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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선임기자의 세상읽기> 남북, 무조건 만나라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 오늘(12일) 늦은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삼청동에 있는 극동문제연구소로 가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을 뵙기로 한 겁니다. 지난 주 금요일자 헤럴드경제 와이드 인물인터뷰 <휴먼>에 모셨는데 받아 온 옛날 사진들이랑 이력서를 되돌려 드리려는 겁니다.

그 분을 만난 것은 지난 달 31일었습니다. 대북문제전문 지인의 도움으로 핸드폰 번호를 체크해 직접 전화를 드렸더니 “내가 뭘 얘기해 줄 만한 게 있어야지”하시면서도 “오려면 와” 하신 겁니다.

그날 역시 늦은 점심을 하기로 하고 오전 11시쯤에 만나 3시간동안 거침없이 남북분단, 그리고 미국과 중국, 그리고 동북아 질서 재편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더군요. 이어진 막걸리 반주에 두 시간의 점심밥상엔 70년대 초중반 남북관계 비하인드 스토리가 쏟아졌습니다. 물론 슬며시 스마트폰 녹음모드로 옮겼습니다. 평생 정보요원으로 지내신 분이 눈치 채셨지만 하여간 ‘몰래녹음’의 스릴도 없지 않았습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단일팀으로 단일깃발을 들고 나란히 입장하는 남북선수단.

1932년 평양에서 태어난 분인데 우리 나이로 83세입니다. 기골이 장대한 편이기도 하지만 정정합니다. 5시간 이상 만나 대화했지만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식사도 잘 하시고 막걸리도 벌컥벌컥 기자보다 속도를 더 내신 분입니다.

그 분, 지금 인생 정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럴 때가 이미 넘었다는 겁니다. 물론 15년 전쯤 장관직에 물러난 뒤 한번 고비가 있었지만 완쾌되신 분입니다. 그날도 평생 소장했던 책 1만권을 연구실이 있는 극동문제연구소와 모교인 한국외국어대, 통일부 등에 골고루 나눠주는 작업을 하던 중이셨습니다. 살던 집도 정리하고 막내 아들집으로 옮기신다는군요. 그러면서 “내가 대북문제에 매달린 것도 벌써 55년이 훌쩍 넘었어.”하셨습니다.

강 전 장관은 보수성향의 정보통 대북전문가인데 진보성향의 김대중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입니다. 묘한 조합인데 저는 이런 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의 한수’로 보고 있습니다.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북한으로 하여금 신뢰를 듬뿍 쌓게 하는 고단수인 것입니다. 

강인덕 북한과장을 악수로 맞는 김일성 북한 주석(1972.11.3. 평양)

아무튼 내년이면 남북이 갈라서 총부리를 겨눈 지도 70년이 됩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 세월앞에 참으로 남부끄럽습니다. 이제는 남북이 만나야 합니다. 화해하고 교류협력을 다져야 합니다. 지금 눈알이 핑핑 돌 정도로 동북아 정세가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으르렁대고,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이 중국과 맞장 뜨려하고, 우리와 중국이 손을 부여잡는 사이 북한과 일본이 밀애를 즐깁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언론은 대부분 몇 달 사이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지적해 왔습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인가요. 11일 정부가 대북 고위급회담을 북측에 전격 제의했습니다. 오는 19일 판문점 북측 판문각으로 하자면서도 북측이 편할 대로 하자고 한 겁니다. 잘 한 일입니다.

우리 측은 통일부가 아닌 청와대 멤버(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가 수석대표로 나선다고 합니다. 더 고무적인 것은 대화제의 바로 직전 유엔의 대북지원 프로그램의 하나인 북한의 모자(母子) 보건지원사업에 국제기구를 통해 1330만 달러(137억 원)를 쾌척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물론 분위기는 전에 없이 최고조입니다. 19일이면 교황방한(14~18) 직후인데다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대표팀 및 응원팀 참가 문제 등이 맞물려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의제도 푸짐합니다. 우선 북측이 요구해 온 대북경협전면금지 조치(5.24조치) 해제에다 금강산 관광 재개까지 대형소재가 적잖습니다. 

내년이면 70년이 되는 남북분단.

문제는 제안한 날짜가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이 한창 때라는 점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선언에 대해 국방위원회 논평을 통해 “흡수통일 논리이자 황당무계한 궤변”이라며 전면거부 입장을 내놓았었습니다. 지난 3월 통일독일의 상징인 드레스덴 공과대학에서 발표된 드레스덴 선언은 인도적 문제 우선적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세 가지가 핵심입니다.

북한이 대뜸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낸 데는 여러 가지 사정이 얽혀있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자존심 상했다는 겁니다. 좀 잘 산다고 적선을 베풀고 동냥 던져주는 식이냐 이겁니다. 분명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입장 바꿔놓고 보면 금방 이해될 겁니다. 기자는 누차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했습니다. 여기서도 불통이 작용합니다. 왜 북측에 드레스덴선언에 대해 사전에 일정 수준이라도 양해를 구하지 못했냐는 겁니다.

앞서 밝혔듯이 보수파 강인덕 전 장관을 발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년 3월 베를린선언에 앞서 북측에 이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흡수통일 뜻이 없고 남북 공존공영을 택하자는 내용입니다. 박 대통령도 그랬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번 대북 대화제의를 하면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오해를 풀겠다고 합니다. 순서가 어긋나고 늦었지만 잘 된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통일대박도 내 위주여선 안 됩니다. 나의 대박은 상대방의 쪽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박하나를 둘이 공평하게 나눠가지면 이미 반(半)대박 아닙니까. 서로 대박이 되자면 대박 두 개는 있어야 합니다. 바로 남북 상생 또는 더불어 논리입니다. 남북관계 개선, 지금이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리고 멀리보고 정치와 경제를 따로 뚝 떼어놓는 정·경분리 원칙도 공동선언으로 엮어내야 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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