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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과학 너머 자연, 그리고 농사

며칠 전 몇몇 지인들과 함께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에 걸쳐있는 가야산(1430m)에 올랐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산) 가운데 못 가본 유일한 곳이었는데 마침내 소원을 풀었다. 산행 내내 눈을 뗄 수 없는 절경뿐 아니라 산에 충만한 정기, 뭇 생명들의 조화와 상생은 왜 예부터 ‘해동(海東) 10승지’, ‘조선 팔경 중 하나’로 불렸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과학과 예술을 동원한 그 어떤 도시공원과 정원도 자연을 모방할지언정 뛰어넘을 순 없다. 어찌 보면 그건 ‘박제된 자연’일 뿐이다. 명산에 안길 때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과 경외심은 이런 살아있는 자연을 창조한 조물주의 위대한 능력과 신성에 압도됐기 때문이리라.

요즘 강원도 홍천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일상 또한 잔잔한 감동의 연속이다. 집과 농장 에는 늘 푸른 소나무가 비교적 많다. 봄에 올라온 연약한 소나무순은 여름이 되면 부쩍 키를 키워 비로소 가지가 된다. 이때 소나무의 생명에너지가 마치 용틀임하는 것처럼 하늘로 뻗친다. 내 몸 안으로도 그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다.

숲속의 나뭇잎들이 일렁이는 물결처럼 춤을 추는 모습 또한 환상적이다. 바람이 불면 녹색 나뭇잎은 발랑 뒤집히는 순간 햇볕에 반사돼 은색으로 반짝인다. 녹색과 은색이 반복되는 황홀한 춤사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과 치유를 얻는다.

필자와 아내는 농사도 과학과 기계에 의존하기 보단 가능한 한 자연에 맡긴다. 필자는 이를 ‘자연그대로농사’ 또는 ‘산삼농사’라고 칭한다. 자연과 함께 하는 농사는 그 파종부터 수확까지의 과정이 곧 힐링이요 치유가 된다.

해마다 재배하는 옥수수는 비닐을 씌우거나 제초제를 치지 않고 대신 직접 호미를 들고 두 세 차례 김매기만 해준다. 이후엔 풀과 함께 키운다. 화학비료도 주지 않고 자연의 생명에너지와 작물의 자생력에 맡긴다. 자연스레 옥수수의 키도, 줄기와 잎의 색깔도 제각각이다. 먹으면 약이 되는‘약옥수수’재배법이다. 반면 관행농사로 짓는 옥수수는 키와 색깔, 심지어 열매까지 찍어낸 벽돌처럼 판박이다.

이미 농촌의 수많은 농장들이‘식물공장’처럼 변한지 오래다. 그 정점은 ‘미래농업’으로 불리는 스마트 팜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공장에는 식물은 있지만 자연이 없다. 그러니 자연에 충만한 생명에너지가 그 식물과 열매에 깃들 수가 없다.

산삼은 자연이 키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논밭에 재배하는 건 인삼이다. 인삼이 결코 산삼이 될 수는 없다. 농약도 많이 친다. 오묘한 자연의 힘이 키우는 산삼과 사람이 만드는 인삼의 약성은 비교불허다. 산삼과 인삼 값이 하늘과 땅 차이인 이유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은 곧 음식이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자연이다”라며 자연치유력을 특히 강조했다. 산골생활 14년의 깨달음은 자연은 ‘초과학’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교만과 탐욕이 과학을 앞세워 자연과 농사를 지배하려 했지만 오히려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위기를 초래했을 뿐이다. 과학 저 너머에 있는 자연에 순응해야 그가 주는 생명에너지와 치유력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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