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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장고냐, 스크린도어냐” 한국 온 ‘색면추상 거장’ 로스코…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 [요즘 전시]
한국 전시와 함께 아들이 낸 신간도 출간
겹겹이 보이는 색면을 보며 ‘감정의 동요’
‘단색화 대가’ 이우환의 선택…의미 있어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 갤러리 서울]
방한한 마크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어두운 전시장에서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 홀로 서면 ‘미지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무언의 손짓을 느끼게 된다. 그의 거대한 색면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내 안의 감각을 깨우는 일종의 ‘문턱’이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이 음악과 시만큼이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길 바랐다. 20여 년간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던 그가 마침내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해방시킨 결정적인 이유다. 그렇게 여러 층으로 겹쳐진 색이 넘나들며 요동치고, 관계가 먼 두 색의 병치가 불협화음을 만들어낸다.

“아버지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솔직히 이를 자랑스러워했다.”

로스코의 아들인 크리스토퍼는 신간 ‘마크 로스코, 내면으로부터’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유독 많은데 여기서 눈물은 슬픔을 뜻하지 않는다. 내면에서 유의미한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감동에 가까운 표현이다.

(왼쪽부터) 마크 로스코의 아들 크리스토퍼와 딸 케이트, 아니 글림처 페이스 갤러리 창립자. 이정아 기자

색면 추상의 대가로 명성이 높은 로스코의 작품이 한국에 왔다. 서울 용산구 페이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1950~1960년대 작품 6점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Green, White, Yellow on Yellow’(1951) 1점을 제외하면 로스코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10여 년간 그린 검정과 빨강 위주의 어두운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의 단색화 대가 이우환이 직접 고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전시장에는 이우환의 신작 ‘Response’(2023)을 포함해 5점의 작품도 내걸렸다.

전시장에서 만난 로스코의 딸 케이트는 “아버지의 작품에 둘러싸여 살았던 기억이 있다”며 “한 사람으로서 아버지는 상당히 관대하고 많은 것을 베푸는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크리스토퍼는 “아버지의 예술에 유머라곤 없다”며 “(그런데) 종종 터무니없는 말로 불편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사람이었다”라고 전했다. 로스코의 회화는 한결같이 심각하고 진지해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살펴보면, 그가 추구한 가장 높은 수준의 유머인 ‘아이러니’가 작품의 재료로도 쓰였다는 게 크리스토퍼의 해석이다.

마크 로스코 전시 전경. [페이스 갤러리 서울]

크리스토퍼는 아버지의 모호하고 불분명한 그림을 저마다 알아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상으로 바꿔 인식하려는 인간의 심리적 욕구를 흥미롭게 관찰했다. 대학에서 사귄 여자친구가 “크고 부드러운 냉장고”라고 묘사하거나, 처음 본 아저씨 세 명이 “스크린도어 같다”고 말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시받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며 “단순한 이야기나 복잡하지 않은 이미지조차도 항상 사회적 단서나 맥락에 둘러싸여, 미묘한 방식으로 모종의 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로스코가 그린 작품의 본질은 공백이다. 로스코는 예술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넓고 심오한 색채의 층은 이런 그의 신념을 드러내는 시각적 언어다. 크리스토퍼는 “지식으로는 로스코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다. 지식이 당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영원함을 일깨우는 대화를 나누려면 로스코어(語)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전했다.

이우환 전시 전경. [페이스 갤러리 서울]

그래서 전시장에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두 추상 대가의 작품이 만났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감상 요소다.

다만 로스코의 작품은 2층, 이우환의 작품은 3층에 각각 전시됐다. 한 공간에서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작품이 공명하는 순간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마크 글림처 페이스 대표는 “로스코의 많은 작품이 대여 상태에 있기 때문에 대표하는 작품 16점을 추려서 이우환에게 제시했다”며 “나중에 그에게 로스코의 작품을 최종 선정한 배경을 물었는데 ‘전시장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감정이 작품을 고른 이유’라는 한 마디만 해줬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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