 국내 시장을 지키기 위한 우리 정부와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나선 미국 측의 외교전 정황이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전면적인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나선 미국 측은 “한국산 자동차 수출이 막히는 등 소탐대실하지 말라”며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압박에 나섰고, 우리 정부는 과도한 시장 개방을 막기 위한 협상을 3년 가까이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공개된 1987~1989년 외교문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지난 1987년 미국 측이 항공업과 보험, 쇠고기, 농산물, 담배, 미시판 제품, 광고 등의 시장을 개방하라는 요구에 맞서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농림수산부 등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시기를 늦춰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사실상 관계부처 대부분이 시장 개방에 부정적이었지만, 미국 측은 “미국 행정부가 주요 대미흑자국의 시장개방 성과를 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외교채널을 통한 압박을 강화했다.

특히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미국은 “한국이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 국가로 간주돼 자동차 등 주요 수출품이 막히는 소탐대실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한다”며 강압적 태도까지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약속 시한까지 시장 개방을 결정하지 않으면 ‘큰 문제(real problem)’가 생길 것이란 언급도 나왔다.

한국은 일부 업체에 한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허가하는 등의 중재안을 내놨지만, 미국 측은 이를 전면 거부했고, 농산물 시장 개방과 투자 분야 개방 등을 골자로 하는 ‘패키지’ 협상안을 한국 측이 받아들일 경우, 한국을 불공정무역국으로 지정하지 않겠다는 보장 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미국 측의 연이은 압박에도 국내 농민 시위 등을 이유로 “농산물 추가 개방은 고려할 수 없다”며 맞섰고, 협상은 3년여 동안 평행선을 달렸다. 이후 미국 레이건 행정부 이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국 내에서도 ‘과도한 통상 압박은 한미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며 협상 분위기는 반전됐다.

한미 간 갈등은 협상 막판 ‘외국인 투자’ 문제에서 다시 불거졌다. 미국 측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내국인 대우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가 내국민 원칙을 내세워 외국인의 투자를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는 “외국인 제한이 아닌 중소기업 등 국내산업 정책 추진이 목표”라고 맞섰다.

결국 1989년에서야 외국인 투자 부분에 대해 미국 측이 일정 부분을 양보하며 시장개방 협정 가서명이 이뤄졌다. 한국은 미국 측의 요구대로 오렌지와 위스키, 포도 등의 농산물 시장을 개방했고, 외국인 투자에 대해서도 인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키로 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국산화를 목표로 한 수입제한 조치도 철폐됐다.

당시 정부는 협정에 대해 “미국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한 것은 사실이나, 아국 정부의 점진적 개방화 정책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만 미국 측 입장을 수용하는 선에서 대처하도록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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