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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억대 이상’ 고가 작품 드물어…한국 작가 인기는 ‘후끈’
아트페어 ‘프리즈·키아프 서울’ 개막
쿠사마 호박 작품도 주인 찾지 못해
“국내 미술시장에 낀 거품 빠지는 중”
키아프, 작품 수준 향상 ‘패싱’ 사라져
프리즈 서울 개막일인 이달 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프리즈는 ‘아트바젤’과 세계 아트페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기업이다. 올해 프리즈 서울 전시에는 국내외 112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임세준 기자

120억원 vs 33억원.

세계 정상급 갤러리로 꼽히는 하우저앤워스가 올해 3월 열린 ‘아트바젤 홍콩’과 이달 4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 VIP 프리뷰(사전관람) 첫날 판매한 최고가 작품가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회화 ‘붉은 신의 호박’(2015)을 77억원에 판매했던 데이비드 즈워너는 올해도 쿠사마의 호박 조각(2015·64억원)과 호박 회화(2013·107억원)를 내놨지만 아직까지 주인을 찾지 못한 상태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하진 않지만 때로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올해로 3년 차인 프리즈 서울에 출품된 작품 가격대는 전년에 비해 확실히 낮아졌다. 판매 실적도 예년보다 저조했다. 10억원 이상 고가 작품의 판매 건수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희소해졌다.

다만 ‘서울’로 대표되는 한국 미술시장이 질적으로 성숙해지는 변곡점에 있다는 것이 미술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평이다. 시장의 역동성은 탄탄한 미술 생태계에서 오는데 정부의 지원과 함께 작가·컬렉터·학계·미술관·갤러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량을 쌓으며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올해에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함께 개막하면서 ‘서울아트위크’에 대한 해외 미술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더욱 한국으로 쏠렸다.

5일 미술계 등에 따르면, 올해 프리즈 서울에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세계적 대가의 걸작은 좀처럼 판매되지 않았다. 로빌란트 보에나가 전면에 내건 앤디 워홀의 ‘신화(1981·67억원)’, 가나아트가 소개한 김환기의 ‘새벽별(1964·65억원)’, 스프루스 마거스가 출품한 조지 콘도의 ‘자화상(2024·26억원)’등은 지금도 구매자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프리즈 서울 첫날 주로 판매된 미술품은 주로 억대 작품이었다. 하우저앤워스가 호암미술관이 첫 생존작가 개인전으로 초대한 니콜라스 파티의 회화 ‘Portrait with Curtains(2021)’를 아시아 개인 소장가에게 33억원에 판매하면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였다. 타데우스 로팍은 바젤리츠 회화를 15억원에 판매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화이트큐브가 선보인 안토니 곰리의 조각 ‘TANLE II(2023)’은 9억원에, 가브리엘 오르즈코의 ‘Plant Journal 3(2022)’는 3억3500만원에 주인을 만났다. 글래드스톤이 각 2억7000만원에 내놓은 아니카 이의 조각 2점도 작품 구매자를 찾았다.

고가 작품의 판매 실적만 보면 사실 예년에 비해 저조하지만, 마냥 나쁘지 만은 않다는 것이 미술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최근 1~2년 사이 국내 미술시장에 낀 거품이 급속도로 빠지고 있고, 이와 함께 국내 컬렉터 사이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심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이 글로벌 스타 작가들의 작품만 거래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내려와 한국 작가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는, 이른바 ‘과도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국내외 미술관 개인전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수억원대에 팔리면서 인기를 끌었다.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PKM이 유영국의 회화 작품을 20억원에 판매했으며, 타데우스 로팍은 이강소의 회화를 2억5000만원에 판매했다. 리만머핀 역시 이불 연작을 각 2억원대에 판매했다. 이와 함께 프리즈 런던 마스터스에 참가하는 김윤신의 회화 5점과 내년 영국 테이트모던에서 개인전이 예정된 서도호의 신작 4점도 프리즈 서울 개막과 함께 판매했다. 조현화랑은 이배의 회화 10점(각 7500만원)과 박서보의 색채 묘법 2점(각 1억700만원)을 완판했다. 가나아트는 최종태의 1960년대 조각을 1억원에, 국제갤러리는 양혜규, 문성식, 이희준 등의 작품을 판매했다.

이렇다 보니 참가 갤러리들 역시 부스 전략을 바꾼 곳이 많았다. 부스 구성을 한국 미술을 이해하거나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맥락을 바꾼 것이다. 예컨대 갤러리현대는 10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전준호의 솔로 부스를 마련했다. 학고재는 김환기의 ‘피난열차(1951)’등 작품 앞에 신상호의 달항아리 백자를 배치해 한국 미술이 생소한 해외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피난열차’는 비판매 미술품이지만 전시 기획을 위해 특별히 선보였다는 것이 우찬규 학고재 대표의 설명이다.

반면 올해로 23회를 맞은 국내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는 출품작 수준이 예년보다 높아졌다. 우선 300호, 100호 등 국내 근현대 작가들의 대작이 시원시원하게 벽에 붙었다. 국제갤러리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한 김윤신의 작품만으로 솔로 부스를 꾸몄다. 덕분에 프리즈 서울만 방문하고 키아프 서울을 ‘패싱’하던 컬렉터들이 키아프 서울도 함께 찾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날 행사장에는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김웅기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을 비롯해 배우 소유진, 방송인 노홍철, 가수 로이킴 등이 방문했다. 프리즈 서울은 이달 7일, 키아프 서울은 이달 8일까지 계속된다. 이정아 기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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