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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 지휘자의 ‘원영적 사고’…네제 세겡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특권” [인터뷰]
세계적인 지휘자 네제 세갱·메트오페라
141년 만 첫 내한…19~20일 롯데콘서트홀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 세갱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위기 때마다 등판한 ‘구원자’였다. 캐나다 출신의 ‘스타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49)이 그렇다. 지금은 세계 최정상의 네 악단(몬트리올 메트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로테르담 필하모닉 명예지휘자)을 이끄는 스타 지휘자이지만, 이 ‘찬란한 꽃길’은 가시밭길 같은 고난을 잘 이겨내고 얻은 일종의 트로피다.

재정난에 휩싸여 미국 메이저 오케스트라 사상 최초로 ‘파산 신청’을 했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으로 임기를 시작한 2015년, ‘메트(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상징’인 제임스 레바인이 갖은 성추문에 휩싸여 음악감독 자리에서 물러나며 예정보다 2년 빨리 이 악단(2018~2019 시즌)을 이끌게 된 2018년은 그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했던 시험대였다.

네제 세갱은 절체절명의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탁월한 리더십으로 악단을 재정비했다. 또 뛰어난 음악적 역량으로 두 악단의 ‘예술성’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의 ‘위기 극복’ 동력은 초긍정 마인드인 ‘원영적 사고’(K-팝 그룹 아이브 멤버 장원영의 긍정적 태도에서 비롯된 유행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긍정적인 태도는 사람들이 나의 아이디어를 지지하게 만들거나 적어도 대화를 나누고 싶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예요. 세상에 기쁨을 발산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사명을 거절하기 어렵고, 우리 팀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해요.”

141년 만의 첫 내한…“한국 공연, 선곡에 특별히 공 들여”

세계 최고의 오페라 오케스트라인 메트와 이 악단을 이끄는 야닉 네제 세갱이 한국에 온다. 만면의 미소, 가벼운 옷차림 만큼이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음악을 들려주는 지휘자다. 1883년 창단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는 것은 141년 만에 처음이다. 당초 2022년 첫 내한공연으로 한국 관객과 만날 계획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아시아 일정이 전면 취소, 2년의 기다림 끝에 성사됐다.

내한을 앞두고 서면으로 만난 네제 세갱은 “한국 공연에선 선곡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며 “메트가 가장 잘하는 것을 표현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수준과 자질을 보여줄 수 있는 오페라 곡에 집중했다”고 귀띔했다.

공연(6월 19~20일, 롯데콘서트홀)에선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서곡과 드뷔시 ‘펠리아스와 멜리장드’, 버르토크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을 첫 날 들려주고, 몽고메리의 ‘모두를 위한 찬송가’, 모차르트 콘서트 아리아와 말러 ‘교향곡 5번’을 둘째 날 들려준다. 네제 세갱은 “바그너와 드뷔시는 버르토크가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 작곡가로, 두 사람이 없었다면 ‘푸른 수염의 성’ 같은 곡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처음 찾은 메트가 교향곡으로 말러 5번을 연주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그는 “메트 오케스트라는 오페라 연주로 바빠 교향곡 레퍼토리의 위대한 걸작을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이 곡을 통해 환상적인 오케스트라 메트의 전율적 에너지를 느낄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 세갱 [롯데콘서트홀 제공]

메트는 한 번의 무대 만으로는 영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다. 성악가들에겐 ‘꿈의 무대’로 불리는 오페라 극장이다.

네제 세갱은 “메트가 세계 최고 오페라단인 이유는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라며 “솔리스트, 오케스트라는 물론 준비과정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오페라 레퍼토리, 최고 수준의 음악, 성취를 위한 모든 면에서 탁월함을 추구한다”고 했다. 한국 공연에선 현역 최고 메조소프라노로 불리는 엘리나 가랑차, 베이스바리톤 크리스티안 반 혼, 소프라노 리제트 오로페사가 함께 한다. 엘리나 가랑차는 “메트는 정확성, 깊이 있는 표현력, 제약 없는 원활한 협업으로 모든 공연을 특별한 차원으로 끌어올린다”고 했다.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으면서도 메트는 매순간 진화한다. 현대 오페라 공연을 늘리고, 라이브 시리즈를 제작해 오페라를 박물관의 박제된 예술이 아닌 살아있는 예술로 만든다. 그는 “어떤 분야든 혁신의 최전선에 서서 주변 세계에 반응하는 것이 리더의 책임”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작품을 메트 무대에 올리고, 우리 시대의 오페라와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라고 했다.

네제 세갱의 강력한 긍정 에너지…“음악 통해 기쁨 주고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기 전에도 세계적인 지휘자였지만, 네제 세갱에게도 ‘메트와의 동행’은 더 특별하다.

그는 음악감독 제안을 받던 당시를 떠올리며 “남편에게 ‘이 일은 한 사람이 하기엔 너무 큰 일’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비올리스트 피에르 투르빌이다. 이들은 클래식 음악계의 유명한 ‘게이 커플’이다.

“메트 오페라를 이끄는 것, 140년 이상 이어온 위대한 유산의 일부가 되는 것은 음악가이자 한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일이죠.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하는데, 전 메트의 신성한 홀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어요.”

메트 입성 당시는 물론 메트를 이끌면서도 힘든 일이 많았다. 2019년 말 찾아온 팬데믹은 감염에 취약한 성악 장르에 암흑기와 다름 없었다. 네제 세갱은 “팬데믹 기간 가장 그리웠던 것은 오페라나 교향곡을 공연할 때 일어나는 특별한 협업”이라며 “지휘자는 혼자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오케스트라 동료들을 매일 보지 못한다는 것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시간의 경험은 더 값진 마음가짐으로 돌아왔다. 삶을 향한 긍정적 태도가 가져다준 결실이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야닉 네제 세갱 [롯데콘서트홀 제공]

“100명 이상의 서로 다른 목소리와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여 아름다운 음악을 해석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에서 드문 일이에요. 팬데믹으로 우리 모두 인류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를 병들게 하는 것들을 치유할 수 있는 예술과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척 행운이에요. 예술과 음악을 통해 우리는 서로 연결되죠. 이러한 공감과 인식은 위기 상황에서 저의 리더십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매일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어요.”

네제 세갱과 호흡을 맞춰본 음악가들은 그를 “음악을 사랑하는 지휘자”이자 “경청하는 리더”라고 입을 모은다. 엘리나 가랑차는 “네제 세갱은 진정으로 가수를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이해하는 지휘자”라고 했고, 리제트 오로페사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을 이끌어내는 음악가”라고 했다. 크리스티안 반 혼 역시 “경청하고 호흡하는 진정한 마에스트로”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네제 세갱의 음악을 향한 마음에서 깊은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엔 전염성이 있다”(리제트 오로페사)는 것이다. 혼은 “오케스트라 피트(객석과 무대 사이 기악 반주단이 들어가는 공간)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을 본 것은 야닉이 처음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음악과 무대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묻어나는 것을 보면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와 한 무대에 오르는 음악가들의 평가는 네제 세갱이 지휘자로 걷고자 하는 지향점과 맞닿는다.

“지휘자로서 제 역할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며, 제 삶은 음악을 통해 그 일을 하는 데 헌신한다고 믿어요. 매일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특권이에요. 제가 포디움에 오를 때마다 세상에 그런 기쁨을 선사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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