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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일방적 사망통보…의문에 싸인 ‘통영의 딸’
일시·장소 안밝혀 의혹 증폭
체제 우월성 과시 위해 납북 시도 20세기 대한민국 역사의 그림자



‘통영의 딸’로 알려진 신숙자 씨에 대한 11년 만의 소식은 ‘사망’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확인할 수 없으니 믿기 어렵다. ‘유괴범’은 종종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인질의 생사에 대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신 씨 문제에 남북과 국제사회가 이처럼 주목하는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인권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지만, 분단된 한반도의 냉정한 현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꾸준히 남한의 주요 인사에 대해 납북을 시도했다. 때로는 감언이설로, 때로는 힘을 동원하기도 했다. 대부분이 북한의 체제가 대한민국보다 낫다는 점을 내부에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체제의 우월성은 다른 체제와의 객관적 비교를 통해서만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일부 납북자를 통해 일방적으로 다른 체제를 깎아내리는 방법을 써왔다.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였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신 씨와 같은 수많은 인생이 희생돼야 했다.

신 씨의 개인사도 20세기 대한민국 역사의 그림자다. 1960년대 당시 경제개발 의지는 있었지만 자금이 없다보니 수많은 젊은이가 해외로 ‘달러 벌이’에 나섰다. 남자는 광부로, 여자는 간호사로 당시 선진국 국민은 꺼려했던 온갖 궂은 일을 하며 국내로 달러를 송금했다. 이 돈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성장의 종잣돈이 됐다.

신 씨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85년 작곡가 윤이상 씨 등의 월북 권유를 받은 남편 오길남 씨와 함께 입북했다. 오 씨가 혼자 탈출한 후 요덕수용소에 수용된 신 씨와 두 딸의 구명운동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이들에 대한 ‘부채상환’이기도 하다.

북한은 제3국을 통한 두 딸의 상봉을 요구하는 오 씨에 대해 “가족을 버리고 두 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두 딸은 오 씨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91년 북측이 오 씨에게 전달한 신 씨 모녀의 육성테이프에는 ‘발랄한’ 두 딸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북측 주장대로라면 오 씨가 탈북한 지 6년여가 지난 시점까지 ‘별 탈’이 없었다는 얘기인데, 지금에 와서야 오 씨가 신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을 바꾼 셈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는 결국 북한의 강제수용이 신 씨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북한 관련 인권단체와 정부는 신 씨의 유해송환을 북측에 요구할 계획이다. 북측이 응할지는 미지수지만 대응 향배에 따라 신 씨 사망의 진위와 향후 두 딸의 송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홍길용 기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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