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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김일성 사후 20년
8일은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 20주기다. 사인은 동맥경화에 따른 급성 심근경색, 향년 84세였다. 당시 북한은 중대방송을 통해 “겹쌓이는 정신적 과로로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하고 심장쇼크가 합병됐다”고 했다.

김 주석의 사망소식은 세계를 강타했다. 분단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급서였던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은 그 달 25~27일 묘향산초대소(향산별장)에서 예정돼 있었다. 김 주석은 노구에도 현장을 미리 찾아 준비상황을 일일이 챙기다 쓰러졌다. 회담 일정이 8월로 늦춰지자 7월로 채근한 것도 그였다.

김 주석이 그토록 안달복달한 까닭은? 소련해체-통독-동구몰락으로 자원도 원조도 끊긴 고립무원이었다. 남한은 88올림픽에 이어 북방외교에 성공, 소련ㆍ중국ㆍ동구와 수교했다. 게다가 북한 붕괴에 따른 소프트랜딩까지 거론되자 핵무장을 결심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폭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 가까스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됐다. 1990년 전후 몇 년 간 상황이다. 결국 불감당 스트레스에 압도당한 셈이다.


이후 북한은? 후계자 김정일이 삼년상으로 칩거하고 ‘유훈통치’를 하는 사이 경제난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수백만 명이 아사하고 수십만 명이 탈북한다. ‘고난의 행군(95~97년)’시기다. 결국 1998년 주석직을 폐지하고 국방위원회를 신설, 국방위원장을 맡아 ‘선군정치’를 선언했지만 경제외면에 부정부패로 결과는 참담했다.

김 주석 사후 20년, 3대 김정은은 할아버지를 닮으려 애쓰지만 아직은 외형에 머문다. 선군정치 폐해를 없애려 앞장세운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되고, ‘핵과 경제병진노선’을 택하지만 꼬리가 머리를 때리는 격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군부대만 찾는 데서 방황이 읽힌다.

황해창 선임기자/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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