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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사이즈 감옥] ③‘66100’ 김지양 대표 “'미용체중' 말 만든 사람 책임져야”(인터뷰)
대한민국 여자들이 S사이즈 감옥에 갇혔다. TV 속 뼈가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여자 연예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예쁘다’고 찬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의 기준에 따라 ‘50kg가 넘는 여자는 수치’라는 헛소리까지 나왔다. 의류 매장에서는 아동복 수준의 작은 옷을 프리사이즈라고 판매하니, 여자들이 살을 빼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저체중에 해당하는 여성 인구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16년에는 16%의 20대 여성이 저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망은 강박이 되고 질병으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저체중의 민낯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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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사이즈 모델 겸 패션 브랜드 66100 대표 김지양(사진=66100 제공)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저체중이 필수 조건으로 여겨지는 직업군 중 하나는 모델이다. 2010년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가 돌연 숨져 충격을 안긴 일이 있었다. 사망 당시 거식증을 앓았다는 이사벨 카로는 신장 165cm에 몸무게 31kg인 상태였다.

해외에서 맹활약 중인 모델 최소라는 SNS 라이브를 통해 자신의 신장과 몸무게를 직접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179cm에 46kg이라는 그는 당시 자신의 몸매를 선망하는 일부 팬에게 “절대 나를 다이어트 롤모델로 삼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피부가 상하고 탈모 증세를 얻기도 했다면서 “나도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이 바닥이 그런 걸 어쩌겠냐. 나를 보고 힘을 얻어서 다이어트한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상처받는다”고 거듭 우려했다.

이처럼 저체중 강요로 인한 건강이 악화되고 질병을 얻는 모델들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지나치게 마른 모델의 업계 활동을 금지시켰다. 일정한 체질량 지수 이하의 모델을 기용하거나 체중 감량을 강제하는 에이전시·브랜드 등은 법적 처벌을 받는다. 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근 몇 년간 ‘보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신체 긍정)’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플러스사이즈 모델을 기용하는 패션쇼와 브랜드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미국의 플러스사이즈 시장 매출 규모가 170억 달러를 기록, 주류 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모델 겸 패션 브랜드 대표 김지양이 플러스사이즈 시장의 선두에 섰다고 평가받는다. 지난해 온스타일 ‘바디 액츄얼리’ MC를 맡아 대중에 얼굴을 알린 김지양은 2010년 미국 최대 플러스사이즈 패션쇼 ‘풀 피겨드 패션위크(Full Figured Fashion Week)’로 데뷔한 최초의 한국인 모델이다. 이후 독립잡지 ‘66100’을 창간하며 편집장이 됐고, 동명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해 대표까지 맡게 됐다.

최근 서울 사당동 ‘66100’ 쇼룸에서 만난 김지양은 인터뷰 직전까지 산더미 같이 쌓인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쇼핑몰 외에도 발을 들인 곳이 많기 때문이다. 다양성 영화제 ‘다다름 필름파티’에 힘을 보탰고, 비정기 이야기모임 ‘목요회’도 운영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저체중 강박으로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룹상담도 준비 중이란다. 사회 변화를 위한 목소리 내기에 앞장서고 있는 것.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내가 당당하고 멋진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소개되는 것이 민망하다”고 했다. 김지양은 일련의 활동에 대해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김지양의 움직임은 분명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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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온스타일 방송화면)



▲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활동하다가 직접 브랜드까지 론칭한 계기가 있나요?
“국내 플러스사이즈 시장은 규모에 비해 다양성이 부족합니다. 적잖은 브랜드가 패션 트렌드에 맞추는 게 아니라 단순히 큰 옷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거든요. 구매자들 역시 ‘내 몸에 맞는 옷이 지금 당장 필요하기 때문에’ 플러스사이즈 브랜드를 찾고요. ‘66100’은 직접 옷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셀렉트숍을 표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소비층인 2~30대 여성들에게 어떤 스타일을 제안할지 고민하죠. 사회 생활을 해야 하니까 생활하는 게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을 추구해요. 이를테면 앉았다 일어나는 게 편한 바지, 다림질 하지 않아도 되는 셔츠, 물세탁이 가능한 블라우스같은 옷이요. 또 치마를 입고 걸을 때 허벅지 안쪽이 쓸리면서 발생하는 고통을 막기 위해 레이온 속바지를 추가하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대다수가 허리가 길고 골반과 엉덩이가 작은 체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이웨스트 스타일의 바지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 체형을 보완하는 스타일링을 추천하는 건가요?
“체형을 보완한다기보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스타일링이요. 우리는 날씬해 보이는 옷을 권하지 않아요. 그런 문구로 홍보하지도 않고요. 대신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구매하라고 말씀드려요. 예를 들면 고객에게 어떤 색상이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또 원단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려드려요. 각자의 취향에 맞춰 옷을 고르는 기준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서 구매하면 실패하지 않는다는 경험을 제공해 드리려고 합니다”

▲ 온라인몰과 쇼룸을 동시에 운영하는데 직접 방문하는 고개이 많은가요?
“방문해서 착장해보는 게 중요해요. 신체 사이즈를 재고 옷을 입어본 뒤 ‘나도 이런 옷을 입을 수 있구나’ ‘나에게도 이런 옷이 필요했구나’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방문 고객도 론칭 초기에 비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에는 입을 옷이 너무 없어서 급하게 찾는 분들이 대다수였어요. 플러스사이즈라고 하면 괜히 남의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에는 여유를 갖고, 진짜 옷을 고르러 오는 분들이 늘었죠”

▲ ‘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완화됐다는 증거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하지만 여전히 마르지 않은 몸은 공격받기 쉬워요. ‘멧퇘지(메갈리아+멧돼지)’ 같은 혐오 단어도 많죠. 국가가 허락한 혐오라고 생각해요. 2000년대 초반에 ‘비만 퇴치 운동’이 일어났어요. 질병을 박멸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비만으로 고통받는 대상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퇴치’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는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소아비만의 심각성이 대두됐던 2010년대에는 비만과 관련한 아동 도서도 여럿 출간됐어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요. 비만 아동은 제멋대로에 식탐을 못 견디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요. 비만을 벗어나야만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괴롭힘당하거나 미움받는 게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거죠. ‘뚱뚱한 게 죄’라는 인식을 미디어가 주입시켜온 겁니다”

▲ 동시에 저체중을 미의 기준으로 삼고 강요하는 경향이 심화됐습니다
“이제는 제로사이즈(미국에서 여성 의류의 가장 작은 사이즈)를 입지 않으면 모두 다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제로사이즈조차도 살이 조금 붙었다 싶으면 내 몸에 하자가 생겼다고 받아들여요. 아이돌 문화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아이돌(idol)은 원래 신화에서 우상(偶像)을 뜻하는 단어잖아요.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존재, 흔치 않기 때문에 아이돌인 거죠. 그러니까 내가 아이돌처럼 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이 사회가 그걸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어요. 아이돌 당사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람을 아주 작은 그릇에 욱여 넣은 것처럼 (마르게) 만들어서 대중 앞에 전시하고 그 모습을 찬양하게 만들고, 그 몸매를 유지해야 하니까 아이돌들이 다시 고통받고… 옛날에는 저체중도 ‘비정상’이었어요. 너무 말라도 안 된다고 했거든요. 저체중인 친구들은 살을 찌우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그런데 ‘미용체중’이라는 말이 생긴 거예요.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이상적인 외모를 갈망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 사회가 갈망을 강박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는 거예요. 작년에 서울교통공사가 2022년까지 지하철에 성형광고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어요. ‘이제서야?’ 싶더라고요. 학생들이 통학할 때 이용하는 마을버스에 지방분해주사나 다이어트 한약 광고가 붙어 있었어요. 한 팩에 3~5만원짜리요. 아이들이 혹할 만한 금액을 받고 1회분 약을 판매하는데, 처음부터 효과가 나타나야 하니까 용량이 커요. 밥 대신 그걸 먹으면 아이들의 몸이 남아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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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6100 제공)



▲ 저체중 강박으로 인한 섭식장애 등 질환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관련하여 국가 정책은 미비한 상태입니다. 최근 복지부가 ‘비만 종합 대책’을 발표한 것과 대비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쩌면 저렇게 비만에만 포커스를 맞춘 건강 정책들이 틀도 벗어나지 않고 일률적으로 계속해 등장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66100’을 운영하면서 섭식장애를 심각하게 겪는 고객들을 많이 만났어요. 옷을 사러 와서 우는 학생들도 많았죠.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 요즘은 의류 시장의 ‘표준’도 저체중에 맞춰있는 듯합니다. 웬만한 보세 매장에서는 옷을 구매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게 나오죠. 보세 매장에서 프리 사이즈라고 내놓는 옷을 보면 손바닥만한 것도 있어요. 기능성 의류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수영복은 몸에 제대로 맞는 것을 찾기 힘들죠. 특히 대다수 사람들이 ‘나는 수영복을 못 입을 거야’라고 생각해요. 하루는 다이어트를 위해 수영 강습을 받을 예정이라는 고객이 찾아왔어요. 맞는 사이즈의 수영복이 있는지 묻기에 한 제품을 추천했더니 ‘너무 튀는 것 같다’고 망설이는 거예요. 노출이 과한 디자인이 아니었는데도 ‘이런 것을 입으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 걱정하더라고요.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는 건 당연한 일인데 속상했죠. 남에게 평가받는 일이 너무 당연해진 현실도 새삼 느꼈고요”

▲ 2014년에는 ‘66100’ 매거진을 창간했죠?
“1년 정도 쉬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요. 2015년에는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 지원금을 받았었는데, 잡지로 이렇다 할 수익이 나오지 않자 지원금이 끊겼어요. 의류 브랜드를 론칭한 이유 중 하나에요. 경제적인 기반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지금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고요. 더 늦기 전에 올해는 꼭 다시 책을 내려고 계획 중이에요. 콘텐츠를 어떻게 소개하고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중입니다”

▲ 외모 다양성과 관련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오늘(25일) 서울 명륜동 달빛극장에서 ‘제4회 다다름 필름파티’라는 영화제를 개최합니다. 외모 다양성과 관련한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죠. 행사가 끝난 뒤에는 아카이빙 책자 등 굿즈도 만들 예정이에요. 또 최근에는 ‘목요회’라는 이야기 모임을 만들었어요. 목요일마다 비정기적으로 운영돼요. 첫 번째 모임에서는 섭식장애에 대해 이야기했고 두 번째 모임 때는 자기 혐오나 비만 혐오에 관해 대화할 계획이에요. 이 외에도 섭식장애 그룹 상담 모임을 만들었어요. 개인이 섭식장애를 치료하려면 비용면에 있어서 부담이 커요. 함께 상담받고 치료하면 그런 부담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두 달 안에 SNS를 통해 공지할 예정이니 필요한 분들은 함께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 모두가 나에 대해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숨 좀 쉬고 살 수 있지 않을까요”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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