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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모르쇠'와 '퉁치기'…한ㆍ미ㆍ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비밀주의’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드디어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중재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납니다. 두 정상이 취임하고 첫 만남입니다. 첩첩산중으로 쌓인 양국 현안을 풀기 위해 즐겁게 만나면 좋으련만 한ㆍ미ㆍ일 정상회담이 결정되고 발표되는 과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깁니다.

정상회담 가능성은 청와대도, 외교부도 아닌 일본 언론에서 먼저 제기됐습니다. 그것도 떡하니 한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서 말이죠. 그전까지 모든 외교부 당국자들은 회담에 대해 ”전혀 진행되고 있는 바가 없다. 우리 정부가 요구한 진정성 있는 조치를 핵안보정상회의 때까지 내놓을 수 있겠느냐”며 가능성을 부인하던 차였습니다 .

당연히 출입기자들은 외교부 측에 사실확인을 요청했습니다. 회담이 열린다면 악화일로던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계기를 맞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외교부의 대응이 이상합니다.

당국자들은 ”아직 결정된 바가 없습니다. 확인해 줄 수 없습니다“란 애매모호한 말로 답변을 거부합니다. 심지어 조태영 대변인조차 정례브리핑에서 브리핑 내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이 두마디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외교일정에 대해 정보를 제공하기 거부한 것입니다.

심지어 20일에는 책임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밥도 먹으러 가지 않는지 출입구에서 진을 치고 기다려도 만날 수가 없었죠. 웃지 못할 외교부의 ’셧다운(shut down)‘ 사태에 청와대에서 함구령이 내려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될 정도였죠.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그 이유는 이튿날 밝혀집니다. 청와대가 한ㆍ미ㆍ일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을 시인하고야 만 것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할 어떤 실질적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아베 총리의 말 한마디에 박 대통령이 ‘신뢰와 원칙을 내던지고 회담을 수용할 수 밖에 없으니 차마 민망하고 창피하여 미리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와 외교부의 이상한 행동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ㆍ미ㆍ일 정상회담은 항상 대통령 외교 일정을 발표하던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공식적인 발표 자리도 없었습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이날 오전 기자실에 들러 ”헤이그에서 있을 3국 정상회담에 대해선 오후에 외교부에서 발표할 것“이라고 알려준게 고작입니다. 정상 간의 만남은 항상 청와대에서 발표하던 터라 귀를 의심하게 하는 한마디였지만 정상회담 개최 자체는 이때 발표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세 나라가 동시에 발표하기로 한 외교적 약속은 이렇게 무참히 깨어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외교부는 “그건 청와대 소관이다. 아는 바도 없고 계획도 없다”고 답한 것 보니 자신들이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발표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청와대가 자신들 체면 구기는 일을 외교부에 떠넘긴 셈이죠. 사실 외교부로선 마이크를 넘겨받기 싫었을 겁니다. 이미 청와대에서 마르크 루터 네덜란드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은 발표해버린 터라 외교부가 말표하면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이들보다 한 단계 격하시켜버리는 꼴이니 말입니다.

지난 정부가 비밀리에 체결을 추진하다 들켜 외교 라인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한일 정보보호협정 사태에서 보듯이 국민을 속이면서 외교를 추진할 수는 없습니다. 한일 정상이 만나는데 대한 원칙이 바뀌었으면 바뀌었다고 인정하고 왜 지금 아베 총리를 만나야만 하는지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정면돌파가 필요했던 거죠. ”할 말이 있으면 만나서 하고 풀 건 풀어야 한다“는 여론의 변화도 감지되던 차였습니다.

대통령이 어느 나라의 정상을 만난다는 단순한 사실조차 떳떳히 알리지 못하는 정부. 어떤 국민이 이런 정부가 밖에 나가 ’당당한 외교‘를 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요? 박 대통령 집권 1년 최대 치적이 외교라는 평가가 무색한 한 주였습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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