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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뷰] 연극 ‘리차드 3세’ 욕망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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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차드 3세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짐승만도 못하다’는 표현이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한 요즘 더 자주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쏟아지는 사건사고는 추악하고 끔찍한 인류의 본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언론보도 사회면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은 모두 ‘선과 악의 기로’에서 악을 택한다. 그들의 악행을 보며 대중은 선을 그리워한다. 어쩌면 인간은 결과적으로 악한 동물일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짐승만도 못하다’는 표현은 수정돼야 마땅하다. 짐승이 사람보다 악하다는 전제로 쓰는 말일 테니 도덕적으로 어불성설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이 낳은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욕망을 그려내는 관점이 탁월하다. 무려 500년 전 사람이지만 현대사회의 욕망과도 일맥상통해 성찰할 지점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욕망은 단순히 ‘동물적인 충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능에 가까운 차원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욕망을 윤리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할 필요는 없다. 셰익스피어는 단지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짐승만도 못한 ‘욕망’이라는 명령은 인간이 지닌 삶의 당연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셰익스피어는 ‘리차드3세’를 통해 인간의 본성적 기질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그것도 리차드라는 한 인물의 권력 찬탈 과정을 통해 개인적인 욕망의 추구가 자신과 주변을 어떻게 파국으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준다. 욕망은 현실의 질서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고, 개인으로선 파멸을 가져다준다. 끝없는 야욕 추구의 결말은 파국이다. 셰익스피어는 ‘욕망의 끝은 파멸’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방대한 서사를 무대 위에 띄워 놓았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리차드 3세’는 욕망의 종합선물세트다. 1400년대 영국 장미전쟁기 리차드는 자신의 형이자 요크 가의 왕 에드워드 4세의 자리를 탐한다. 곱사등이지만 명석한 리차드는 왕관에 대한 권력욕으로 방해가 되는 반대 세력과 친인척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가며 결국 왕관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피로 얻어낸 자리는 다시금 피로써 되돌아간다. 왕위에 오른 리차드의 영광스런 나날은 그리 길게 가지 못한다. 오히려 불신과 악행의 나날 속에서 하루하루 병들어가다 끝내 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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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차드 3세


그러나 ‘리차드 3세’를 메시지만 남는 작품이라 여겨선 곤란하다. 결코 단순한 고전으로 끝나지 않는 특별함이 있다. 일단 유쾌하다. 고전이지만 고전답지 않은 게 매력이다. 단지 과거의 소재를 차용했을 뿐 정서적인 측면에선 오히려 현대적이고 세련됐다. 자칫 진입장벽이 높아질 수 있는 작품임에도 ‘나 고전이요’하고 던져주는 메시지를 첨가하기에 앞서 극 전반에 녹여낸 유머가 관객들의 마음을 열어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고전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변주한 일등공신은 황정민이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악역에게 이렇게 정이 가도 되는 걸까. 공연 내내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황정민은 땀을 뻘뻘 흘리며 추악한 곱사등이를 연기한다. 손은 굽고 다리는 오므라져 있다. 입체적인 배역 소화를 위해 단한 번도 긴장을 풀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다 안쓰러워 허리를 펴주고 싶은 지경이다. 그럼에도 황정민은 여유를 잃지 않는다. 오히려 엄청난 대사량과 연기를 선보이며 간간이 웃음을 주는 일을 잊지 않는다. 여기에 탄탄한 배우진이 한몫 거든다. 로봇처럼 한 치의 오차 없는 연기를 통해 관객을 압도한다.

무대영상도 돋보인다. 연극이라는 장르에서 영상을 통해 서사를 보완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스크린 없이는 이야기가 밋밋해질 수 있을 만큼 쓰임새가 잦아 더욱 특별한 구석이 있다.

연극 ‘리차드 3세’는 오는 3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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