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명분 ‘방산 공관장 회의’ 급조 논란 지속
나머지 5개국 주재대사 장기간 공관 부재 문제
野, 윤대통령 책임론 공세…‘외교 결례’ 지적도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해병대 채모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사의를 표명했고, 외교부는 이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후 수용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신속하게 사의를 수용해 정치권의 압박으로 기존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 4일 대사로 임명이 발표된 지 24일만, 출국 논란으로 입국한 지 8일 만이다.
외교부는 29일 출입기자단에 “이종섭 주호주대사 본인의 강력한 사의 표명에 따라 임명권자인 대통령께 보고드려 사의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이 대사는 이날 오전 10시쯤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오늘 외교부 장관께 주호주대사직을 면해주시기 바란다는 사의를 표명하고 꼭 수리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요청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사는 “저는 그동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빨리 조사해 줄 것을 계속 요구해 왔다”며 “그러나 공수처는 아직도 수사기일을 잡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끝나도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귀국해 취재진과 만나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자진사퇴 가능성에 선을 그은 이 대사의 입장이 바뀐 것은, 귀국한 뒤에도 총선 정국과 맞물려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사는 앞서 21일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방산협력 관련 업무로 상당히 일이 많을 것”이라며 “그다음 주는 한-호주 간 2+2회담 준비 관련한 업무를 많이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호주대사로서의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에서 열린 방위산업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입장해 조태열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 |
실제 이 대사는 비공개 형식으로 21일 신원식 국방부 장관, 22일 안덕근 산업·조태열 외교부 장관, 25일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을 각각 개별 면담하고 28일 열린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며 일정을 이어갔다. 29일에는 6개국 공관장들이 한국무역보험공사와 한국수출입은행을 방문하고, 내주에도 관련 일정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 대사의 모든 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당초 공관장 회의가 25일 열린다고 발표한 것과 달리 본회의가 28일 열리는 등 대통령실과 정부의 설명과 다르게 이 대사 귀국을 위한 ‘급조된 회의’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번 회의에 참석하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인도네시아·카타르·폴란드 주재 대사들도 현지 공관을 비울 수밖에 없어 재외공관 공석 문제도 지적됐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
이 대사 문제는 자진사퇴로 귀결됐지만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야권에서는 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 대사를 무리하게 임명해 출국시키려 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윤 대통령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대사가 물러난 것만으론 미봉에 지나지 않는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도주대사 파문과 외교 결례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종섭 대사 측이 사의 표명과 함께 “서울에 남아 모든 절차에 끝까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국민을 더욱 분노케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양국 우호관계를 고려해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을 준 호주 측에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수사 대상자를 주재 대사로 임명하고, 임기를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자진사퇴한 것은 반대로 외교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논란이 되는 인사를 대사로 임명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