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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기자의 세상읽기> 남북 실무접촉 “1차시기 실패”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아시안게임 참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남북 실무접촉이 결렬되고 말았답니다. 17일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던 회담입니다. 밤이 이슥한 시간, 인터넷을 떠돌다 속보를 접하고 기자는 “그러면 그렇지” 했습니다.

남북문제,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북한과 회담을 해 뭔가를 도출하려면 간과 쓸개 중 최소한 하나나 하다못해 절반 정도는 미리 떼놓고 시작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참다 참다 못 참아회담 테이블 다리라도 북북 글어댔다는 대북협상에 잔뼈가 굵은 어느 전직 공무원의 농반진반(弄半眞半)도 생각났습니다.

협상 내용을 살펴보면 별 것도 아닙니다. 오전에는 남측이 북측의 입장을 경청했고, 오후 들어 하나하나 구체적인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 아닌 오해가 불거진 모양입니다. 북측 대표는 선수단과 응원단을 각각 350명씩 700명 정도 보내겠다고 했답니다. 남측 파견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선수단은 서해 직항로를 통해 항공편으로 보내고, 선수단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육로로 파견하겠다는 겁니다. 만일 응원단의 육로수송이 성사되면 2000년 경의선 도로가 연결되고, 2006년 남북출입사무소(CIQ)가 생긴 이래 북측의 첫 남측 왕래가 되는 겁니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응원단이 묵을 숙소로 만경봉 92호가 원산에서 앞바다에서 동해와 남해를 거쳐 인천 앞바다에 2주 이상 정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북측은 육해공 모두를 활용한다는 겁니다. 흥미로운 제안입니다.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이 과정에서 북측은 민족 차원의 화해와 교류협력을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린 만큼 우리 측이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저 없이 고맙게 받으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측이 흔쾌히 받아들이기보다 하나하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무성의한) 태도를 문제 삼으며 오후에 열린 3차 전체회의 시작 5분 만에 회담장을 박차고 일어나 퇴장하고 말았답니다.

우리 측이 국제관례대로 하겠다고 한 것이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관례대로라면 선수단의 극히 일부만 왕복항공비와 선수촌 체류비용 등을 지원받게 되는 겁니다. 당연히 북측으로서는 한 핏 줄 간에 야속하다 느꼈고 자존심도 상했을 겁니다.

사실 우리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 시종일관 냉정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 정부 사이드를 포함해 남북문제에 관여하는 인사들을 만나 온 결과,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선수단을 파견하면 국제관례대로 지원할 것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듣고 있는 기자와 주변 인사들은 정부에 유연성 결여를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두어 달 전만해도 북한 응원단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며 상정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선수단이 오더라도 단일팀이나 동시입장도 국민정서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4차 핵실험 위협에도 툭하면 갖은 험구를 쏟아내니 그럴 만도 하겠습니다.

그랬던 우리 정부가 북한 응원단을 수용하고 체류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진일보한 자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잘 한 결정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리가 없습니다. 적어도 남북협상에서는 말입니다. 기자가 듣고 배운 바로는 북측의 협상전술은 우리와 매우 다릅니다.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선수단 및 응원단 참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7일 판문점에서 만난 실무접촉 남북 대표단. (사진=통일부 제공)

전문가들의 견해를 좀 더 전달하자면, 기본 출발부터 판이합니다. 협상을 전쟁이나 전투와 같이 인식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반드시 관철하려 합니다. 내부적으로 명령을 받고 오더를 받은 것은 회유를 하던지 협박을 하던지 달성하려 한다는 겁니다. 결국은 회담은 조국과 통일을 위한 과업이라 판단하는 겁니다. 저들은 체제 못지않게 자존심을 중시합니다. 자존심은 국가에 대한 체면과 자존심과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다시 만나야 합니다. 경기용어상 첫 번째 실패를 “1차시기 실패”라고 합니다. 두 번 세 번의 기회가 다시 주어집니다. 이번 회담도 그럴 여지는 충분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어울릴지 모르나 소소한 것을 생각하다 큰 줄기를 놓쳐선 안 됩니다. 물론 비용이 만만찮습니다. 더구나 동에서 서에서 미사일과 방사포를 쏘아대는 저들이 고울 리 있겠습니까만, 남북관계 계속 이런 식으로 갈등과 대립만 할 때가 아닙니다.

이러다 자칫 박근혜 정부, 남북문제 진도 한 장도 못나갈지 모릅니다. 바깥은 핑핑 돌아가는데 말이지요. 한반도 프로세스니 드레스덴 선언이니 실행이 뒷받침 안 되면 레토릭(수사), 좀 더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말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면면에서 다소 실망스럽긴 하지만 통일추진준비위원회도 발족한 이상 미래지향적인 큰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8월마저 놓치면 정말 갑갑해 집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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