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인권센터에 전담 인력 배치하고 재원 지원해야”
30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대에서 열린 교내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시위. [서울여대 학회 ‘무소의 뿔’ 제공] |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서울여대에 성범죄자 교수 자리는 없다.’
지난 30일 서울 노원구 서울여자대학교 교정에는 성추행 의혹으로 감봉 3개월 징계 처분을 받은 독어독문학과 A 교수를 규탄하기 위해 약 150여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서울여대 인권센터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7월 A교수가 성희롱·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신고 내용을 접수, A 교수의 부적절한 행동이 성폭력(성희롱·성추행)에 해당된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성희롱·성폭력 재발방지 1:1 교육 이수 요구 조치를 포함해 A교수의 징계를 학교에 요구했다. 서울여대 측은 같은 해 9월 인사위원회에서 A교수에 대해 감봉 3개월 징계 처분했다.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학교의 공개사과, 피해자와 가해 교수의 분리 조치 등을 요구한 대자보를 붙여왔는데, A 교수는 대자보를 쓴 학생을 대상으로 명예훼손을 했다며 지난 10월 노원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A 교수는 대자보의 내용 중 ‘지속적 성추행’과 ‘위계를 이용한 성폭력’이 허위이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A교수 측 변호사는 “아직 고소 사건이 진행 중이라 결과가 나온 후에 말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지난 30일 교정에 다시 모인 이유 중 하나는 대학 인권센터의 소극적 대처가 꼽힌다. 피해학생은 인권센터 측의 대처가 실망스러웠다고 본지에 전했다. 피해학생은 “적어도 중징계에, 정직 혹은 해임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달랐다”고 실망감을 표했다. 심의위원회 위원으로는 전임교원, 직원, 학생, 외부전문가 중 위촉한다는 학내 인권센터 규정과 달리 위원으로 학생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또 인권센터 측에 가해자와의 분리조치를 요구했지만 ‘교수와 학생의 관계이기 때문에 분리가 완벽하게 이뤄질 수는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하며 “사실상 분리를 해주기 어렵다는 얘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교수님을 피해 다니는 것 밖에 없었다”고 했다.
대학 인권센터는 끊이지 않는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기구다. 2021년 개정된 고등교육법에 따라 2022년 3월부터 모든 대학은 인권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운영해야 한다. 하지만 인권센터가 징계 수위에 대해 결정을 내렸더라도 이는 권고에 그쳐 강제성이 없고, 인력난 등으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며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지난해 숭실대에서는 교수의 폭언 등으로 인해 대학원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교수는 “똑바로 해, 바보냐”, “너 때문에 다 망쳤어” 등 연수 기간 내내 자신의 조교인 대학원생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교수의 질책에 큰 부담을 느낀 해당 학생은 귀국한 지 사흘 만에 숨졌다. 당시 학내 인권위원회는 중징계를 의결해 징계위원회에 해당 교수를 회부했는데, 징계위원회는 경징계인 견책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서울대에서는 인권센터가 대학 본부에 경징계 처분을 요청하기까지 1년 3개월 가량 걸린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과 교수가 학생에게 “야동 한 번 같이 볼까”와 같이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볼을 꼬집고 쓰다듬는 등 6개월간 성희롱과 인권침해를 했다는 사건이 접수됐지만, 인권센터는 전문위원 퇴사 등을 이유로 조사를 차일피일 미뤄 결국 사건이 발생한 뒤 1년 뒤에야 결론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 고등교육법에 규정된 대학 인권센터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재원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교육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대학 인권센터의 전문성과 역량을 높이기 위해 전문기관을 통한 지원 체계를 마련하고 인권센터의 운영 현황을 공시해 정기적 실태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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