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욕타임즈는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에서 우리나라 인구 감소 속도가 흑사병 이후 14세기 유럽보다 빠를 수 있다는 충격적인 경고를 던졌다. 인구 감소가 심화로 인한 과학기술 분야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부족은 기술 혁신의 둔화를 초래하고, 국가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위기에 선제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이다. 2000년 이후 미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중 약 40%가 이민자 출신이며, 유니콘 기업의 절반 이상이 이민자에 의해 설립되었다. 최근에는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유학생을 경쟁국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서 외국인 졸업생의 비자 절차를 간소화하는 법안까지 발의되었다.
중국 역시 해외 과학기술 인력을 대거 유치하여 자국의 연구개발 역량을 빠르게 강화하며 단기간 내에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2008년에 시작된 천인계획(千人 )은 전 세계의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연봉과 연구비 지원, 주택 제공, 가족 정착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과거 대덕연구단지는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의 중심지였으나, 이제는 소위 판교 라인이라는 말처럼 인력수급의 남방한계선이 수도권 인근으로 북상했다. 더욱이 많은 국내 과학기술 인력들이 더 나은 연구 환경과 기회를 찾아 미국 등 선진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에 등록한 회원 수만도 3만 명이라고 하니 우수 인재의 확보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필자는 국내 인력만으로는 충분한 인재 확보가 불가능하다면, 해외 과학기술 인력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외 인력은 국내 연구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식을 도입하여 국내 연구자들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글로벌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3년 말 기준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에 근무하는 외국인 연구자는 785명이다. 이 중 학생연구원과 인턴을 제외하면 266명으로, 전체 연구직의 2.5%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외국인 연구자 비율은 20~30%,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는 약 20% 수준과 비교해 이러한 격차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7월 법무부가 과학기술 분야의 우수 인재 유치를 위해 연구 유학생 및 연구원 비자 대상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국내 인재풀의 한계를 고려할 때, 해외 인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단순히 외국인 인재의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연구하고 기여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하고, 정주 여건과 국가연구개발제도 개선 등을 통해 매력적인 연구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해외 인력을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들 인재에 대한 투자는 곧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해외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선택하고 잘 적응하여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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