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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군포로ㆍ납북자 특수이산가족도 만나…“北에서 아이 낳아 다행”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남측의 조혜도(86) 할머니가 북측의 언니 조순도(89, 오른쪽) 할머니를 만나 부둥켜 울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南, 국군포로ㆍ납북자 50명 의뢰 21명 생사 확인

-“어머니, 끼니 때마다 꼭 형 밥 함께 올렸는데…”




[헤럴드경제=금강산 공동취재단ㆍ신대원 기자]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가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특히 이날 금강산을 찾은 남측 89가족 가운데는 국군포로 1가족과 전시납북자 5가족 등 6가족의 특수이산가족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유일한 국군포로 이산가족인 이달영(82) 할아버지는 국군포로인 부친 대신 이복동생 리일영(48), 리영희(48ㆍ여) 씨를 만났다.

이 할아버지는 금강산으로 출발하기 앞서 취재진에게 “아버지가 거기 가서 소생이 있는 줄도 몰랐다”며 “아버지가 북에서 돌아가셨으면 안좋을 텐데, 그래도 아이도 낳고 좀 생존해 계셨으니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함께 근무했던 분으로부터 부친이 6ㆍ25전쟁중이던 1952년 국군포로로 끌려갔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소식을 듣지 못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시작되고 꾸준히 상봉을 신청했지만, 이번에야 부친이 이미 1987년 돌아가시고 이복동생 2명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곽호환(85) 할아버지는 전시납북된 형의 두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곽정철(55), 곽영철(53) 씨와 만났다.

충청북도 제천시 금성면에 살고 있던 곽 할아버지의 형은 전쟁중 10여명과 함께 인민군 회의에 소집됐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에 곽 할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을 찾은 아들 곽상순(51) 씨는 “아버님이 오래 전부터 상봉을 신청했고 큰 아버지를 많이 보고 싶어하셨다”며 “이번에 자녀들이라도 만나게 돼 소원풀이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친이 납북된 이영부(76) 할아버지는 존재도 몰랐던 두 형님의 조카 리정란(57ㆍ여), 리정식(53) 씨 등과 상봉했다.

부친은 1950년 9월 서울 혜화동에서 통장으로 일하던 중 납북됐는데, 북한은 의거입북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할아버지는 “여태 장남인줄 알고 살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고모가 이북에 형님 두분이 살아계시다고 해서 이산가족상봉 신청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일(85) 할아버지는 전시납북자인 형 이재억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이산상봉을 신청했으나 이미 1997년 4월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대신 리경숙(53ㆍ여), 리성호(50) 두 조카를 만났다. 충청북도 청주가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가족이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가 며칠만에 집으로 복귀했는데 이후 곧바로 형이 납북된 것으로 기억했다.

이 할아버지는 “형님이 납치된 뒤 아버지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앓기 시작했고 국군이 후퇴해 내려올 때마다 기회를 틈타 도망오지 않을까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며 “형님의 직업이 뭐였는지 염려된다. 어떻게 생활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최기호(83) 할아버지는 1ㆍ4후퇴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것으로 기억하는 맏형 최영호의 두 딸이자 자신의 조카가 되는 최선옥(56ㆍ여), 최광옥(53ㆍ여) 씨를 만났다.

최 할아버지는 “당시 폭격이 너무 많아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념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조카를 만나게 돼 감개무량하다”며 “형이 그래도 장수했고, 딸도 2명이나 낳았다니 반갑다”고 말했다.

최 할아버지는 “어머님이 맏형을 특히 그리워하셨다”면서 “끼니 때마다 꼭 형이 먹을 밥을 떠서 함께 상에 올리시며 ‘밥공기에 물이 맺히면 네 형은 살아있는 거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밥이 뜨거우니 당연히 물방울이 맺히지…, 아마 잘 살아있으리라 생각하신 걸 그렇게 표현하신 것 같다”고 회고했다.

교통부 공무원이었던 남편 심우필 씨가 전쟁중 납북된 홍정순(95) 할머니는 이번에 북측의 오빠의 딸 홍선희(74ㆍ여) 씨와 동생의 아들 림종선(57) 씨를 만났다.

홍 할머니는 방북 전 취재진에게 “처음 연락받고 놀라 눈물만 나왔다”면서 “오빠의 딸이 6살 때 마지막으로 봐서 얼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조카들을 만나게 돼 마냥 좋기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홍 할머니의 남편 심 씨는 아직까지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남측은 이번 상봉행사 준비과정에서 국군포로와 납북자 50명을 선정해 북한측에 생사확인을 의뢰했고 이 중 21명의 생사가 확인돼 최종적으로 6가족의 상봉이 성사됐다.

지난 20차례 상봉행사를 통해 남측은 350명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생사를 북측에 의뢰해 112명의 생사를 확인했고 이 가운데 54가족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신대원 기자 /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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