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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난 적도 없는 트럼프에게 2000억 기부...이메일로 연락하는 꾀짜 ‘은둔 재벌’ [더 비저너리 티모시 멜론]
미국 공화당 개인 기부자 1위 재벌
과거 진보 단체 후원하는 재단만들어
1980년대부터 보수주의자로 변신
멜론(家)가 집안 상속자…취미는 기부
1981년 부지 견학 중인 미국 철도 재벌이자 공화당 개인 기부자 1위인 티모시 멜론. [AP 자료사진]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돈을 받은 사람 중에 그를 만난 사람은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진다.” (뉴욕타임스)

이번 대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에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다. 은둔의 재벌로 알려진 티모시 멜론이다. 그는 이번 대선 기간 트럼프 슈퍼팩(정치 후원단체)과 공화당에 1억6500만달러(약 2275억원)를 기부했다. ‘가장 트럼프를 지지하는 경제인’으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기부금 1억3200만달러(약 1837억원)로 멜론에 못 미친다. 뉴욕타임스는 “멜론은 정치인의 얼굴도 모르고 기부를 한다. 심지어 트럼프와 만나 본 적도 없고 특별한 요구사항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며 그를 ‘묻지마 기부자’로 표현했다.

맹렬한 공화당 추종자로 보이는 멜론은 원래 보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멜론 가문은 석유왕 록펠러 가문에 견줄 정도로 재력가지만 사교계에 잘 등장하지 않아 은둔의 재벌로 불린다.

티모시 멜론은 1966년 명문대인 예일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사켐 펀드’라는 재단을 세운다. 재단 임원에는 흑인 연구자 어니스트 오스본을 영입한다. 재단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미국을 괴롭히는 인종차별, 빈곤,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고, 소수 민족을 돕는다.’ 그는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린든 B. 존슨을 찍었으며,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로 불렀다.

몇 년 동안 재단을 운영하면서 멜론은 가난한 사업가에게 협력 지원 기금을 지원했고 공립학교를 다니는 소수 민족 학생들의 교육을 도왔다.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법조인 단체에는 3년 동안 15만달러라는 거액을 투척했다. 잘 알려지지 않는 단체에도 거액을 냈던 그였기에 1970년대 그의 활동은 여러 단체에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그는 “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말하며 사회사업을 접는다. 이후 그는 2014년 출판한 자서전에서 왜 사회사업에 환멸을 느꼈는지를 토로한다. 그는 “가족 붕괴, 범죄, 마약 중독이 있는 한 가난과의 전쟁은 비효율적이라고 확신했다”며 “성공하기 힘든 인간이 가지는 몇 가지 근본적인 속성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졸업한 예일대를 향해 “부의 재분배에 대해 진보적 가치를 가르치는 진보 사이비 과학 교육”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재단을 없앴다. 남은 수익금을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 씽크탱크인 ‘해리티지 재단’ 등에 모조리 기부해버렸다.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진보주의자 청년은 그렇게 ‘보수정당의 큰 손’ 티모시 멜론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2024년 그는 미국 대선에서 보수 정당 개인 기부자 1위가 됐다.

얼굴도 몰라, 기부 취지도 설명 안해…‘묻지마 공화당 기부’
27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연설하고 있다. 티모시 멜론은 2020년과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기부했다. [EPA]

전세계 갑부들은 정치 자금을 내면서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머스크 CEO는 트럼프 전 대통령 유세장에 떠들썩하게 등장했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5000만 달러를 기부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전세계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고, 빈곤을 줄이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후보를 지지한다”며 기부한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멜론은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내고도 특별한 요구 사항 없고, 정치 활동도 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고, 그에게 어떤 정책 제안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NYT에 따르면 멜론이 2020년, 2024년 미국 대선 기간에 낸 기부금은 알려진 금액만 2억2700만달러(약 3132억원)로, 공화당과 트럼프의 슈퍼팩에 나눠서 기부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트럼프에 낸 1억2500억달러를 포함해 총 1억6500만달러를 선뜻 내놨다. 2020년 대선 기간에는 트럼프에게 5000만 달러(약 689억원)를 기부했다.

NYT는 “멜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기부를 하면서 기부 목적을 밝히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들이 ‘그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가’에 가장 관심이 크다고 전했다.

멜론은 언론과의 접촉도 피하고 있다. NYT는 “그는 인터뷰 요청에도 답이 없다”며 “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세히 남긴 자료는 2014년(연도 확인)에 출판한 자서전과 법정 공방에서 드러난 그의 흔적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자서전과 재판 자료조차도 다소 뜬금없다는 평을 받는다. 멜론은 자서전을 ‘자신의 돈으로’ 직접 출판했는데, 특별한 사건 없이 발간됐기에 출판 초창기에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자서전에 “사회보장제도는 노예 제도의 부활”이라며 비난하고,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쓰면서 화제가 됐다. 회고록에서 그는 “흑인은 정부에 의존하는 시민들”이라며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의향이 없다”며 비하했다.

2014년 멜론은 한 온라인 채팅방에 등장해 기후 위기를 우려하는 과학자들을 ‘IS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며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에는 미국 코네티컷에 있는 자동차 수리점이 자신의 차 엔진 교체를 제대로 못했는데 7300달러(약 1000만원)를 냈다며 고소하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멜론의 행보처럼 그의 기부 방식도 독특하다. NYT에 따르면 그는 기부 의사를 사전에 밝히지 않고, 어떤 후보에게는 우편으로 수표를 보내기도 한다. WP는 공화당 관계자를 인용해 “2018년 공화당 하원의장이 멜론에게 기부금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기부자 모임에 그를 초대했으나 거절했다”며 “그는 매우 엉뚱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상위 1% 금수저 집안...할아버지 따라 철도 회사 운영=
티모시 멜론의 할아버지 앤드류 멜론(왼쪽). 공화당 개인 기부자 1위 티모시 멜론은 알려진 바가 없는 은둔 재벌이지만, 멜론(家)가는 미국 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명문가 집안이다. [미국 국립미술관 자료사진]

멜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멜론 가문은 미국 내에서 상당히 유명한 명문가다. 포브스는 멜론 가문이 “1910년대 미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록펠러 가문에 버금가는 집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은행 사업을 했던 멜론가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재벌이었다. 티모시 멜론의 할아버지인 앤드류 멜론은 미국 재무부 장관이었다. 1920년 미국 대공황 당시 정부 개입에 반대하다 비난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비리가 적발돼 자진 사퇴하긴 했지만 10년 동안 장관직을 유지했다.

멜론의 유년시절도 남달랐다. 1942년 태어난 멜론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벽이 있고, 깔끔한 정원을 가진’ 미국 버지니아 대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적었다. 그에게는 운전수뿐만 아니라 전용기까지 있었다.

멜론은 멜론가에서도 튀는 행보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NYT는 “과거 NYT 기사에 따르면 멜론은 도시공학과 컴퓨터공학 학위를 가진 조용한 예일대생으로 ‘가장 멜론가 사람답지’ 않은 인물로 묘사됐다”고 전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앞서 언급한 ‘사켐 펀드’를 비롯해 컴퓨터용 소프트웨어 판매 사업을 했다. 1977년에는 목재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할아버지를 따라 철도 사업을 시작한다.

멜론은 철도회사 인수를 위해 재산을 쏟아부었다. 먼저 자신이 살았던 마을 이름을 따 ‘길포드 교통 산업’을 만들었다. 이후 1981년부터 메인센트럴, 보스턴 앤드 메인 철도회사를 인수하고, 1984년에는 델라웨어 앤드 허드슨 철도를 인수한다. 부족한 자금은 멜론가가 보유한 멜론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든든한 철도회사를 소유한 그는 지역 철도 건설에서도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겼다. 철도회사 인수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탓에 멜론이 회사 비용을 대폭 줄여 수익을 내려 했기 때문이다. NYT에 따르면 멜론의 통제 하에 철도 건설 비용, 근로자 임금 삭감, 해고가 이뤄졌다.

그는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하자 철도를 포기하고 기관사도 절반 이상으로 줄였다. 처음에는 운영 효율화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보스턴 앤드 메인 철도는 각종 비용 절감으로 즉시 손익분기점을 달성했으며, 1984년에는 순이익 700만달러(약 96억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직원 해고와 사망 사고 등이 발생하면서 노조와 갈등을 빚게 됐다. 1986년부터 길포드 교통산업 직원들은 두 차례의 대규모 파업에 돌입했다. 멜론은 전국에서 직원을 뽑고 자신의 전용기를 활용해 인력이 부족한 곳으로 파견을 보내는 등 강경대응했다. 앤서니 해치 철도 산업 분석가는 NYT에 “그 회사는 19세기 회사 중 노조에 가장 강경 대응한 상징적인 곳”이라고 회상했다.

노조와 다투면서 그의 보수적인 정치 색깔도 점점 짙어졌다. 1984년 그는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로널드 레이건에게 표를 던졌다. 멜론은 자서전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야 자신이 온전하게 공화당을 지지하게 됐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은 정부가 최소한으로 개입할 때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레이건은 이해했다”며 “(나는) 젊은 시절 자유주의자였으나 이후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보수주의자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철도 회사를 운영하며 홍역을 치른 멜론은 1990년대에 팬암 항공사를 인수해 팬암 시스템즈로 바꾸고 항공 산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크게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업을 중단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9.11 테러사건 이후 항공 산업의 변화와 노조로 사업이 중단됐다”고 책임을 돌렸다. 이후 멜론은 할아버지 앤드루 멜론 재단의 이사로 재직하다가 2002년 사임하고 별다른 사업 활동은 하지 않고 있다.

실종 비행기 찾기에 100만달러…뜬금 기부도
미국 공화당 개인 기부자 1위인 티모시 멜론의 최근 사진. 멜론은 사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언론이나 각종 행사에 등장하지 않는 '은둔 재벌'이다. [엑스(X, 옛 트위터]

사업을 하면서도 그의 기부활동은 계속됐다. 다만 정치인에게 기부하기 시작한 역사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12년 전인 2012년까지는 정치인 기부보다는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비행기 찾기 등 관심사에 기부했다. 아멜리아 에어하트는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비행사다. 북아메리카를 최초로 횡단하는 등 여성 비행사로서 여러 최초 기록 등 업적을 남겼다.

에어하트는 1937년 세계일주 비행에 도전했다가 남태평양 인근 섬에서 실종됐다. 그의 실종은 항공업계에서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였고, 영화나 책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멜론은 2012년 3월 에어하트의 유해와 함께 실종된 비행기를 찾는 단체에 100만달러(약 13억원)를 기부했다. 해당 단체 소속인 릭 길레스피는 “낯선 사람이 이메일로 비행기 찾기를 위한 자금을 어떻게 내면 되느냐고 물어 깜짝 놀랐다”고 NYT에 당시 상황을 전했다. 멜론은 해당 단체가 낸 신문광고를 보고 그에게 연락했다.

멜론은 자신이 인수한 철도회사가 에어하트의 비행기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를 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에어하트와 내 회사의 연결 고리, 항공에 대한 흥미와 함께 미스테리 사건(에어하트 실종)이 해결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내 지원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길레스피는 “비행기를 찾는 여정에 합류한 멜론은 책을 읽으며 혼자 지냈다”며 “정치가 아닌 다른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는 유쾌했다”고 회상했다.

해당 단체는 에어하드의 비행기를 찾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멜론은 단체가 비행기 수색 과정에서 촬영한 동영상에 더욱 집착했다. 멜론은 단체 커뮤니티 게시판에 수백 개의 글을 썼고, 일부 글에는 “비행기 잔해와 (에어하트의) 시신을 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게시글에서 “에어하트가 질소 탱크와 연결된 호스에 둘러싸여 있으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다른 회원들의 문제 제기로 멜론이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자 그는 단체에 100만달러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멜론은 법의학자에게 15만달러를 쓸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자 했으나 판사는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며 그의 소송을 기각했다.

그렇게 각종 소송으로 몇 년을 보낸 그는 2018년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기부 방식도 이전처럼 다소 갑작스럽게 이뤄지는 경우가 잦았다. 2018년 멜론이 공화당 하원 후보를 지원하는 슈퍼팩 직원에게 전화를 하면서 그의 정치 기부는 시작됐다. 그는 전화를 끊은 후 다음날 해당 의원에게 1000만달러(약 137억원)를 기부했다. 1000만달러는 해당 의원이 받은 금액 중 가장 최고액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당 관계자를 인용해 “멜론의 모든 기부는 이메일로 이뤄졌다”며 “그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 않고, 만남도 거부한다”고 전했다.

2020년에는 일면식도 없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기부를 시작했고, 해리티지 재단에도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2022년에는 재선을 앞둔 조지아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에 550만달러(약 75억원)를 기부했다. 이민자를 차단하기 위해 국경 장벽 건설 기부금에도 5000만달러(약 689억원)를 기부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멜론은 2020년 블룸버그통신과 딱 한 번 자신의 기부 취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약속한 일을 했고, 약속한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며 “트럼프는 재임 시절 무역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 깨진 균형을 바로 잡았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정치 단체에 기부하는 이유를 “소득 공제가 잘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자신이 쓴 자서전 속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기부금의 출처도 제대로 밝혀진 바 없다. 다만 그가 받은 멜론가 상속액이 상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데이비드 캐너딘이 멜론 가문에 대해 쓴 책 ‘멜론’에서 앤드루 멜론은 자신의 손자 티머시 등에 2300만달러를 남겼다. 포브스는 1970년대 이미 그의 자산이 약 1억달러(약 1379억원)를 돌파했다고 했으며, 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해당 자산 가치는 5억달러(약 6894억원)이라고 전했다. 만약 사업으로 자신을 불렸을 경우 그의 자산 가치는 상당한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멜론은 억만장자, 재벌이라는 수식어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과거 포브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억만장자였던 적도 없고, 그렇게 될 일도 없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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