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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사망> ‘先軍’ 정치 김정일...도발과 테러, 굶주림의 반복
김정일 위원장의 통치술은 ‘선군’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350만 명이 굶어 죽고,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살기 위해 도망치는 탈북자가 물밀듯이 밀려와도 김정일은 ‘총과 칼’로 눌렀다. 국제 사회에는 ‘핵과 미사일’을, 우리에게는 ‘도발과 테러’를 앞세웠다.

공식적으로는 17년(김일성 사망), 길게는 37년(후계자 지명)인 김정일의 통치 기간은 북한에게 말 그대로 ‘암흑’과 ‘후퇴’의 연속이였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이 유일한 최고 권력자가 된 북한은 경제적으로 하락의 길로 접어든다. 북한의 경제 성장률은 1991년 -4.4%를 시작으로 1998년까지 8년 연속 후퇴를 거듭했다. 옛 소련의 몰락과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흡수라는 국제적인 흐름을 무시하고, 자신의 독재 기반 강화에만 주력한 결과다. 3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아사자가 속출한 ‘고난의 행군’ 시기도 이 때 나온 말이다.

김정일은 이런 경제난의 해법으로 ‘경제’가 아닌 ‘선군’(先軍, 군이 중심이 된 정치)을 선택했다. 세습 독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개혁과 개방, 자본주의 흡수 대신 강력한 통치 기반인 군을 앞세운 ‘100일 전투’, ‘속도전’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그가 남긴 것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주민과 북한, 그리고 2001년 개혁과 개방으로 발전한 상하이를 보며 남긴 “상전벽해”라는 감탄사 뿐이다.

김정일의 선군 정치의 부작용은 최근 급속도로 늘고 있는 탈북자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선군에 반한다는 이유로 20만 명이상을 정치수용소에 가뒀지만, 지금도 탈북자가 속출하고 있다. 한 탈북자 출신 북한 문제 전문가는 “둑이 무너지기 전에 물부터 새기 마련”이라며 “북한의 경우 그게 바로 탈북”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일이 선택한 ‘선군’은 주변국에는 강력한 도발로 표출됐다. 1999년과 2002년 연평해전,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은 1983년 미얀마 앙곤의 아웅산 테러, 1986년 KAL기 폭파사건 역시 김정일이 주도한 테러와 도발로 꼽고 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겉으로는 대화와 화해, 그리고 긴장 사이를 오가는 사이클을 보이지만, 그 속에 기본 전락은 항상 ‘도발’이 자리잡고 있다”며 김정일 선군 정치, 외교의 특성과 한계를 지적했다.

김정일의 외교 전략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핵과 미사일’을 선택한 김정일은 1994년 1차 북핵위기를 시작으로 2002년 2차 북핵위기, 그리고 최근 고농축우라늄(UEP)까지 매번 주변국과 갈등과 긴장을 획책했다. 하지만 ‘핵과 미사일’ 외교가 북한, 그리고 김정일에게 남긴 것은 수십 만명의 영양부족 상태 아동들에게 줄 쌀 조차 빌려올 수 없는 고립 뿐이였다.

<최정호 기자@blankpress> choij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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