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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화의 괴담 배상열 ‘한국의 페르마’를 아시나요?
18세기 천재 수학-천문학자
영남학파 실용학문 지평 개척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18세기 봉화에 ‘한국의 페르마’로 불릴만한 천재 수학자 겸 천문학자가 활약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형이상학에 머무르던 영남학파의 학문적 지평을 이학, 자연과학 크게 확장한 주역이다.

봉화의 괴담 배상열 선생 7대손이 국학진흥원에 보관된 혼천의 선기옥형을 설명하고 있다. [봉화군 제공]

괴담(槐潭) 배상열(1759~1789)은 봉화에서 태어나, 15세 전후에 독학으로 깨우쳐 천문과 지리, 역학과 산학에 뛰어났고, 23세 때 대산 이상정의 문하에 나아가 배운 뒤로는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집안 좋은 다산 정약용 보다 세 살 위로, 둘 다 문리양도(文理兩道) 모든 학문에 능했다. 그의 면모가 국민 앞에 베일을 벗는다.

한국국학진흥원과 봉화군은 오는 21일 오후 2시에 봉화군청소년센터 대강당에서 ‘괴담 배상열의 학문과 사상’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봉화가 낳은 천재 학자 괴담 배상열의 천문과 지리, 역학과 산학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괴담이 저술한 수학책 ‘서계쇄록’

30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그는 도학육도(道學六圖), 서계쇄록(書計鎖錄), 사서의의(四書疑義), 성리찬요(性理纂要), 사서찬요(四書纂要), 계몽도해(啓蒙圖解), 심경품목(心經稟目), 을수제요(乙數提要)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특히 그는 16세에 천문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선기옥형)를 만든 이후, 21세와 27세에 다시 제작하고 수정하는 등 천문 분야에서 놀라운 천재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28세 때 편찬한 서계쇄록 하편은 수론(數論)에서 시작하여 각종 산법算法에 이르기까지 두루 아우른 본격적인 산서(算書)로, 배상열의 수리 사상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있다.

앞선 시기에 나온 최석정의 구수략(九數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구체적인 산법과 운용의 측면에서 형이상학적 색채를 철저히 탈피하였다는 점에서, 18세기 말 조선 지식인들의 변화된 수리 사상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관련 분야의 전문 연구자 5명이 참석하여 괴담 배상열의 생애와 교유관계는 물론, 성리학과 역학, 천문 및 수리 사상에 대해 총체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먼저 박권수 교수(충북대)는 배상열의 생애와 교유관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그의 상수학적 우주론 연구를 전체적으로 소개한다.

이영호 교수(성균관대)는 배상열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완성한 도학육도를 통해 그의 생애 후반기에 학문의 주축이었던 주자학적 사유를 고찰한다.

엄연석 소장(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은 배상열의 역학과 성리학을 아우르는 도상학이 조선 후기 역학과 성리학에서 지니는 특징과 지위를 규명한다.

김상혁 박사(한국천문연구원)는 조선의 혼천의 제작 역사를 개략적으로 살피고, 그 가운데 적도환(赤道環)에 28수의 별자리를 그려 넣은 배상열의 혼천의만이 지닌 특징을 밝힌다.

강민정 연구원(한국고전번역원)은 18세기 초 최석정의 구수략과 비교 분석하여 서계쇄록의 수리 사상이 지닌 특징을 살펴본다.

‘서계쇄록’ 표지

18세기 영남학파 지식인들은 대체로 경세적·실용적인 학문보다는 형이상학적인 성리학과 번쇄한 예학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배상열이 추구한 학문은 18세기 사상사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영남학파 학문의 심화와 외연 확대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지역에 흩어져 훼손·멸실 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 수집하여 현재 64만여 점에 달하는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이들 자료는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기에 소중하다. 그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해마다 각 지역의 인물을 발굴하여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를 개최하는 한편, 기탁 문중 및 지자체와 함께 다양한 연구 및 학술 행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지역의 정체성 제고와 인문환경 발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봉화가 배출한 괴담 배상열 선생은 천문과학 분야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천재적 역량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성리학에도 깊은 이해를 보여 우리 지역에서 특출한 학문적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앞으로도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역사 속 인물들을 찾아내 연구와 전시, 학술대회 등을 통해 지역사회가 다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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