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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풍도 아니고…8시간 대기, 질문 겨우 2분 “이럴 거면 왜 불러요?” [비즈360]
기업인 군기 잡는 국감 언제까지…재계 피로↑
22대 국회 첫 국감 본격화…기업인 줄소환
대규모 증인·참고인 채택에 상임위별 중복 소환도
불러놓고 질의 없거나 ‘망신주기’ 국감 매년 반복
“일단 총수·대표이사 나와야” 압박에…기업 부담↑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시가 8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제공]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 8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A기업 대표는 오후 6시30분이 돼서야 처음이자 마지막 질의를 받았다. 오전 10시부터 국감장에서 대기한지 8시간 이상이 지난 시점이었다. 심지어 의원의 질의에 A대표가 직접 답변한 시간은 겨우 2분 가량에 불과했다. 그나마 A대표는 질의라도 받았지, 증인·참고인으로 소환된 기업인들이 하루 종일 국감장 뒤편에 ‘병풍’처럼 앉아만 있다가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 22대 국회 국정감사가 본격화하면서 산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올해 국감에도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참고인으로 소환되면서 ‘군기잡기’, ‘망신주기’식 국감이 되풀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대상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정호진 삼성전자 한국총괄부사장, 김영섭 KT 대표, 손재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동대표, 김승수 현대자동차 부사장(GSO), 최영범 KT스카이라이프 대표 등 기업인들이 줄줄이 증인대에 섰다. 앞서 과방위가 역대 최대 규모인 108명의 증인과 54명의 참고인을 채택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김경훈 구글코리아 대표,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 정교화 넷플릭스 코리아 정책법무총괄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인들은 지난 7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대상 국정감사에 이어 이틀 연속 국감장에 자리했다. 출석 의무가 없는 참고인으로 소환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장 등은 나오지 않았다.

8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호진 삼성전자 한국총괄부사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캡쳐]

같은 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가 진행한 중소벤처기업부 국감에서는 배달 애플리케이션 수수료 논란과 관련해 피터얀 반데피트 우아한형제들 대표, 김명규 쿠팡이츠 대표 등이 증인으로 나왔다. 산자위는 오는 14일에도 김영섭 KT대표를 증인으로, 오는 24일에는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을 증인으로, 홍정권 한화솔루션 큐셀부문 대표이사를 참고인으로 각각 소환한 상태다.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오는 25일 증인으로 불렀다.

앞서 산자위는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부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가, 국감 직전에 철회키도 했다. 지난 7일 국감에서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된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김병주 MBK파트너스 대표가 해외출장 등을 사유로 불출석했다.

8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영섭(왼쪽) KT 대표와 최영범 KT스카이라이프 대표가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캡쳐]

정무위원회는 오는 10일 금융위원회 대상 국감에 금융사 수장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석용 NH농협은행장, 정길호 OK저축은행 대표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오는 17일에는 김민철 두산그룹 사장(재무담당), 강동수 SK이노베이션 부사장(전략재무),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이사를, 오는 21일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몽원 HL그룹 회장, 스테판 드블레즈 르노코리아 대표 등을 각각 증인으로 소환했다.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우 오는 15일 이상균 HD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지난 7일 마티아스 바이틀 메르세데스-벤츠 사장, 전중선 포스코이앤씨 사장,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대표가 국감에 출석했다.

2024년도 국정감사 첫 날인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복도에 피감기관 공무원들이 답변준비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상섭 기자

일각에서는 국회의 이러한 대규모 기업인 증인·참고인 소환을 두고 ‘묻지마 소환’ 행태가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도 주요 기업인들을 불러다가 아예 아무런 질의를 하지 않거나, 질의를 하고도 답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질책만 하는 식의 ‘호통 국감’이 수차례 반복돼왔다.

특히, 올해는 22대 국회 들어 첫 국감인 만큼 자신의 존재감 알리고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여야 의원들의 기업인 소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KT, 구글, 애플 등 일부 기업 대표들의 경우 여러 곳의 상임위에 중복 소환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핵심 경영진들이 하루종일 국감에 불려가 있으니 그날은 제대로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 역시 “세부적인 현안에 대해 질의하더라도 일단 무조건 총수, 대표이사 등을 나오라고 하니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매년 ‘망신주기’식 국감이 반복되다보니 국감 시즌만 되면 증인·참고인에서 자사 경영진을 제외하기 위한 기업들의 치열한 로비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반드시 출석해야 한다. 만약 부득이한 사유로 출석하지 못할 경우 출석요구일 3일 전까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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