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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다영의 읽다가] 시작하려는 그대도, 멈춰선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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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 열망해오던 일을 하면 내내 행복할까. 사회인으로 살아본 지 꽤 된 사람이라면 살며시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희열과 행복과 성취감은 잠시일 뿐, 일을 해나가는 과정의 대부분은 인내와 고통이 차지한다. 매사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꿈을 좇는 것은 때론 신기루에 비교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만약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신이 하는 일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는 것은 엄청난 복이다.

북유럽 이주민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소녀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아버지의 연구실을 동경한다. 아버지의 연구실에 있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하기만 했다는 소녀는 대학생이 되고,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비인간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나가려 노력한다.

그러던 중 한 교수의 제안으로 연구실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본격적으로 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거미나 생쥐가 친구하자고 달려들 것만 같은 허름한 연구실에서의 시작은 좀처럼 여성 과학자에게 성공의 길을 터주려 하지 않는다. 성별도 성도 다르지만 자매보다 가깝고 쌍둥이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그에겐 가장 큰 행운이다. 보통 교수라고 하면 우아하고 품위있는 일상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꾸미는 것조차 사치다. “어떻게 저런 여자가 이런 연구를 하겠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포기하고 가장 싼 냉동식품을 대량으로 구매해 끼니를 때우고 미국 전역을 자동차로 오가며 연구비를 획득하고 성과를 올리며 결국 성공한 과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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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랩걸' 책표지)


‘랩걸’의 저자이자 여성 과학자인 호프 자런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랩걸’은 유시민 작가가 자신의 딸에게 권해주고 싶다며 거론한 책이다. ‘알쓸신잡’ 제작진에 따르면 유시민 작가는 줄곧, 자주 이 ‘랩걸’이 참 좋은 책이라 언급했다. 그럴만하다. 호프 자런은 ‘랩걸’에서 담담하게,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자부심은 꽉 찼지만 자만은 없다. 너무도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자신을 까발리기에 독자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선다. 노숙자 취급을 받고, 눈 폭풍을 뚫고 달리다 죽을 뻔하고, 학과장이 출입을 금지한 임신 상태에서 몰래 실험실에 잠입하는 그의 이야기는 “이런 사람도 다 있어?” 싶을 정도다.

또 한가지 매력은 호프 자런 이야기 사이사이에 나무와 식물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이는 곧 호프 자런의 삶과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의 거들먹거림이라거나 ‘당신은 모를거야’ 식으로 풀어놓는 지식 자랑은 존재하지 않는 점이 매력이다. 너무 어렵지도 않다. 호프 자런의 삶을 따라가다 책장을 덮고 나면 주변의 나무가 갑자기 특별해보이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호프 자런은 ‘랩걸’을 통해 소녀 시절부터 꿈나무를 거쳐 중견과학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일상을 상세히 전한다. 이는 사회 출발선에 선 취업 준비생을 비롯해 10년 20년 치열하게 달려온 사회인들 모두에게 남다른 감명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호프 자런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매진하는 모습은 취준생들에게 진짜 사랑하는 일을 찾고 매달릴 수 있는 뜨거운 열정을 전한다. 그런가 하면 호프 자런이 목표를 향해 전진하면서도 끊임없이 ‘잘 하는 걸까’ ‘잘 가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고민하는 지점들은 소위 슬럼프에 빠진 이들이나 쳇바퀴 삶에 지친 이들에게 '그럼에도'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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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방송화면)


호프 자런은 평소 독서량이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탄탄한 문장력이 책읽기를 더욱 수월하게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독자에게 전하는 데 있어 흡인력이 모자란 점은 아쉽다. 호프 자런의 여성으로서, 또 과학자로서의 삶과 성공은 충분히 인상적이고 대단한데 그 고난과 성공의 과정이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점은 무척이나 아쉽다. 호프 자런과 함께 그의 삶을 되짚어보다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를 보지 못한 느낌이다. 열심히 산을 오르다 산 정상에서의 전경을 미처 보지 못한 채 하산한 것 같달까. 그렇기에 호프 자런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성공을 거뒀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겐 다소 심심하게 다가올 수 있다. 유시민 작가 추천으로 이 책을 집었다면 너무 과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비법이다.

그럼에도 호프 자런의 ‘랩걸’ 마지막장을 덮는 느낌은 무척이나 좋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함께 달린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하다.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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