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인터;뷰] 윤종석 “‘손더게’→‘왕남’ 부담감, 김희원 PD 덕분에 극복”
이미지중앙

(사진=킹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최근 한 인터뷰이(interviewee)로부터 ‘10년의 법칙’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간단하다. 10년 간 묵묵히 한 길을 파면 반드시 빛을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 시(詩)와 영화를 사랑하던 열여덟 소년에서 눈빛이 남다른 신예로 이름 석 자를 알린 스물여덟 배우가 있다. 지난해 OCN ‘손 the guest’ 최신부 역으로 신 들린 연기를 선보이더니 2019년, tvN ‘왕이 된 남자’의 호위무사 무영과 영화 ‘얼굴들’ 속 10대 소년 진수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동시에 사로잡은 윤종석이 그 주인공이다.

▲ ‘왕이 된 남자’가 데뷔 후 처음 출연한 사극이었죠?

“처음 해보는 장르라 걱정이 앞섰지만 김희원 PD님의 지도 편달 덕분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시청자들도 좋아해주시고 알아봐주셔서 다행이고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 인사를 하는데 먹먹하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 김 PD가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종석이가 하는 무사 장무영은, 그만의 특별함과 느낌이 있을 테니 네가 잘하는 걸 하면 된다’고 하셨어요. 나 스스로 원작과 비교하면서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거든요. 그랬더니 PD님이 ‘너는 예민하고 기민한 편이라 캐치하는 것도 빠르다’면서 ‘무사는 어떻다는 정답이 없으니 너만의 표현법을 존중하겠다’고 해주셨습니다”

▲ 김 PD 말대로 ‘예민하고 기민한’ 편인가요?

“연기할 때 연구와 고민을 거듭하는 편이라 작품마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아요. 특히 ‘왕이 된 남자’는 첫 사극이라 고민이 컸죠. 혼자 머리 아파하고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PD님이 보시고 격려해주신 것 같아요”

▲ 전작 OCN ‘손 the guest’에서 워낙 강렬한 연기를 보여준 터라 부담감도 느꼈겠어요

“‘손 the guest’ 최신부 역할에 익숙해져 있다가 새로운 장르와 캐릭터를 맡게 돼 어려웠어요. 특히 최신부를 연기하는 동안 구부정한 자세로 다녔는데(최신부는 극 중 악귀에 빙의된 설정이라 등장하는 내내 몸이 기괴하게 비틀려 있었다) 무영은 어깨를 피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하니까 힘들었죠. 그래서 ‘왕이 된 남자’ 촬영 초반에는 보정 기구를 착용한 채 연기하기도 했어요. 많이 갑갑했는데 나중에는 적응이 돼고 실제로 어깨도 많이 펴지더라고요”

▲ 작품에 따라 일상에서의 자세도 달라지는군요

“‘손 the guest’ 때는 이제껏 보지 못한 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시청자들이 어디에 더 집중할까 고민해보니 비주얼이 제일 중요할 것 같더군요. 때문에 기괴한 모습을 만들려고 허리를 굽히고 목을 꺾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다들 좋아해주셔서 고마웠죠. 물론 지금은 어깨 편 채로 당당히 다니고 있습니다(웃음)”

이미지중앙

(사진=OCN, tvN)



▲ 극 중 무영은 왕의 호위무사로서 주군 이헌(여진구)의 몰락과 광대 하선(여진구)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연기했나요?

“무영이 제일 중립적인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호위무사 무영은 이헌이 아니면 안 되는 인물이잖아요. 때문에 하선이 (궁에) 들어왔을 때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쉽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 연기할 때는 의리와 충심으로 굳은 심지를 가진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고요. 시간이 지나 무영도 하선의 편으로 돌아서게 될 때에는 내가 생각했던 성군의 이미지에 부합한 사람이, 내가 바라왔던 나라를 조금씩 완성해 가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입덕’하게 되었다고 해석했어요”

▲ 8회에서는 ‘이헌이 아니면 안 됐던’ 무영이 임금에게 죽음을 명받는 모습이 그려졌죠

“그 장면을 연기할 때 ‘무영이 왕을 너무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왕이 힘이 없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이밀 때, 무영은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라는 감정과 ‘어쩌면 이 왕을 더는 섬기지 못하겠다’는 비탄함을 느꼈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이 흐르더군요”

▲ ‘왕이 된 남자’에는 주인공 여진구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배울 점도 많았겠어요

“우선 진구 씨는 PD님 이야기를 잘 듣는 모습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도 똑똑하게 잘하고요.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촬영이 시작되면 어른스러워 보이는데 끝나면 장난기도 많고 재밌는 친구였어요. 덕분에 서로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면서 좋은 인연을 맺었습니다. 또 현장에서는 선배들이 중심을 잡아주신 덕분에 연기하기 수월했고요. 특히 진평군(이무생) 주호걸(이규한) 선배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나를 많이 챙겨주셨거든요. 밥도 같이 먹어주시고요. 우리 셋이 수염을 붙이는 사람들이라 식사할 때 나름의 고충이 있어요. 수염에 (음식이) 묻으면 안 되니까 죽 먹듯 천천히 먹어야 해요(웃음). 이 외에 연기할 때 효율적인 방법들도 알려주시고 진짜 좋은 선배들을 만난 것 같아요. 규한 선배와는 드라마가 끝나고도 연락하고 지내요”

▲ 반대로 ‘손 the guest’ 때는 작품의 분위기 자체가 무겁기도 했고 최신부라는 역할의 특성 상 현장에서 외로움을 느끼진 않았나요?

“‘손 the guest’ 촬영할 때는 김홍선 PD님이 나를 엄청 예뻐해주셔서요. 매일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깨동무한 채로 산책하고 그러셨어요. 스스로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PD님이 앞으로 이렇게 하면 더 잘 될 거라는 이야기도 해주시고요. 현장 분위기가 다소 무서웠던 지라 더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실제 대학 선배이기도 한 김동욱(윤화평 역) 선배가 많이 챙겨주셨어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동욱 선배가 후배들에게 술을 사주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 ‘선배와 꼭 같이 연기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기회가 와 감개무량했죠”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입학 후 수많은 단편·독립 영화에 참여했다고 들었습니다. 2학년 때까지 출연한 단편영화만 40편이 넘었다고요?

“우리 학교에서는 연기 공부를 연극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작업에 관해서는 자세하게 배울 기회가 부족해요. 그런데 나는 영화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영화를 찍으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고민하다가 단편영화를 통해서 공부하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무작정 뛰어들었는데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거예요. 답을 찾을 때까지 반복하다 보니 많은 작품에 함께하게 됐어요. 덕분에 초반에는 오디션을 봐서 캐스팅 됐다면 여러 작품을 거치면서 나를 불러주는 곳이 늘었죠. 동시에 내게 주어지는 캐릭터의 폭도 넓어졌고요”

이미지중앙

(사진=영화 '얼굴들' 스틸컷)



▲ ‘하면 할수록 모르겠는’ 과정을 거쳐 찾게 된 답은 무엇이고, 그 시점은 언제인가요?

“작품을 여러 편 출연하면 비슷한 인물을 또 맡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 새로운 인물에 대해 연구하지 않고 이전에 해봤던 경험대로 연기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과물이 안 좋았어요. 모든 순간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특히 나를 변화하게 한 작품은 영화 ‘얼굴들’(2019)이에요. 2016년 연말부터 2017년 초에 촬영해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다가 극장에는 올해 개봉한 작품이죠. 당시에 선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척과 진짜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는 걸 배웠어요. 늘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 계기였습니다”

▲ ‘얼굴들’로 ‘제29회 프랑스 마르세이유 국제영화제’ ‘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제8회 뉴욕 뮤지엄 오브 무빙 이미지(MoMI) 퍼스트 룩 페스티벌(Museum of Moving Image First Look Festival)’ 등에 초청받았는데요

“잊을 수 없는, 뜻깊은 기억이에요. 태어나서 처음 레드카펫에 서 봤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작품 자체도 좋거니와 나 스스로에게 연기 잘하는 선배들을 통해 공부가 많이 된 작품이라 여러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 캐릭터를 연구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점은 나, 윤종석과 멀어지는 거예요. 시청자들은 윤종석이라는 사람이 연기하는 게 궁금한 게 아니잖아요. 그 인물의 삶이 궁금한 거죠. 때문에 그들에게 캐릭터로서 기억에 남게끔 외형은 물론 내면까지 신경씁니다. ‘윤종석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가 아니라 ‘이 사람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고민해요”

▲ 10대 후반 무렵 배우를 꿈꾸기 시작했다고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시를 많이 썼죠. 고등학생일 때는 글 쓰면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계점이 보이더라고요. 그러다 18~19살 때 연기를 만난 거예요. 무엇보다 영화나 드라마는 화면에 음악도 나오고 목소리도 나오잖아요.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 배우를 목표로 설정한 시점부터 대학 입시까지 시간이 촉박했을 텐데도 한예종 입학에 성공했습니다

“배우를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거든요. 안정적인 직장을 선택하길 바라셨을 텐데 뜬금없이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요. 그렇기에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때문에 내가 이만큼 할 수 있으니 믿어달라는 취지에서 이 악물고 입시를 준비했고요.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없어요. 자다가 눈 뜨면 바로 대사를 외웠을 정도였죠. 당시 집에서 연습실까지 10분 거리였는데 그 동안 10개의 독백을 안 끊기고 외울 수 있었으니까요”

이미지중앙

(사진=킹엔터테인먼트)



▲ 공들여 입학한 대학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적응을 잘 못 했어요. 목표를 ‘대입’이라는, 너무 가까운 곳에 설정해 놓은 탓에 방황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홍콩·중국·일본·터키·독일 등에 갔는데 특히 홍콩이 좋았어요. 번잡함 속에 여유로움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 묘한 분위기와 사람 냄새 나는, 활력 넘치는 환경이 좋았어요. 그렇게 돌아다니던 차에 문득 ‘내가 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빨리 군대 다녀와서 정신 차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죠”

▲ 전역 후로 방황은 끝났나요?

“생각보다 빨리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게 된 덕분에요. 대표님이 내게 영입을 제안할 당시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너만의 연기를,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테니 파트너로서 잘 해보자’고요. 그때 ‘설령 내가 잘 되지 않더라도 이 사람이 밉지 않겠다’는 믿음이 들었죠”

▲ 배우를 꿈꾼지 거의 10년이 지났습니다. 힘든 때는 없었나요?

“욕심이 엄청 많고 기준점이 높은 편이에요. 원하는 곳까지 올라가지 못하면 극도로 불안해하고요.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도 심하게 느끼죠. 그래서 데뷔하기 전까지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에 시달렸어요. 나중에는 엄청 피폐해져서는 혼자 ‘연기는 내 길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 나를 버티게 해준 게 향(香)이었어요. 외국에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향을 피워놓는 문화가 있잖아요. 나도 불안감을 덜고자 조향에 취미를 두기 시작했어요. 집에 재료를 사두고 틈날 때마다 향수나 캔들을 만들어요. 주위에 선물도 하고요”

▲ 또 다른 취미가 있다면요?

“음악도 오래 배웠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요. 어머니가 미대에서 현대 미술을 전공하셨거든요. 어깨 너머로 배운 게 있어서 가끔 그림을 그려요. 주로 작품에 들어가기 전후로 그 당시 내 모습을 그립니다. 추상화의 형태로요. 최근에는 ‘손 the guest’를 준비할 때 그렸어요. 당시에 최신부와 닿아있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컸거든요. 인물이 어둡다 보니 나도 같이 축축 쳐지는 거예요. 거기서 벗어나 밝은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숨고 싶고 공허한 순간들을 그림에 담았었어요. 이렇게 나를 그리다 보면 스스로의 현주소를 잘 알게 돼요. ‘내가 지금 이렇게 처절하구나’ 혹은 ‘그때의 내가 이렇구나’ 기억할 수 있죠.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비답이 내려지기도 해요.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요”

이미지중앙

(사진=킹엔터테인먼트)



▲ 이야기 나누면서 감수성이 참 풍부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본인은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향기에 비유하자면 풀잎 향이 나는 배우요. 플로럴 계열에 오디 향을 섞으면 숲 냄새가 나요. 숲이라고 하면 안식과 평안의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초록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색깔이고요. 나로 하여금 보는 이들이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금처럼 고민하고 연구하며, 동료들과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할게요”

cultur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