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특검법’이 4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대응했으나 막지 못했다. 필리버스터는 26시간 이어졌지만, 법안 표결은 3분만에 끝났다. 대통령실은 “헌정사에 부끄러운 헌법 유린을 개탄한다”는 입장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날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을 차기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민주당은 “방송 장악을 이어 나가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4·10 총선 이후 약 3개월이 됐지만, 바뀐 게 없다. 야당의 입법독주는 더 거칠어졌고, 여당의 무기력증은 더 심해졌다. 대통령실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정 쇄신과 협치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치는 더 악화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채상병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이 단독 처리했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국회 재표결을 거쳐 폐기됐던 법안이다. 민주당은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야당 및 특검의 권한을 더 강화한 법안을 당론 1호로 재발의했고, 일사천리로 강행했다. 폐기 37일만이다. 대통령의 재차 거부권 행사도 기정사실화됐다. 방통위원장의 ‘야당의 탄핵추진→자진 사퇴→차기 임명’도 세번째 도돌이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 전망이다. 이동관·김홍일 전 위원장은 각각 3개월·6개월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민주당은 검사까지 탄핵을 추진하며 검찰과도 정면 충돌 국면에 들어섰다. 민주당은 지난 2일 이재명 전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 사건 수사 담당자 등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재명 대표를 지키기 위한 것” “민주당과 국회가 사법부의 재판권을 빼앗아 직접 재판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야당은 검찰이 정권을 위해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여당은 야당이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해 수사기관으로 활용하며 국회를 방탄도구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 주장이 충돌하며 삼권분립이 혼란 속에 빠져든 양상이다.
경제난으로 인한 민생의 고통은 가중되고, 의대정원·최저임금처럼 이해가 대립하는 사안이 산적한데, 정치는 본연의 역할인 갈등 해결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정부·여당의 정책은 거대야당에 가로막히고, 야당의 입법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다간 정부와 국회가 사실상 ‘불능’ 상태가 될까 우려스럽다. 정치의 역주행과 급발진은 국민 삶과 국가 시스템의 지속성을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