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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View] ‘아수라’, 그 안에 정우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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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헤럴드경제 문화팀=김재범 기자] 정우성이지만 정우성 답지는 않았다. 정우성은 그러면 안되는 정우성으로만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우성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놨다. 그래서 정우성 답지가 않았다. 아니 정우성이 아니었다. 영화 ‘아수라’ 속 정우성은 기존 개념을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그는 그저 멋지고 또 멋지며 멋진 판타지를 완성해 오던 마침표와 같던 존재였다. 그는 그렇게만 존재해 와야 했던 완벽한 결정체였다. 하지만 ‘아수라’ 속 정우성의 모습은 20년 넘게 굳건히 이어오던 무언가를 산산이 부셔 놨다. 악다구니를 쓰고 또 바닥까지 떨어질 정도로 비굴하고 비열하고 저열한 정우성이 돼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궁금했다. 무서웠다. 그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아수라’의 지옥스러움이.

영화 개봉 전 만난 정우성이다. 영화 마지막 남은 그의 얼굴은 ‘악’만 남아 있었다. 악다구니의 기운만 남았다. 그런 그의 모습은 사실 ‘낯설다’는 단어 자체로는 설명하기가 더 낯설었다. 밟히고 짓이겨진 정우성의 모습에서 악만 남아 있으니 그 감정이 무엇인지 조차 사실 감당하기도 예측하기도 힘들었다. 데뷔 이후 그의 패턴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이건 정우성이 분명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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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달랐나요? 하하하. 뭐 저 스스로가 무언가를 깨야지 혹은 깨야겠다고 다짐하고 들어간 것은 전혀 없었죠. 극중 ‘한도경’이란 인물이 어떨까. 그 인물의 말투와 감정과 표정은 어떤 이미지일까를 생각하고 접근한 결과물이에요. 어떤 의도와 생각을 갖고 접근한 이미지의 결과가 아니기에 더 그렇게 보여 지셨을 수도 있구요. 그래서 그 모습이 ‘한도경’ 그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영화 VIP시사회가 끝난 뒤 ‘아수라’를 본 여러 감독들이 입을 모아 그에게 건 낸 이구동성의 단 한 마디가 있었다. ‘정우성인데 정우성이 아닌 배우가 나와서 정말 놀랐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입했기에 정우성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시나리오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그래도 영화 속 한도경의 모습에서 정우성의 잔상이 100% 사라진 느낌은 아니었다. 지독할 만큼의 자존심은 정우성의 실제를 단 1%라도 느끼게 하기 위한 관객들에 대한 배려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세요?(웃음) 글쎄요.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라기 보단 수컷이란 느낌. 그 수컷이 사는 세상은 그냥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고, 그곳에서 거칠게 사는 수컷에게 남은 마지막 무엇이 있을 텐데. 무엇일까. 객기? 이게 여성분들은 좀 이해하기 힘드실 거예요. 남자들은 분명 아시겠지만. 쥐어 터지고 짓밟혀도 끝까지 모양 빠지지 않으려고 ‘별로 안 아파’ ‘쟤 주먹 별로던데’ ‘내가 참아 준거야’ 뭐 이런 느낌 있잖아요. 그러면서 그 사람이 시킨 건 또 다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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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정우성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아수라’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또 처음부터 자신에게 맞춘 듯 완벽하게 재단한 모습으로 임했다. 아니 임했을까. 사실 그건 아니다. 정우성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하지만 정작 시나리오를 읽은 뒤 출연 결정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고. ‘이해가 안됐다’ 딱 이 한 마디였다.

“정말 그랬어요. 어느 것 하나 이해가 안됐어요. 이런 형편없는 사람이 주인공인데 관객들이 재미있어 할까. 정말 궁금했죠. 아니 눈에 뻔히 보였어요. 이런 느와르 장르 속 남자 주인공에게 관객들은 당연히 무언가 하나를 바라게 되요. 당연하잖아요. 한도경이란 인물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정말 줏대 없는 모습으로 일관하고. 이걸 대체 관객들이 알아차리고 따라 오실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죠. 정말 이해 안됐어요. 그래도 파고 들었죠. 감독님 때문에요. 그 긴 시간을 영화계에 계셨고. 그 세월 속에서 뭔가를 분명히 찾아내셨기에 이 얘기가 나오신 거라 믿었죠.”

정우성은 그 이해 안되는 얘기를 ‘게임’이라고 표현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게임에 도전했기에 그 답이 나올 때까지 여러 가지 방식을 대입했다고.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알게 된 것은 어떤 감정이었단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남성적인 작품 속 주인공인 자신이 느껴야 할 감정의 실체는 ‘스트레스’였단다. 물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도 정우성 본인에겐 스트레스였단. 당연히 크기의 차이였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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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뭐 사실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죠. 첫 촬영 날 딱 느낀 감정이 ‘와 이 기분이 스트레스였구나’란 것이니까요. 40대의 남자들, 사회에서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남자들, 미래에 대한 꿈을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포기해야 한 그들. 선택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사는 그 나이대의 남자들. 참 불쌍하죠. 첫 촬영에서 그걸 알게 되고 바로 한도경 속으로 확 들어가지게 느껴졌죠. 전 보통 촬영 쉬는 동안에는 배역에서 잘 나와요. 그런데 이번에는 좀 안 그랬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그의 모습에 여러 스태프가 슬슬 피해 다녔다고 한다. 정우성이 아닌 ‘한도경’이란 인물이 돌아다니는 데 피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듯 했다. 영화 속 카체이싱 장면에선 촬영 도중 정우성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실제 상영 장면에선 배경 음악에 묻혀 버렸지만 정우성 아니 한도경의 욕설이 쉴새 없이 터졌다. 정우성의 실제 감정이었다고. 김성수 감독이 급기야 감정 자체를 시킬 정도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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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전 의외로 배역에 매몰되거나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에는 좀 달랐던 거 같아요. 전 잠버릇도 없거든요. 그런데 매니저가 내가 이를 갈고 잠꼬대를 하더래요. 아니 내가 이 가는 소리에 내가 깼다니까요(웃음). 다행히 바로 ‘더 킹’ 촬영 때문에 그 배역에 정신이 또 팔려버려서 그냥 저냥 잊혀 졌죠. 하지만 ‘아수라’ 후시 녹음 때 정말 다시 한도경을 보는 데 ‘정말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천하의 정우성이 쩔쩔 매던 현장이란 말이 믿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정말 힘들었고 힘들다는 느낌이 영화로도 절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사실 현장은 전혀 ‘아수라’스럽지 않았단다. 그냥 철없는 남자들이 모여 노는 놀이터 혹은 소풍의 현장 같았다고. 결코 모이기 쉽지 않은 배우들이 아니 남자들이 한 대 모였으니 접시가 아니라 술병 몇 트럭은 때려 부셔야 직성이 풀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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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정말 많이 먹었죠. 하하하. 감정적으로야 힘들었지만 사실 현장 자체는 너무 즐거웠죠. 오죽하면 지훈이는 그렇게 입에서 침이 튈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라며 제작발표회 현장에서도 난리를 쳤겠어요. 하하하. 뭐랄까요. 배우로서 지켜야 할 것만 지키면 되는 공간이었어요.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끝판을 느낀 경험? 워낙 연기로는 두 말하면 잔소리를 듣는 동료들과 했기에 각각이 배역에만 한 없이 몰입했던 현장이에요. 배우에게 그런 즐거움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어요.”

‘악인들이 판을 치는 악인들의 세상’이란 섬뜩한 카피가 남성들의 어떤 욕구를 자극하는 영화가 ‘아수라’다. 영화 속에서 사실 가장 당하고 가장 불쌍하고 가장 악으로 똘똘 뭉친 한도경을 연기한 정우성이다. 그의 눈에 비친 가장 나쁜 놈은 누구인가. 한 명만 꼽아 달라 부탁했다. 턱에 손을 괴고 정말 한 동안 생각에 잠긴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인데요? 김성수 감독이요(웃음). 배우들 모두가 다 그럴걸요. 하하하. 현장에서 감독님 별명이 김성배 시장이었어요(극중 황정민이 연기한 악인 박성배 시장을 빗댄 이름). ‘아수라’ 속 5명의 악인들을 보면 다 감독님 안에 있는 감정들이에요. 하하하. 최고 악당은 김성수 감독이에요. 하하하.”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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