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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저희 역사를 썼어요!”…임시현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 [파리2024]
[고교 코치가 기억하는 임시현]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대표팀 임시현이 23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양궁경기장에서 훈련을 갖고 있다. 2024.7.23/파리=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박준규 기자, 차민주·정호원 수습기자] 한국의 여자 양궁 단체전 10번째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고교 시절 내내 임시현과 동고동락한 민수정 서울체육고 코치는 그 누구보다 감격한 사람이었다. “축하한다♡”고 적은 메시지를 프랑스로 날렸다. 3시간 뒤 제자의 답장이 왔다.

진짜 바람이 너무 헷갈려서 애먹었는데 혼자가 아니라 셋이라 가능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희 역사를 썼어요!!

올림픽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를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낸 대표팀 에이스 임시현. 고교 시절 3년을 곁에서 지도했던 민 코치는 그를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는 선수, 그리고 무척 밝은 소녀로 기억하고 있다.

“(선수에게) 말하기 무서울 정도였어요. 체력이 좀 부족한 거 같다고 이야기 하면 ‘선생님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하면서 물어봐요. 그래서 좀 방향을 잡아주면 그걸 꾸준히 해 나가는 친구였죠.”

임시현은 시간을 쪼개 독하게 연습했다. 정규 훈련 중간에 30분 정도 쉴 짬이 생기면 활은 놓고서라도 헬스장에서 근력운동을 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선 스스로 휴대전화와 단절했다. 본가가 강릉인 까닭에, 주말에 텅빈 기숙사를 혼자 지키곤 했다. 그럴 땐 훈련장을 오롯이 혼자 차지하며 과녁에 활을 쐈다. 가끔 시합 일정에 여유가 있을 때 강릉 본가에 다녀왔다. 임시현에겐 가끔 집에 다녀오는 게 열심히 훈련한 보상 같은 거였다고 한다.

임시현이 고등학교 3학년에 작성한 목표달성표. 정가운데에 '올림픽 금메달'이라고 적어놨다. [민수정 코치 제공]

그래도 정서적으로 예민한 10대 시절에 외롭진 않았을까. 민 코치도 염려했던 부분이다. 그래서 기꺼이 ‘제 2의 집’이 되기로 했다.

“시현이에게 집은 서울 아이들과 달리 부럽기도 하고 그리운 존재여서 제가 ‘서울에 집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집에 데려가서 밥을 해 먹였고요. 제 신랑이 LG트윈스 트레이너 파트에 있는데 집에서 보강 운동도 같이 했어요. 덕분에 제가 재미있게 지냈죠.”

이런 일이 있었다. 임시현이 학교에서 외출하고 늦게 돌아왔다. 민 코치가 ‘왜 이렇게 늦었어’ 꾸중했더니 “선생님 강릉은 저녁 7시만 돼도 뭐 없는데요. 서울은 너무 밝아요.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라고 했다. 자기발전에는 또래보다 독하게 몰입하지만, 천성은 티없고 담백한 선수다.

임시현은 자신의 심리 상태와 기술 습득 수준을 끊임없이 되짚고 자기 선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지도자에게 도움을 구한다고 한다. 덕분에 지도자와 늘 신뢰 관계를 형성한다. 고교 시절에도 ‘제 2의 집’에서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해답을 찾았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두터운 유대감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7월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마치고 귀국한 다음날 임시현(오른쪽)과 민수정 코치가 식사를 함께 했다. 이날 밥값은 임시현 선수가 했다고 한다. [민수정 코치 제공]

임시현은 2022년 한국체대에 진학했다. 여러 팀에서 그의 잠재력을 보고 영입 경쟁을 벌였지만 그의 선택은 학교였다. 학교에서 공부하며 역량을 키워 더 성장하겠단 생각과 더불어 김진호 한체대 교수의 영향도 컸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양궁 3관왕을 차지한 ‘원조 신궁’ 김 교수는 고교 시절부터 임시현을 눈여겨 보며 응원했던 이였다.

한국체대 소속으로 국제대회에 나서면서 임시현은 승승장구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3관왕(개인전·단체전·혼성단체전), 2023년 방콕 아시아 선수권 2관왕(단체전·혼성단체전)과 베를린 세계선수권 금메달(혼성단체전). 그리고 올해 3월 양궁 국가대표 3차 선발전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세계양궁연맹 SNS 캡처]

2024 파리 올림픽 초반부터 여자 단체전 10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대회는 이제 시작이다. 온국민이 임시현의 여자 개인전과 혼성단체전에서의 활약도 기대하고 있다.

“(시현이) 본인이 성과를 이루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데, 한편으론 외롭고 힘들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주변에서 워낙 1등 하라고 압박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위로하고 싶진 않아요(웃음). 무조건 해라. 너가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 기자님이 웃는 것처럼 시현이도 웃을 거예요.”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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