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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랜선친구] ②랜선친구와의 동행, 그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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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온라인이나 SNS로 맺은 친구를 뜻하는 ‘랜선친구’는 현대인의 관계맺음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단어가 됐다. 최근 ‘랜선남친’ ‘랜선이모’와 같은 파생단어도 다양하게 생겨났다. ‘랜선’을 주제로 한 방송프로그램도 활발하다. ‘랜선’을 통한 관계맺음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봤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O월 O일까지 같이 제주도 동행할 분 구해요!”

현대인에게 ‘혼행’(혼자 여행)이나 ‘혼밥’(혼자 밥 먹기)은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최근까지도 ‘혼밥족’을 겨냥한 다양한 간편식이나 ‘혼행족’을 위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현재 ‘혼자’에서 벗어나 타인과의 접촉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바로 ‘랜선친구’를 통해서다.

여행 커뮤니티 바이트레인이 접속하면 동행인을 찾는 내용의 게시물을 손쉽게 목격된다.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 ‘동행족’을 찾는 게시물이 올라온다.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오픈채팅에는 이른 바 ‘랜선 동네친구’를 찾는 이들로 가득하다. 이용자의 대부분이 동네에서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친구를 구하기 위해 채팅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듯 온라인을 통해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랜선친구’와의 만남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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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이트레인 홈페이지 게시판 캡처)



■ “꿩도 먹고 알도 먹고” 홀로족의 랜선친구 통한 합리적 관계 맺기

지난 6월 세계 여행 가격비교사이트 스카이스캐너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나홀로 여행객 10명 중 6명은 온라인에서 동행 찾기를 시도해 함께 여행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이 동행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식비나 교통비 등 여행 비용 절감’(26%)이 가장 높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22%), ‘혼자 다니기 무서워서’(21%), ‘혼자 다니기 외로워서’(15%) 순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서 사랑각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연구 사장(28)은 “제주도에서 1년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운영 초반과 비교하자면 근 1년간 혼자 방문하는 손님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혼자 방문한 손님들끼리 동행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또 여행 소재 온라인 커뮤니티를 자주 살펴보는 편인데 동행을 구하는 게시물이 많이 올라온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에서 5년간 모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A씨도 손님 중 동행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을 통해 만나 동행한 손님이 있었다. 손님들이 구체적 관계를 잘 설명해주지 않아 얼마나 랜선 만남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온 손님들끼리 여러 이유로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경우는 많이 봤다”고 밝혔다.

‘랜선 만남’을 행하는 이유가 합리적 소비를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현대인에게 여행은 힐링의 창구가 된다. 하지만 가족이나 지인과 여행을 준비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로 곤혹스런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주관만 앞세우다 보니 다툼이나 이견이 생기는 것이다.

직장인 이희찬(경기도.27) 씨도 이 같은 이유로 ‘랜선친구’와의 동행을 택했다. 그는 “지난 5월 혼자 여행을 결심하고 온라인을 통해 동행인을 구했다. 가족이나 학교친구와도 자주 여행을 갔지만 서로가 편해서인지 배려가 없어 다투는 일이 잦았다. 이번에는 그 같은 스트레스를 반복해서 겪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낯선 이와의 동행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컸다. 동행인을 구하고 처음 만났는데 우려했던 것과 달리 어색함이 화기애애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대화도 잘 통했고 사전에 협의된 것들로 행선지를 다니다 보니 편안했다. 다음에 혼자 여행을 갈 때도 동행인을 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보다 편리성이 우선시 되는 것이다.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랜선을 통한 동행은 설렘과 신기함을 동반한다. 반복되는 관계가 아닌 새로운 만남을 통해 지나친 간섭 없이 자유를 느끼는 거다. 서로 목적도 같으니 중재가 용이한 점도 있다. 특히 서로 정보 공유를 통해 역할 분담이 확실히 이뤄진다. 합리성을 따지는 인간관계의 형태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이를 통한 현대인의 관계 변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그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띄는 현대인들의 흥미로운 변화이기도 하다. ‘혼밥족’이 유행한 것처럼 개인의 바운더리가 강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본래 인간은 외로움을 많이 탄다. 이 본능에 따라 다시 자정(自淨) 되고 있는 것”이라며 “여기에 기존과 달리 랜선 즉 커뮤니티를 통한 조건 만남으로 보다 편리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셈이다. 인간관계에 대한 결핍을 해소하면서도 합리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여행이나 식사)을 소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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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물론 암(暗)도 따른다. 낯선 이와의 동행이 자칫 범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공통적 관심사가 컬트(cult)적 성향을 띨 때 범죄로 번질 우려도 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인천 연수동 초등생 살인사건’이다. 김모(17)양은 한 초등학생을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가 목 졸라 살해한 뒤 흉기로 잔인하게 시신을 훼손해 사체 일부를 캐릭터 커뮤니티에서 만난 ‘랜선친구’ 박(20)씨에게 건넸다. ‘랜선친구’의 폐쇄적 성향이 짙어질 때 나타나는 최악의 현상이다. 박씨는 “김양이 범행을 저지를 당시 역할극인 줄 알았다”고 주장한 반면 김양은 공판 과정에서 박씨가 살인을 지시했다고 반박했다.

컬트적 성향이 강한 가상관계가 현실과 근접했을 때 혼동이 발생하며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장덕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랜선 모임 현상은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반영해 나타난다. 기존 한국사회에서의 관계가 왜 사람들로 하여금 차라리 혼자 있는 걸 선택하게 했는지, 또 낯선 이와 함께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귀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성숙된 시민 의식이 중요하다. 커뮤니티 활동에 제재를 가할 수 없는 만큼 바른 문화 형성이 필요하다. 중심 세대를 이해시킬 수 있는 문화 캠페인 등을 통해 그릇된 것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①“친구도 내 입맛에 맞게” 합리적 관계 지향 시대
②랜선친구와의 동행, 그 명과 암
③‘여중생A’부터 ‘서치’까지…랜선 너머의 존재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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