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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 “20년 사니까 드디어 재개발”…영등포 쪽방촌 주민들 연말부터 집 옮긴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 만나보니
재개발 앞둬…연말부터 주민들 이주
수십년 그대로인 주거환경 개선 절실
주민들 “진행상황 상세히 알고 싶어”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의 2022년 당시 모습. 그해 9월 이 지역 공공주택지구 사업시행을 위한 지구계획이 승인·고시됐다. [연합]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재개발 한다고 한 지가 언젠데, 우리 사진을 왜 찍어요.”

8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고가도로를 끼고 있는 영등포역 쪽방촌. 한 주민이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느닷없이 고함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주민 최모(70) 씨가 대신 사과했다. “이곳 사람들이 재개발 이야기에 조금 예민해. 좁은 쪽방에 부대끼며 살다보니까 작은 일에도 화 내는 사람이 있으니 이해해요.”

영등포역과 고가도로 사이에 자리잡은 영등포 쪽방촌에는 4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현재 영등포 공공주택지구로 묶여 정비사업을 앞뒀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 영등포구청이 공동사업시행자로 사업을 추진한다. 기존에 여기 살던 세입자들도 나중에 새 주택에 입주할 수 있다. 사업 기간 중 주민들이 거주할 모듈러 주택 형태의 임시 이주단지(96호)가 영등포역 고가도로 밑에 조성된다.

주민 최 씨는 이곳 쪽방에서 2009년부터 살고 있다. 그는 “재개발 이야기가 박원순 시장 때부터 있었고 개발한다는 말이 계속 있었는데 이제 진짜 하는가 싶다”면서 “결국 쪽방 정비가 우리 세입자도 더 좋은 환경에서 살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되물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쪽방촌 골목을 오래 지킨 주민들은 정비사업에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보내고 있다. 사업 주체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민들의 의견에 더 귀를 열길 바란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최 씨는 “(주민 대상) 설문조사를 하긴 했는데 설문조사만 할게 아니라, 공청회를 가져서 우리 주민들 이야기를 좀 더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9일 찾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 거리 풍경 [김도윤 기자]

영등포 쪽방촌에서 작은 점포를 운영하며 25년째 살고 있다는 김모 씨는 “보상금 주고 임시 주거시설도 마련한다니까 좋은 뜻이겠지만 (주민들이) 기다리다 많이 지친 것 같다”며 “최근에 설문조사를 했는데 임시주택으로 갈 것인지,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할 수 있는지, 임시 주택에 안 들어가면 그 이유가 뭔지를 묻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 이런 느낌인데 재개발 진행 상황을 좀 더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쪽방촌 재정비 계획은 10여 년 전부터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하지만 정작 되는 일은 없었고 시간만 흘러왔다. 그 사이 이 일대에 소소한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이따금 있었지만, 근본적인 주거 환경은 그대로 수십년을 보내며 조용히 낡아가고 있다.

이곳 쪽방 대부분은 크기가 2평(6.6㎡) 남짓. 주민의 허락을 받고 한 살림방에 들어가니 통풍이 안되는 까닭에 5분도 안 돼 온몸에 땀이 흘렀다. 노후한 건물 외벽에 군데군데 금이 갈라져 있었다. 좁은 골목 역시 바람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습기와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가 났다.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과 분리수거장은 부실한 관리를 의미하듯 악취가 가득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을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한 주민은 “더우면 어쩔거여. 그냥 한번 더 씻고 추우면 껴입고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대답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 내부 [김도윤 기자]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임시 이주단지(96호 규모 모듈러 주택)가 들어설 영등포 고가 하부 [김도윤 기자]

20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이모(68) 씨는 “5년 전쯤 이 동네가 리모델링을 한 적이 있는데 대부분 공용을 쓰다보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생활이 힘들었다”며 “아침에 일어나면 세탁기가 고장이고 수도꼭지가 빠져서 고치는데 며칠이 걸렸다” 며 “(이주단지에는) 내 살림은 내가 관리하며 살 수 있게 개인 세탁기나 냉장고 같이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기구들을 들고 갈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 만났던 최씨는 “(임시로 거주할 주거시설엔) 가구마다 들어가는 기준이 뭔지 내부에 어떤 게 갖춰져 있는지 들은 얘기가 하나도 없다”면서 “여기 분들 중엔 다리 아프신 분들도 있고 노인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은 1층에 배정하고 화장실 가기도 좀 쉽도록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를 들고 있던 한 주민은 임시 거주단지가 생길 고가도로를 가리키며 “이번 여름 폭염에 고생 많았다. 더위에 죽은 사람도 몇 분 있다”며 “이 한복판에 컨테이너가 들어선다는데 애들이랑 잘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영등포 쪽방촌 정비사업은 앞으로 예정된 서울역, 대전역 쪽방촌 재개발 과정에서 참고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희망하는 쪽방촌 거주민들은 재개발 후에 모두 이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쪽방 상담소를 통해 자료를 받아서 이주민 규모를 확정하려고 한다”며 “조만간 공공기관 관계자 회의 때 논의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kimdoy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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