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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의 멘토’ 바바얀 “선율은 궁극의 미스터리…선율의 본질 이야기할 것” [인터뷰]
세르게이 바바얀 리사이틀
오는 30일ㆍ서울 예술의전당
세르게이 바바얀 [예술의전당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피아니스트는 인생에서 여러 차례의 어려운 순간을 겪게 돼요. 첫 기억은 열한 살 정도였어요. 피아노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아르메니아 출신 세르게이 바바얀(63)은 ‘피아니스트들의 멘토’로 불린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자 다닐 트리포노프, 부소니 국제 콩쿠르 준우승자 김도현, 부소니 우승자 고려인 피아니스트 아르세니 문….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차세대 피아니스트들이 꼽는 ‘인생을 바꾼 스승‘이다. 그런 그도 음악가로의 긴 여정이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삶을 뒤흔드는 방황의 시기는 시시각각 찾아온다. 그 때마다 바바얀을 다잡은 것은 음악과 스승이었다. 그는 어떠한 고통이나 난관을 마주해도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한 강렬한 ‘음악적 경험’의 순간이 있었다고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들려줬다.

바바얀은 “그 무렵 아버지가 주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 음반을 듣고 완전히 매료돼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았다“며 ”내겐 여전히 너무 어려운 곡이지만 (당시엔) 악보를 집어삼킬 듯한 기세였다”고 돌아봤다.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고 연습에, 연습, 또 연습을 하는 것은 그의 ‘일상 루틴’이기도 하다. 라흐마니노프는 이후 바바얀의 음악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가 됐다. 2020년엔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독주곡집을, 지난 3월엔 제자에서 최고의 파트너가 된 다닐 트리포노프와 ‘라흐마니노프 포 투’를 발매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바바얀과 그의 스승들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제 스승인 레프 블라센코와 베라 고르노스타예바를 포함해 다른 분들도 이 같은 강렬한 경험을 하셨어요. 고르노스타예바는 젊은 시절 시베리아로 피난을 갔는데, 늦은 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죠. 라흐마니노프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미국 라디오 중계를 듣는 소리였어요. 베라는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 30분 동안 차가운 바닥에 서서 음악을 들었다고 해요. 그 작품에 완전히 빠진 거였죠. 다음 날 감기에 걸렸고 그 이후로 만성적인 건강 문제로 고생했지만, 협주곡 2번 덕분에 베라 고르노스타예바는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스승의 경험을 들려주며 바바얀은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우리에게 인생은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새로운 기회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며 “라흐마니노프 역시 그렇게 자신의 삶을 되찾았다”고 했다.

바바얀은 ‘러시안 피아니즘’의 계승자다. 그는 삶에서 만나온 모든 스승들이 자신의 ‘멘토’였다고 말한다. 첫 스승인 루이자 마르카리안을 시작으로 게오르기 사라제프, 고르노스타예바, 플레트뇨프, 레프 나우모프, 블라디미르 비아르도까지, 그는 “모든 스승에게 피아노로 말하는 방식을 배웠다”고 했다.

“‘интонировать(인따니라바띠)’는 러시아어로 음정(intonation)을 뜻하는 매우 중요한 단어예요. 각 음에는 음정, 컬러, 감정, 의미가 있어야 하죠. 이 점에서 가장 까다로운 작곡가는 쇼팽일 거예요. 쇼팽은 첫 음부터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전적인 몰입을 요구하니까요.”

세르게이 바바얀 [예술의전당 제공]

바바얀의 스승인 레프 나우모프(1925~2005), 베라 고르노스타예바(1929~2015)는 ‘러시안 피아니즘’의 창시자인 겐리히 네이가우스의 직계 제자다. 그는 “베라 고르노스타예바는 쇼팽의 작품을 만나게 해줬고, 내가 깨닫기도 전에 먼저 내게 완벽하게 맞는 곡을 제안해 줬다”며 “사람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재능이 있는 분”이라고 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대를 잇는다. 그의 제자인 김도현 역시 앞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당시 “부소니 콩쿠르 이후 다양한 연주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바얀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고 배운 곡들로 무대에 섰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바얀 역시 자신의 스승들처럼 ‘사람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재능이 있는 멘토’였다. 그는 스승에게서 받은 공부의 경험을 제자에게 그대로 돌려줬다.

바바얀은 “인생에서 많은 음악가들을 만나며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가장 큰 변곡점은 모스크바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던 때였다.

“소련을 떠난 것은 저에게 해방과도 같았어요. 전 항상 소련에 대해 상반된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교육을 받고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게 해 준 곳이자, 정말 훌륭한 스승님들을 만난 곳이었죠.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일들 때문에 굉장히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어요. 1989년 뉴욕으로 향했던 그 날, 비행기가 이륙하자 저는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자유를 느낀 순간이었어요.”

헌신적인 교육자이자 깊이 있는 통찰을 들려주는 음악가인 바바얀은 오는 30일 한국을 찾는다. 올해로 벌써 2년 연속이다. 지난해엔 마티아스 괴르네와 함께 통영, 대구, 평창을 찾아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를 연주했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잊을 수 없는 경험이자, 내 커리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라고 했다.

그날의 음악 중 일부는 이번 한국 공연에서 ‘피아노 노래’로 되살아난다. 바바얀은 예술의전당의 ‘2024 SAC 월드스타시리즈 – 피아노 스페셜’의 첫 주인공이다. 공연의 주제는 ‘송스(SONGS)’다. 슈베르트에서 현대곡, 재즈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작곡가 20여 명의 아름다운 선율을 34곡이나 연주한다. 바바얀은 “내게 리사이틀은 음악을 통한 스토리텔링”이라며 “한 곡에서 다음 곡으로 진행하면서 연결되는 의미를 갖는 다양한 조성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여정으로 안내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해요. ‘선율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좋은 선율은 배운다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고 나는 것이죠. 작곡법 연구에서 선율은 여전히 궁극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요. 이번 여정은 위대한 선율의 요소가 무엇인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대 민요와 가곡들이 원곡에 가사가 붙은 형태, 그리고 가사 없이 악기를 위한 변주곡 형태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멋진 시간이 될 겁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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