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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일차의료 정상화, 의료개혁의 초석

의료 개혁을 위한 대장정이 진행 중이다. 이견도 있지만, 더이상 의료체계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여망은 분명한 것 같다. 의사를 늘리고, 기관 간 협력적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며, 필수 의료분야 수가를 올리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대형병원을 전문의와 중증 진료 중심병원으로 구조 조정하고, 전공의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수련체계 개선안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진한 분야가 있다. 바로 일차의료체계 정립이다. 일차의료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질환을 가장 먼저 진료하고, 필요 시 상급 단계로 안내하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하며 포괄성, 지속성, 책임성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질환 치료와 건강관리를 위한 통합의학의 한 분야인 ‘포괄일차의료’ 전문의사와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

일차의료 의사 1명이 늘면 국민 사망률 0.11%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 많은 나라에서 전체의 30% 이상을 포괄일차의료 전문의사로 육성한다. 우리도 1980년 ‘가정의학과’를 도입했지만, 아직 주도적 역할을 못 하고 개별과목의 전문의가 개원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전문의의 43.2%가 의원급에서 일하고, 그 비중이 해마다 늘고 있다. 이 중 포괄일차의료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가정의학·내·소아청소년과를 다 모아도 전체의 23.6%에 불과하다. 즉, 의사의 절반이 개원하지만, 막상 일차의료의 전문가는 그 중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개별과목 전문의는 사회적 환경까지 포함한 통합적 일차의료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환자는 종합적 치료의 안내를 받기 어렵다. 더욱이 전문의의 개원 쏠림은 필수·중증 분야 의사 부족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신규의사가 비급여 진료에 의존해 쉽게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개원의 유혹에 노출된다는 점이다. 면허만 있으면 개업과 진료의 영역이 무한 허용되는 현 체계에서 고된 전문의 수련 과정은 매력적이지 않다. 막상 일차의료 현장에 진입해도 적절한 교육 없이 양질의 일차진료 수행은 어렵다. 2024년 통계를 보면 비전문의(일반의) 개원이 전체의 27%나 차지한다. 이들 대부분은 미용성형 등 접근이 쉬운 비급여 진료 분야에 종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의대졸업만으로 개원할 수 있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는 거의 없다. 일본은 의대 졸업 후 2년의 수련을 의무화했고 미국과 캐나다, 영국 또한 의대에서 학생 인턴(sub-intern) 제도 등 임상 훈련과정을 갖췄으면서도 졸업 후 1년 이상의 일차의료 훈련을 받아야 개원할 수 있다.

최근 의대 졸업 후 일정한 수련을 거치도록 하는 ‘진료면허’도 이슈화됐다. 이것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러 제도가 함께 추진돼야 한다. 일차의료 전문의사가 지역 주민 곁에서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주치의제도 등이 있어야 실효성을 기할 수 있다.

그동안 제대로 시도하지 못했던 한국 의료체계의 정상화를 위해 어려운 과정이 진행 중이다. 현재의 어려움은 국민의 건강복지를 위해 한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번만큼은 꼭 좋은 제도를 만들어 실현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모을 때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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