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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南 사재기 없고…北 ‘울음바다’ 없고
94년 김일성 사망과 다른 한반도 민심
南, SNS 통해 실시간 정보

北, 경제난 심화 불신 팽배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난 19일 한국사회는 차분했다. 술렁임은 일었지만 생필품 사재기는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던 것과 대조된다. 또 김일성 사망 당시 주민들이 땅을 치고 통곡하고 전국이 ‘울음바다’로 변했던 북한에서도 이번에는 이 같은 격한 슬픔이 나오지 않아 달라진 민심의 일단을 드러냈다.

라면과 생수, 부탄가스 등 생필품은 그간 북한의 도발을 비롯한 국가 주요사태가 있을 때마다 품귀현상을 빚었다. 1983년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을 때나,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생필품 사재기로 사회적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마트 관계자는 “라면이나 물, 우유, 쌀, 음료·식사대용품 등 생활필수품의 사재기 움직임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와 남북 경제적 격차가 커져 전쟁 불안감이 줄어든 데다 천안함 연평도 사태로 면역력이 생긴 탓일까. 이보다는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과 비교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루머가 확산되지 않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1994년에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뉴스 특보 외에 정보 전달창구가 없었지만 이번 김정일 사망소식은 SNS를 통해 차분하게 퍼졌다.

한편 북한에서도 김정일 사망 소식이 알려진 직후 평양의 모습이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교해 생각외로 평온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 지국을 두고 있는 일본 교도통신도 “평양시내는 조용하고 평온했다”고 전했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이 발표됐던 1994년 7월 9일 당시에는 ‘특별방송’을 청취하기 위해 기관별로 모였던 군중이 김 주석 사망 소식에 그 자리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그 통곡소리가 평양 시내를 온통 흔들었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19일 오후 만수대 동상 앞에선 한두 명만 무릎을 꿇고 통곡하고 대다수는 서서 머리를 숙이고 있고 앞줄이 아닌 카메라에서 멀리 잡힌 사람들 중엔 무표정한 얼굴도 적지 않았다.

한 탈북자는 “김일성이 죽었을 땐 진심으로 슬퍼서 우는 북한 주민이 많았지만, 김정일 사망에 대해선 겉으론 우는 척해도 혼자 있을 땐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9년 말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했다가 실패해 경제난이 심각해진 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에 대한 불신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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